학계 대체로 전문가 위주 구성에 찬성, 분과 나누는 대안도
부칙 통해 2026년 정원 조절 의견 나왔지만, 실효성에 의문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왼쪽)과 의협 김민수 정책이사가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 국회방송 화면 캡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왼쪽)과 의협 김민수 정책이사가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 국회방송 화면 캡쳐)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국회가 추진 중인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법제화에 난관이 예상된다.

의료계가 추계위의 독립성을 전제로 의결권을 양보했으나, 위원 구성에서 환자·시민단체와 접점을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공공의대 등 지역의료 편중 문제도 이렇다할 해법이 제시되지 못했다.  

구체적인 모델을 그리는 데 실패하면서, 추계위를 통해 2026년도 의대정원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도 낮아졌다.

일각에서는 추계위 신설과 별개로 내년도 의대정원 문제를 의정간 정책 타결하는 것인 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의협 "의결권보다 독립성과 전문가 주도 구성 중요"...학계도 대체로 동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4일 의사 등을 비롯한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추계위)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를 열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공청회는 저녁 7시가 돼서야 끝이 났으나,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애초 추계위를 둘러싼 쟁점은 크게 인원 구성, 편재 그리고 의결권 등이다.

의료계는 대표단체에서 추천한 전문가(의사)가 과반을 구성해야 하고, 독립적인 편재와 의결권을 요청했다. 반면 소비자 및 환자 단체는 공급자와 소비자를 동률로 구성,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인정심)·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산하에 기구를 두고 자문 기구 역할로 한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의료계는 추계위의 독립성이 전제된다면 의결권을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위원 구성에 있어서는 전문가 과반 구성을 강경하게 고수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은 "독립성·중립성·투명성 확보를 위해 추계위는 비정부 법정단체나 또는 법인 형태가 적절하며, 인정심과 보정심 산하에 추계위를 두자는 의견에는 절대로 반대한다"며 "의결권과 인원 구성 중 더 중요한 것은 인원 구성으로, 심도있는 논의를 위해서는 전문가가 위원 3분의 2 이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의협 김민수 이사도 "정부와 의료계가 충분히 교감하고 정부 심의가 투명하다는 믿음이 있다면 굳이 의결권까지 추계위가 확보할 필요는 없다"며 "심의 간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정부 밖 독립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하며, 각종 사회현상 및 전문과목 특성, 지역별 편중 등 문제를 깊이 논의해야 하는 만큼 전문가 주도의 연구적 기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환자 단체는 공급자 과반 구성을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현재 6개 법안 중 5개가 공급자가 과반이 되도록 했는데 이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라도 공급자와 수요자 비율이 1:1 동수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학자들은 전문가 위주로 추계위를 구성하되, 최종결정권은 정부가 갖는 방안에 무게를 뒀다. 또 추계와 심의 과정을 공개하고, 정부가 추계위 의견을 반영하지 않을 경우 이를 공개적으로 설명하는 절차를 통해 투명성을 보완하는 방법 등을 제안했다. 

정부 의대정원 증원의 근거가 된 논문을 발표했던 고려대 보건대학원 신영석 교수는 "네덜란드는 의료인력수급추계기구를 전문가와 교육기관 대표자로만 구성하되 정부 자문 역할만 맡기고 있으며, 일본 역시 자문기구로 21명의 추계위원 중 16명이 의사, 5명이 다른 직역 전문가가 맡고 있다"며 "이런 해외 사례들을 벤치마킹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의대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 역시 "지나치게 많은 이해당사자 의견을 반영하려다보면 위원회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는 만큼 직접 이해당사자만 참여하는 형태가 적절하다"며 "추계위가 의결권까지 가지면 정부의 견제가 심해져 되레 독립성이 위협될 수 있다. 정부가 추계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사유를 설명하는 절차를 두는 방안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추계위 내에 하위분과를 만들어 구성을 달리하는 협의안도 제시됐다.

보라매병원 공공학과 장원모 교수는 "수요자가 함께하는 가치분과에서는 변수를 대하는 논리를 협의하고, 전문가 중심의 기술분과에서 이를 기반으로 추계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의사 추계위 과반 구성을 반대하는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정형선 교수도 "추계위 아래 방법론분과위원회와 직종별전문분과위원회를 두고 직종별전문분과위원회에 의사 과반 참여를 보장할 경우 전문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지역의료 편중 해법 못 찾아...내년도 의대정원 해결도 난망

보라매병원 공공의학과 장원모 교수가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 국회방송 화면 캡쳐)
보라매병원 공공의학과 장원모 교수가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 국회방송 화면 캡쳐)

공공의료와 지역의료 편중 문제에서도 제대로 된 해법이 제시되지 못했다.

대한병원협회 김기주 기획부위원장은 "발의된 법안들이 지역별 의료인력 정원 정책을 모호하게 설정하고 있다"며 "지역 내에서 의료인력을 배출하더라도 근무환경, 혜택, 개인적인 성향 등에 따라 활동 지역을 옮길 수 있는 만큼 해당 지역 내 지속 가능한 의료활동을 유도하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일본의 지역의사제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정형선 교수는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지역 자치 의대를 설치하고 일정 시간 지역에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장학금을 지원하는 지역의사제를 실시하고 있다"며 "일본 의대정원 9400명 중 1800명이 지역의사"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일본 관서외국어대 장부승 교수는 "일본에서도 지역의사제에 의료계 불만이 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학자금 지원 외 신기술 교육과 같은 커리어 지원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의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며 "지역 경제가 살아있는 일본도 이런데, 국내의 경우 의사를 지역에 묶어두는 것은 더욱 힘들 것"이라고 반대했다. 

이에 국민의힘 서미화 의원 등이 추계위 역할을 의대정원 등으로 한정하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곧바로 반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민수 이사는 "의료인력 수급은 국민들의 의료이용과 함께 논의돼야 하고, 수요 등을 기반으로 추계해야 향후 정책 반영에서 효용을 가진다"며 "의대정원에 반영하기 위한 추계만 해서는 지역의 청년 유출처럼 의사 유출이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추계된 인력의 모니터링 등 종합적인 기능을 추계위가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6년 의대정원을 추계위를 통해 정하는 것도 쉽지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추경호·서명옥 의원 등이 부칙을 통해 시행시기를 법제화 이후 1개월 이내로 대폭 당기는 방안 등을 제시했으나, 당장의 의대정원을 위해 원칙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환자협 안기종 대표는 "각 법안들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에 대한 특례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며 "2026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의료계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근거로 해석될 수 있어서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정형선 교수는 "의료 인력 수급 체계 조직은 보다 중장기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특권 의식과 떼쓰기보다는 절차에 따른 협상이 존중받는 문화가 우리 보건의료 제도에도 정착해야 한다"고 의료계에 날을 세웠다. 

공청회를 지켜본 의료계에서도 2026년도 의대정원을 추계위로 정하는 것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협 김성근 대변인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일에 의견을 내기 어렵다"면서도 "정부가 여전히 2월 중 의대정원 확정을 예고한 상황에서 내년도 정원을 추계위에서 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나"고 의견을 밝혔다. 현실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내년 의대정원은 추계위 법제화와 별개로 의정간 정책적 타협으로 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편, 복지위는 오는 18일 전체회의와 19~20일 양일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추계위 법률안 등을 심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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