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 2차 의료기관 의뢰-회송 가산 더 높여야
중증응급의료센터 확대 안일한 인식…모든 응급환자 쏠려 과밀화 가중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은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의 핵심은 2차 의료기관의 역할 강화라고 강조했다.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은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의 핵심은 2차 의료기관의 역할 강화라고 강조했다.

[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대책과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이 의료전달체계를 역행하고, 2차 병원들을 고사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본지는 대한병원협회 사업위원장이며, 대한중소병원협회 지역병원 살리기 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을 만나,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대책 및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기울어진 의료체계 운동장 바로잡는 정책부터 

박 이사장은 현재의 보건의료체계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비유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균형 있게 바로잡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 종별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의료체계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데, 대형병원들에게만 정책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의료체계의 왜곡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에 대한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정부가 지금까지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심뇌혈관센터, 권역외상센터 등을 지정하고, 지역완결적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중증 환자들은 오갈데가 없고,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태까지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증응급의료센터 수를 늘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너무 안일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외면하고 있다"며 "응급환자 중 중증 환자인지 여부를 바로 판별할 수 있으면 신에 가깝다. 배가 아프다, 숨이 차다, 어지럽다 등의 증상 호소만으로 중증인지, 경증인지 알 수 없다. 무슨 수로 중증응급의료센터가 중증, 경증을 판별해 골든타임 내 환자를 분배할 수 있나?"라고 꼬집었다.

지역 응급의료기관에서 응급환자를 진료하고, 중증환자일 때 중증응급의료센터로 전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증응급의료센터는 중증응급환자를 바로 진료할 수 있도록 병상을 항상 비워 놓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증응급의료센터가 모든 응급환자를 수용해 경증환자를 응급의료기관으로 회송하는 시스템은 중증응급의료센터 응급실 과밀화만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응급의료 기본계획 응급의료전달체계 역행

정부의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이 응급의료전달체계를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송체계를 더 촘촘하게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원스톱으로 치료하겠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며 "현재 응급체계의 문제는 중증 환자를 전원 보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동맥 박리 환자는 흉통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0.1%도 안된다. 모든 흉통 환자를 대동맥 박리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한다면 그 병원은 과밀화로 인해 대동맥 박리의 진단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증응급의센터를 추가로 지정하고 그 병원으로 초기 이송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보다 기존 응급의료기관 간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가 구성되도록 해야 한다"며 "응급의료기관이나 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빨리 진단받도록 하고 해결되지 않을 경우 중증응급의료센터로 전원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원받은 중증응급의료센터는 중증 외상 환자를 제외하고 직접 환자를 받지 않아야 하며, 응급의료기관 및 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전원된 중증환자만 최종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중증응급의료센터가 중증환자를 전원받기 위해 비워 놓은 병상과 대기하는 자원에 대한 보상을 충분하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역 의료기관 간 유휴 자원 정보를 실시간 공유할 수 있는 현황판을 구축해야 하고, 응급의료체계 구축 과정에서 의료자원 정보 공유 현황판 추진이 가장 시급하게 구축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보건의료정책 첫 단추 잘못 꿰면 다음 단추 무의미

그는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대책과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은 첫 단추를 잘못 뀄다며, 추가 대책이 나온다지만 잘못 꿴 첫 단추 이후는 어떤 조치도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다.

발표된 정책 내용들이 실행되면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고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

그는 "정부는 지역 완결형 의료를 구축하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지역 완결형 의료의 핵심은 2차 병원의 역할 강화"라며 "정부는 2차 병원들이 지역 필수의료를 담당할 수 있도록 지원과 배려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의료전달체계는 의원과 병원, 상급병원 간 무한경쟁이 이뤄지고, 지역 병원 간에도 경쟁을 하고 있어 협력체계 구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는 "지역 내 의료기관 간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경쟁 구조를 줄여야 한다"며 "각 종별 의료기관 간 역할 분담을 정확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차 병원의 역할을 약화 시키면 1차 의료기관과 3차 의료기관 모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2차 병원들에 대한 역할 강화 및 지역 내 협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2차 병원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의료전달체계 의뢰-회송 수가구조에 주목했다.

현재는 의원이 중소병원에 의뢰한 수가와 의원이 상급종합병원에 의뢰한 수가 모두 동일하다. 중소병원이 상급종합병원에 의뢰하는 수가 역시 같다.

그는 "1차 의료기관이 2차 기관에 의뢰하면 수가를 더 많이 제공하고, 1차 기관이 3차 기관에 의뢰할 경우에는 수가를 지급하지 않아야 한다"며 "대신 3차 기관이 2차 기관에서 의뢰받는 경우 큰 보상을 받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뢰 수가 차등으로 인해 의료전달체계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차 의료기관이 없어지면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공멸하게 된다"며 "국내 모든 환자들의 80~90%는 2차 병원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 없어 입원 진료 못하는 상황 자체가 이상한 현실

정부의 전공의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전공의는 수련받는 교육의 대상이지, 값싼 노동력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는 의료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전공의 배치를 더 확대하는 식의 노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병원계도 정부 정책에 따라 당연하게 전공의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경영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전공의를 활용하는 의료시스템은 정상적인 의료시스템이 될 수 없다"며 "전공의가 없어 입원 진료를 하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이상한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전공의 TO를 가지고 의료기관을 통제하는 방식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 중심으로 대학병원들이 운영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번 필수의료 지원대책 역시 필수의료 분야에 전공의를 인위적으로 더 배정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인력들이 활동하는 운동장이 중증과 응급분야보다 비중증과 비응급 분야로 쏠려 있고, 지방보다 수도권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박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대책이 최우선적으로 실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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