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출신 집행부 합류로 의료사태에서 무게감 커져
정부 화해 손길에도 냉정 "사태 본질 아냐"
의대정원 넘어 향후 의료정책 주도권 위한 신경전 분석도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대한의사협회 신임 집행부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상 최초로 전공의를 부회장으로 임명하겠다던 김택우 회장은 공약대로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대위원장을 부회장으로 임명했다. 그 외에도 6명의 대전협 출신이 이사로 집행부에 합류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의료사태의 키를 쥐고 있는 전공의들을 품으며 의협은 명실공히 의료사태의 핵심 목소리이자 대화의 단일창구로 떠올랐다.
의료계의 역량이 한데 모이면서 본격적으로 의정 대화와 협상에 드라이브가 걸릴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과 함께 전공의들의 강경한 '고집'이 집행부 기조가 되면 의료계 다른 창구의 대화와 협상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어떤 경우든 현 집행부의 출범이 의료사태의 변곡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 교육 마스터플랜 제출이 먼저" 대전협 강경기조 이어져
김 회장은 줄곧 의료대란 문제 해결을 최우선이라고 강조해왔다.
김 회장은 후보 시절 인터뷰에서 "사태 초기 3개월간 투쟁을 이끌었던 사람으로서, 또 사직 전공의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이를 해결해야겠다는 절박함이 다르다”며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협회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장 당선 소감에서도 "현 사태를 제대로 해결해 달라는 회원들의 간절함과 저의 절박함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의정갈등을 우선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취임 후 김 회장은 정부가 전향적인 대안을 내놓기 전에는 의협에서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정부가 이른바 2025년 의대교육 마스터플랜을 내놓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16일 기자간담회와 17일 의료계 신년 하례회에서도 "정책을 내놓은 정부가 대안을 가져오는 것이 우선"이라며 "정부가 먼저 2026년 의대교육 마스터플랜을 내놔야 의료계도 2026학년도 의대정원 문제를 포함한 의대 교육 계획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어 "정책을 만드는 정부가 대책을 내놔야지 의료계에서 대안을 찾으려고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적극적인 의료대란 해결을 주장하던 모습과는 상반되는 행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대전협과의 발맞추기라는 분석다. 이전 대전협의 '선조치 후대화' 기조와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김 회장은 의료사태 해결은 당사자 격인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025년 의대교육 마스터플랜 요구도 실질적인 대안 촉구의 의미보다는 의대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정부가 인정하라는 뜻에 가깝다.
박단 비대위원장은 부회장 발표 후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의학 교육이라는 게 단순히 강의실에서 배우는 것도 아니고 실습과 해부 등 교육 환경이 준비돼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지적했음에도 정부는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만약 정부에서 합리적인 플랜을 내밀 경우 의료계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박 비대위원장은 "그런 플랜이 가능했다면 사태가 여기까지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의료정책 주도권 염두에 둔 신경전 의견도
정부는 의협 새 집행부 출범에 맞춰 대화 시도를 모색하는 모습이다.
김 회장 선출 이틀 후인 지난 10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주요현안 해법회의'를 주재하고 "의료에 헌신하기로 했지만 꿈을 잠시 접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전공의, 교육과 수업문제로 고민했을 교수와 의대생 여러분들께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최 권한대행은 "의료계가 대화에 참여해 논의해나간다면 2026년 의과대학 정원 확대 규모도 제로베이스에서 유연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원점 논의를 약속했다.
같은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기자회견을 열고 전공의가 사직 전 수련한 병원과 전문과목으로 복귀하는 경우 불이익 없도록 수련 특례조치를 시행하고, 사직한 의무사관(군의관)후보생도 수련을 마친 후 입영할 수 있도록 하는 수련·입영 특례 조치를 발표했다.
또 교원 증원과 시설·기자재 확충, 의대 교육혁신 지원 등 의학교육 여건 개선에 총 6062억원의 예산을 투자하겠다는 지원책도 내놨다.
책임자 사과, 2026년 정원 원점 논의, 수련·입영 특례 조치, 수련 환경 지원 등 그간 의료계가 요구했던 것을 정부가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협의 입장은 아직 차갑다.
16일 김 회장은 "내년도 의대정원을 두고 누구는 제로베이스, 누구는 감원, 누구는 다시 감원불가를 각각 발언하고 있다. 정책 당국 안에서도 혼선이 온 것 같은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수련·입영 특례 조치와 지원도 임시 방편일 뿐 본질적인 문제 해결 방안은 아니다"며 "어느 순간부터 숫자에 대한 논의만 남았는데 사태의 본질은 필수과 지원기피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 같은 모습을 2026년 의대정원을 넘어 향후 의료정책에 주도권을 잡겠다는 기싸움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실제 김 회장은 공약으로 의료정책연구소 역량을 키워 앞으로 의협이 의료정책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의 모든 활동을 즉각 중단할 것도 요구했다.
의료계 내부 피로감 커, 조만간 논의 나설 것으로 전망
다만 의정 갈등 장기화로 인한 피로감이 의료계 내부에서도 적지 않은 만큼, 조만간 의협도 어떤 식으로든 논의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도의사회장 출신 A씨는 "향후 의료정책의 주도권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은 2025학년도 의대교육 정책과 2026년도 의대정원 문제"라며 "대치가 계속 길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시도의사회장 B씨도 "의협이 정부와 물밑에서 접촉하는 등 사태 해결에 나서고 의료교육 등에 대한 복안도 마련했을 것"이라며 "이미 이번 사태로 전공의 등 의료계와 환자들의 고통이 큰데, 더 길게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주호 부총리와 김택우 의협 회장이 지난 18일 비공개로 만난 것이 확인돼 의정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가 모였다.
하지만 21일 김택우 회장은 "비공개로 합의된 만남을 공개해 또다시 신뢰를 훼손하고 상황을 왜곡한 이주호 부총리에 유감"이라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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