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기본법에 따른 의료자원 장기계획 수립 필요
政, 병상수급관리 시책 당초 4월 발표서 상반기 발표로 연기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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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도권·비수도권 병상 부익부 빈익빈 심화

2. 병상수급관리 시책 효과는?

[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병상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 대형병원들의 무분별한 분원 설립을 막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방안을 내놨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발전협의체 제19차 회의에서 의료 질을 높이고 의료기관 병상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한 병상수급 기본시책 수립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5년마다 실시하는 보건의료실태조사를 의뢰했으며, 지난해 말 연구가 마무리된 상태다.

공단의 실태조사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복지부는 세부적인 병상수급 관리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복지부는 지난 2월 보발협 제28차 회의에서 병상수급 관리를 위해 △병상수급 기본시책 및 시도 병상수급계획 수립 △병상 과잉·과소지역 분석 및 병상 신증설 관리 기준 마련, 시행 △의료전달체계를 훼손하고 적정 의료 수요를 고려하지 않는 신증설에 대한 관리 강화 등 구체적 시행 방향을 제시했다.

이번 정부의 병상수급 관리 시책 내용은 이전의 관리방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예단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지역별 병상 총량 관리 도입과 필수의료 인프라 구축 필요

병상 허가권을 여전히 지자체장이 갖고 있어 중앙정부가 지자체에게 인구당·진료과목당 병상수 등 명확하고,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해야 실효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보건의료기본법을 통한 장기적인 병상수급 및 의료인력 계획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양대 보건학과 이민정 박사는 병상수급 불균형이 가용성 미충족 의료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지역 간 의료 격차에 대해 연구했다.

이민정 박사는 "고령화와 만성질환으로 의료수요는 증가하지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때 받지 못하는 미충족 의료문제는 여전한 사회 문제"라며 "지역의 의료자원은 의료이용에 영향을 미치며, 병상은 인력과 장비 공급이 동반돼 지역의 의료자원 분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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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의료자원 배분의 불균형은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있지만 미충족 의료로 인한 사각지대의 발생 원인이 되고 있다"며 "의료 접근 보장은 보건의료정책이 추구해야 할 원칙이며, 환자가 거주지역 내에서 의료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의료자원을 배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병상 부족과 과잉 등 병상수급의 불균형이 가용성 미충족 의료경험을 증가시키는 결정요인이었다.

미충족 의료와 지역 격차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주요 의료자원인 병상의 수급 균형을 맞추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는 "지역별 병상 수급의 균형을 위해 지역별 병상 총량을 관리해 과잉 병상을 통제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며 "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에서는 공공의료기관 확충 등 필수의료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병상수급계획 수립의 주체인 정부는 병상 수요량에 따른 공급 수준을 진단하고, 의료자원의 균형적 배분을 보장해 지역 간 가용성 미충족 의료의 격차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병원 설립이 나쁘지 않은 옵션으로 될 수 있으면 허용하는 분위기다.

중앙정부가 명확하게 구체적인 병상 허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의 중론이다.
 

병상심의委에 인구·필요진료과목당 병상수 판단기준 제공필요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가 지역별 병상을 병상허가심의위원회를 통해 조절할 계획이지만, 구체적 계획이 없는 것 같다"며 "판단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심의위원회가 무슨 근거로 허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지역 병원 설립 허가는 지자체장의 권한으로, 지자체에 인구당 병상수 혹은 필요진료과목당 병상수 같은 구체적인 판단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병상수급을 관리한다고 무조건 병상 허가를 불허할 수는 없다"며 "지역별로 필요한 의료기관 수와 병상수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미 외국에서는 제도를 병상 수급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며 "공공병원이 많은 외국에서는 지자체가 수요를 예측해 예산으로 병원을 설립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국은 90% 이상 민간의료기관으로서 병상 확대 무한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복지부가 병상수급 관리 시책을 시행해도 병상 확대 기조는 크게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며 "병상심의위원회에서 병상허가를 심의하기 위한 판단 근거 기준을 정부가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경기도 A지역 병상허가심의위원회는 한방병원 2곳에 대해 설립을 허가했다. 한방병원이 지역민들에게 어느 정도 필요한지, 판단 없이 일률적으로 허가됐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현재 병상허가심의위원회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복지부가 이런 실태를 파악한 후 병상 허가를 위한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해 줘야 한다. 위원들이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제대로된 병상관리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의 장기적인 계획이 없는 것이 병상수급을 관리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 2000년 국민의 권리·의무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정하고 보건의료의 수요와 공급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기 위해 제정된 보건의료기본법에는 병상을 지역별 총량으로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제정 18년 만인 지난 2018년 첫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개최한 이후 제대로 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어 보건의료기본법이 정하고 있는 장기적인 기본계획 자체가 없다는 것이 우 소장의 지적이다.

일본은 1987년 노인 인구 비율이 10.9%에서 1997년 15.7%로 늘었지만, 의료비 지출 비율은 6.4%로 유지됐다. 병상 수급을 제대로 관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우 소장의 주장이다.
 

병상·인력 등 의료자원 장기계획으로 지역 완결 선순환 구조돼야

우봉식 소장은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의 보건의료 장기계획이 없다"며 "보건의료기본법이 2000년 제정됐지만 18년 만에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처음 열렸지만 그 이후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 차원의 장기계획이 없어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의 환자는 수도권으로 이탈하고, 환자 이탈로 지역 의료기관의  질은 저하되면서 지역 의료가 붕괴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인력과 병상을 비롯한 의료자원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수립해 환자쏠림, 지역 의료 붕괴를 막고 지역내에서 의료가 완결적으로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봉식 소장은 "국가가 지자체에 지역별, 기능별 병상수급 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심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는 대학병원들이 할 수 없는 예방적 기능, 노인케어 등을 1차 의료 기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의원, 병원, 종합병원 등의 칸막이를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병상수급관리 대책 미뤄

복지부는 당초 병상수급관리 시책을 4월 중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관리 시책 발표를 상반기 중으로 연기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과 맞물린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윤 당선자는 국립대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의 분원을 설립하고,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을 위탁 운영하는 방식으로 지역 필수의료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시도에는 추가로 지정할 계획이다.

이런 차기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기조와 맞추기 위해 관리 시책 방향성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상수급관리 시책 발표가 당초 4월 중에서 상반기로 연기된 것은 내부적 검토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윤 당선자의 공약과는 별개 문제"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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