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응답하라 의료윤리
내가 생각하는 의사직업윤리

문지호
명이비인후과
원장
의료윤리연구회
운영위원
'직업'은 천직 또는 소명으로서의 '직(職)'에 생업으로서의 '업(業)'이 합쳐진 단어이다. 즉 직업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참여한 사회에 무엇인가 기여하는 공적인 일을 뜻한다. 직업윤리는 그 직업에 대해 윤리적 의무를 부과하며 고유의 권리를 유지시켜주는 장치이다.

의사의 직업윤리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타난 직업윤리의식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에 대한 근대적 개념은 1772년 존 그레고리(John Gregory)의 ‘의사의 의무와 자질에 대한 강의’가 발간된 때부터로 본다. 1847년에는 미국에서 '의사 윤리 강령'이 제정됐고, 1964년 세계의사협회에서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를 담은 헬싱키 선언을 발표하며 발전했다. 우리나라 의사의 직업윤리에 대해서는 대한의사협회가 2001년도에 제정하고 2006년 개정한 '의사 윤리 지침'이 한 예시가 될 수 있다. △ 의사의 일반적 권리와 의무 △ 환자와의 관계 및 사회적 역할 △ 시술과 의학연구와 관련된 윤리로 구체적인 범주를 제시했다(의협 홈페이지 참조).

'의사 윤리 지침'은 30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1개의 권리와 29개의 의무로 나눠 볼 수 있다. 제1조에 이 직업의 권리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의사는 양심에 따라 학문적으로 인정된 진료를 하며, 의료행위와 관련하여 누구로부터도 일체의 부당한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아니한다.' 바로 자율적 진료권이다. 그 다음부터 30조까지는 윤리적 의무사항이다.

현대 과학의 발전과 환자들의 권익 향상은 의사들에게 더 많은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 어떠한 의무를 지게 된다해도, 제1조에서 밝힌 진료권만 보장된다면 의사들의 직업윤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의사직무의 본질이 자율적 '진료권'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의사들은 직업윤리를 지키는 것이 다 옳은 일인지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다. 공익을 위한다는 경제적 논리에 밀려 진료권이 침해당하며 생긴 현상이다. 어떤 직종이든 직업 고유의 역할 및 권리가 경제 등 외부요인에 의해 간섭받기 시작하면 그 직업인은 슬그머니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된다. 의사의 경우도 진료권이 각종 규제로 침해당할 때는 환자에 대한 윤리를 지키기보다 단순히 규제만 피하는 편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전술한 것처럼 직업은 생계만의 수단이 아니다. 천직으로 받은 나의 소명을 다할 수 있어야 참 의미가 있다. 고유의 역할인 진료권을 행사할 수 없을 때 의사는 그저 생계만을 위한 영리적 업종으로 변질될 것이다. 2014년 봄 대한민국 의사들은 '올바른 의료'를 위해 1일 파업을 했다. 여러 언론은 직업윤리를 어긴 의사들이라며 혐오스런 반응을 쏟아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이 의사들의 진료권 훼손 문제를 다뤘고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직업의 본질 제1조가 훼손되면 국민들도 함께 불편감과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학창시절 의사를 꿈꿔왔던 지금의 의사들이 어떤 꿈을 꾸는지 아는가? 이들의 꿈은 윤리적인 '의사'로서 소명을 다하는 것이다. 내가 머문 곳에 다른 이들의 건강이 지켜진다는 것이 의사의 소명이고 꿈이다. 의사의 진료권은 의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권리는 타인을 위한 권리이고 국민을 위한 권리이다. 정부가 의사들에게 수준 높은 직업윤리를 기대한다면 완벽한 진료권을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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