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발전하는 의료기술보다 의료현장에서 보여지는 의료윤리의 수준이 진정한 선진국의 모습이라고 한다. 의료계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의료윤리에 대한 관심이 학계뿐 아니라 개원가에서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진료현장에서 부딪히는 의료윤리문제들에 대해 함께 나누고 생각할 수 있도록 의료윤리 향상 노력의 촉매제 역할을 한 의료윤리연구회에서 활동하는 의사들의 생각을 나눠보는 새 칼럼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1. 응답하라 의료윤리
내가 생각하는 의료윤리


개원의, 그리고 대부분의 임상의사에게 의료윤리란 무엇이며 왜 필요하고 동료 의사들에게 권해야 할까? 지난 3년 동안 '난생 처음' '체계적으로' 의료윤리를 배우고 함께 공부하면서 자주 되묻게 되는 화두이다.

병아리 의사 시절부터 심지어 '어깨 넘어'지만, 의과대학 학생 시절부터 우리는 수 많은 환자들과 만난다. 의사는 병을 치료한다지만 진단학이란 틀로 들여다 보면, 병에 걸려 괴롭고 불안한 환자를 만나서 무엇 때문에, 얼마나, 얼마 동안 불편했는지 일단 환자의 언어로 들어보고,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이것저것을 묻고 확인하고, 살피고, 만져 보고, 두드려 보고, 들어 보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도달한 진단명에 대해 설명해 주고, 다 이해하였는지 확인을 하고, 치료 계획에 대해 동의를 받고, 그 다음에야 비로소 질병, 그 자체에 대한 치료를 시작하게 되는 지난한 과정을 밟게 된다.

치료 과정 중에도 단기와 중, 장기 치료 결과나 부작용, 합병증 등에 대해 늘 설명하고 환자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전체 과정 중에 우리 의사는 환자가 충분히 알아듣고 자발적 동의를 하였는지(자율성), 혹시나 의학지식과 술기의 부족 혹은 태만으로 환자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악행금지), 지금 하는 치료가 진정 환자에게 최선인지(선행), 치료 외적 요인에 좌우되고 있지는 않은지(정의) 늘 살피고 되물어야 한다는 것이 의료윤리의 4대 원칙이요 핵심이라고 이해한다. 의료윤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입장이 아닌 이상 그 방대한 의료윤리 전반의 내용을 다 습득하고 숙지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의사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 잣대, 정치인이나 관료의 대중영합적(populism) 시각, 부정적인 사회 전반적 인식은 의사 집단의 개탄이나 투쟁만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환자 개개인의 의사와의 일대일 대면, 긍정의 총합으로만 가능하리라 본다.

의료윤리적으로 문제적인 동료의사가 몇 명이나 될까? 진료실에서 다루기 힘겨운 특이한 성향의 환자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 경험치로 보자면 각각 2% 안팎이고, 그 2% 때문에 나머지 98%의 선량한 환자와 성실한 의사가 불편을 겪고 피해를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35년 가까이 지속된 불합리한 의료 여건, '만악(萬惡)의 근원'인 저수가를 지탄하고 개선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병, 의원 경영의 문제도 절대 간과할 수 없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환자가 만족하고 의사가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진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시간 대기에 3분 진료라는 현상이 문제가 아니라, 2, 30분의 충분한 상담과 진료가 가능한 수가가 과연 얼마여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또한 최첨단 고난이도 치료를 위해 상급종합병원은 의료전달체계의 최정점에 서서 경영이나 수익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물론 이는 의사 집단의 대표자격인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와 함께 반드시 성취해야 할 일이다.

도덕(moral)은 '옳고 그름(right or wrong)'에 대한 자기 확신이고, 윤리(ethics)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좋고 나쁨(good or evil)'의 실천 기준이라고 한다. 우리 의사 개개인이 '옳고 좋은(right and good)' 진료와 태도를 견지하고 실천할 때, 환자는 국민은 사회는 비로소 우리 의사 편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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