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응급분야 대책 나왔지만 계속된 사망 사건 발생 예견된 사태
政, 대구시와 공동조사단 구성해 응급의료 현장 점검
지역응급의료기관 역량 강화와 상급병원 응급·중환자실 비우는 정책 시급

[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정부가 필수의료 지원대책과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했지만,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또 발생하면서 정부 대책에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구광역시에 살고 있던 10대 여학생이 건물에서 추락해 119 구급대가 2시간 넘게 대구시내 응급실을 찾아 해맸지만 끝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건복지부는 대구광역시와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10대 여학생 사망 관련 응급의료기관 이송 및 응급진료 전 과정을 점검할 방침이다.

공동조사단은 해당 환자가 119 이송부터 응급의료기관 선정, 환자 수용 거부 및 전원, 진료까지 모든 과정에서 부적절한 대응과 법령 위반 사항 등이 있었는지 살펴볼 게획이다.

또, 응급의료기관 등에 대한 현장조사, 의학적 판단에 대한 전문가 자문 등을 진행하고, 법령 위반 사항이 발견될 경우 기관별 행정처분 및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할 예정이다.

그러나, 응급의료 관련 전문가들은 대구 10대 여학생 응급환자 사망은 예견된 사태라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말 지역완결형 중증·응급 확충을 골자로한 필수의료 지원대책과 지난 3월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한 바 있다.

필수의료 지원대책과 응급의료 기본계획에 따르면, 전국 어디서나 최종치료까지 책임지는 응급의료를 비전으로 지역완결적 필수·공공의료를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향후 5년간 지역완결적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중증응급의료센터를 60곳까지 확충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지역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중소병원 등은 중증응급의료센터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며, 오히려 모든 응급환자가 대형병원으로 쏠려 과밀화가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부천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은 정부의 중증·응급의료체계 구축 설계가 잘못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응급 및 중증환자를 치료할 의료기관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환자들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들이 중증응급 환자를 수용할 수 있도록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비우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얘기다.
 

"병상 비우는 정책 없이 채울 계획만 세우면 악순환 계속"

부천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
부천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

박 이사장은 "정부의 필수의료 및 응급의료 기본계획에 따라 중증응급의료센터를 설립해 중증응급환자의 최종치료를 하겠다는 계획에 반대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중증응급의료센터로 지정받을 권역응급의료센터들이 최종치료 능력이 없어 환자를 못받는 것이 아니고, 수용 여력이 없어 못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급병원들의 중환자실 및 응급실을 먼저 비워야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며 "정부가 비우는 정책 없이 계속 채울 계획만 세우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미 상급병원들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과밀화로 인해 새로운 환자를 수용할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상급병원에서 치료하지 않아도 되는 중등증 환자들이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차지하고 있어 생명이 위급한 중증응급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응급의료는 2차 의료기관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차 의료기관에서 응급처리를 한 이후 환자 상태를 보고 상급병원으로 전원해야 한다"며 "지역응급의료기관이 최대한 응급환자를 수용해야 상급병원들도 제대로 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해 최종치료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호흡곤란으로 폐렴 증세가 있는 80세 할머니는 증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런 할머니 환자들은 중환자실이 있는 2차 의료기관에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어 지역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진짜 중환자들을 중증응급의료센터가 치료할 수 있다는 것.

박 이사장은 "지역 응급의료센터들의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대구 10대 여학생 사망 사건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상급병원의 수용 여력을 높이지 않으면 이송단계에서 계속 지연 현상이 발생해 환자들의 생명을 지킬 수 없게 된다고 박 이사장은 강조했다.
 

지역 응급의료센터·응급의료기관 기능 및 역할 강화해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역시 이번 사망 사건은 예견된 인재라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핵심은 지역 의료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것과 상급병원의 과밀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에는 외상센터가 너무 많다. 전국적으로 20여 곳이 외상센터로 지정돼 있지만 제대로 외상센터로 기능하는 곳은 3~4곳 정도에 불과하다"며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외상센터들이 부족한 인력을 서로 나눠 활용하고 있어 외상센터로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회장은 부족한 인력과 시설, 장비 자원을 집중시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응급의료센터 및 지역응급의료기관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지역완결적 최종치료를 할 수 있는 중증응급의료센터 확충 접근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외상센터 개념 자체를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한 응급을 위주로 목표로 잡아야 한다"며 "최종치료까지 할 수 있는 중증응급의료센터를 만들려면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여력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상급병원이 중증응급환자에 대하 최종치료를 하려면 낮은 단계인 지역응급의료센터 및 응급의료기관들의 기능을 더 강화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응급의료센터와 응급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이 강화돼야 상급병원의 중증응급 진료 자원을 보존할 수 있고, 제대로 치료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주장이다.

이 회장은 "지역 응급의료센터를 더 많이 육성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며  "최종치료를 할 수 있는 상급병원들의 응급실과 중환자실 병실을 비워 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언제든지 전원이 가능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대구 10대 여학생 사망 사건과 관련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정부가 필수의료 지원대책과 제4차 응급의료기관 기본계획을 발표한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10대 여학생 사망 사건으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정부 정책 평가하기에는 일러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응급의학과 A 교수는 "10대 여학생 사망은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이번 사건은 지방의 의료자원 부족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라고 진단했다.

A 교수는 "대구 지역은 권역센터가 2곳 뿐이다. 인구 대비 병원 자체가 많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며 "응급분야는 얼마나 많이 발생할지 알 수 없으며, 최대치를 추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 발생 최대치를 추정해 그에 맞는 자원을 투입하면 공실률이 발생한다. 병원의 입장에서 확률적으로 적정선을 예상해 자원을 투입하게 된다"며 "그 적정선을 넘게 되는 경우 사실상 대책이 없게 된다"고 현실론을 펼쳤다.

A 교수는 특히 현재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대책과 제4차 응급의료 기본법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이르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2027년까지 5계년 계획이 제대로 수행됐는지 여부는 최소 3~4년 이후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A 교수는 "정부 정책은 2027년까지 지역완결형 중증응급진료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점을 제시한 것"이라며 "계획을 수립했다고 해서 그동안 쌓였던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의 계획에 따라 인력, 시설, 장비 등 의료자원을 투입하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며 "정부 정책 미흡하다는 지적은 이해되지만, 병아리 단계에 있는 필수의료 및 응급의료 계획에 대해 꼬끼오라고 울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시간을 두고 정부 정책을 평가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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