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왜곡 현상 지적
"기피과 지원율 추락 몸소 경험" 인력·재원 포함한 버팀목 요청

4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개최한 대한민국 필수의료체계 붕괴위기, 대책 촉구 기자회견
4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개최한 대한민국 필수의료체계 붕괴위기, 대책 촉구 기자회견

[메디칼업저버 김나현 기자] 전공의들이 소아청소년과, 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과 붕괴가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필수의료 의사들이 어려운 트레이닝을 받고도 수술을 포기하고 건강검진센터, 한방병원, 경증질환이 즐비한 마을의원으로 가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현장에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전문의 채용 및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등을 담은 요구안을 발표했다.

4일 기자회견을 개최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소아흉부외과 의사 등은 전국 20명 남짓해 이미 멸종단계를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협 여한솔 회장은 "필수의료협의체 등 여러 협의체도 가동했지만 전공의가 느끼기엔 근본적인 부분은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 전공의는 바보가 아니기에 문제 있는 진료과를 지원하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과계열 의사는 혹독한 트레이닝을 뒤로하고 개원가에 뛰어들기 바쁘다. 전공을 살릴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고, 그 자리에 취직한 이들도 가혹한 근무로 갈린다"며 "선택의 여지가 없어 개원하거나 요양병원, 한방병원에 취업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대전협 여한솔 회장
대전협 여한솔 회장

여러 진료과 중에서도 소아청소년과의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소청과는 3년 전까지 지원율이 88%였지만 올해 기준 23%로 추락했다.

여 회장은 "소청과에서 응급실을 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공의에게 어필하는 수단이 돼버린 상태다. 병원 입장에서 소청과는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전히 교수들이 당직을 선다"며 "윗년차가 없는 진료과는 지원하기 꺼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전협은 수도권과 상급종합병원 쏠림현상, 필수의료 외면,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등을 지적했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인 여 회장은 "모기에 물렸다고 119에 신고하고, 심정지 환자의 리듬이 돌아와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지만 누군가는 1cm 찢어진 손가락을 빨리 꿰매주지 않는다며 응급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학병원의 3분진료가 문제라고 한다. 3분진료만으로 충분한 경환자를 상종에 몰리게 한 원인이 단순히 의사와 의료기관에게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책입안자들의 억지"라고 주장했다.

의사대신 고용하는 진료보조인력 문제도 언급했다.

여 회장은 "기피과 지원율의 추락을 몸소 경험하고 있지만 병원들은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의사 대신 값싼 인력을 고용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어쩔 수 없는 기형적인 수가가 유일한 이유"라고 비판했다.

 

'교육적 목적' 당위성으로 수련비용 지원 정부 설득

"입원전담전문의 효과 담은 보고서, 중요한 근거 될 것"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대전협은 구체적인 요구안을 제시했다. 

먼저 '보건의료 재원' 부문에서는 수련병원, 대학병원 내 전문의 채용을 위한 수가 및 예산 확대가 시급하다고 짚었다. 여기에는 교수, 입원전담전문의 등도 포함된다.

또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 36시간 연속근무에 대한 당직 수당을 인상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대전협 강민구 부회장은 "수련비용 지원은 교육 목적이라는 당위성이 있다. 단순히 '수가를 올리자'라고 두루뭉실하게 이야기하기보단 선진국에 비해 지원이 부족해 수가를 신설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정부를 설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원전담전문의를 포함한 전문의 채용 확대에 대해서는 구체적 보고서가 곧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여 회장은 "올해 말 전담전문의 측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질적 수준 등을 조사한 것을 발표한다고 들었다. 중간보고가 중요한 포인트"라며 "통계치를 근거로 제시하고 어필하는 것이 단기적인 플랜"이라고 설명했다.

대전협은 비효율적으로 투입되는 재원을 의료체계 확립에 사용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 정부에서 시행한 보장성강화 정책을 사례로 들었다.

강 부회장은 "우리나라의 내원일수가 해외에 비해 두 배가 넘지만 의료자원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있다. 다른 제도의 변화없이 보장성만 강화할 경우 상종 쏠림이 강화되기 때문에 수요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 부회장도 "문재인케어는 잘못됐다. 보장성강화로 수조원이 투입되며 환자와 보호자들의 체감은 어땠는지 궁금하다"며 "불필요하게 투입된 자원들을 정말 필요한 곳에 투자했다면 서울아산병원 사태 등을 겪진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다음으로는 1차, 2차, 3차 의료기관 간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서울대병원 외래환자 114만명 중 45%가 평균 3분대 진료를 보고 있다.

강 부회장은 "의료체계의 양극화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대학병원은 중증환자를, 일차의료는 경증환자를 전담할 수 있도록 제도 강화가 필요하다"며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상종 쏠림을 막아야 의료기관간 균형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일차의료기관에서 기본 진료를 받고 지역 의사로부터 100~300병상 병원, 중증 종합병원 순으로 진료를 받는 '허들'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여 회장은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인것도 사실이고 복지부도 노력하고 있다. 사실 복지부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라고 본다"며 "전공의들이 느끼기에는 획기적인 개선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강 부회장도 "비용은 싼데 질이 좋은 의료는 없다.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보건의료직군이 열악한 처우를 감당하고 있고, 이를 종합적으로 해결하려면 걸맞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