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의료윤리 - <4>
내가 생각하는 의사 직업 윤리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수백만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이 '나의 원칙이 항상 일반적 법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라'는 칸트의 정언 명령을 따른 것이라 진술했다.

나치 법률가 한스 프랑크는 제3제국 정언 명령을 "만일 총통이 당신의 행위를 알았을 때, 그가 승인할 만한 방식으로 행위하라"라고 재정의했고 제3제국에서 유대인 학살 범죄는 합법이 됐다.

나치가 준동하던 20세기 초 미국에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저자 라인홀드 니버는 "집단의 도덕이 개인 도덕보다 열등하다"고 지적하며 집단 간 관계는 본질적으로 윤리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라 언급했다.

개인이 윤리 도덕적이라 해도 체제 방향성이 그릇되면 개인 윤리의 발현은 왜곡된다. 의사 개인 윤리 원칙이라 할 수 있는 비첨과 차일드리스의 자율성 존중의 원칙, 악행 금지의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이 잘 지켜져도 집단 수준 윤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21세기 한국 의사들의 직업 윤리에 도전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의사 윤리와 의사가 속한 집단의 이익이 동일하지 않다. 비영리 법인으로서의 의료기관은 조직 생존을 위한 경제 논리에 갈수록 매몰되고, 부실한 의료 전달체계 및 저수가 강제 등의 한국 의료의 문제와 맞물려 의사 개인의 윤리가 집단 안에서 왜곡될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둘째, 의사들 스스로의 투쟁을 다양한 의사 단체에 미루는 경향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자율성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의료 윤리와 직업 전문성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투쟁을 타인과 조직에 위임하는 이른바 '대리 투쟁'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0년 의사 투쟁에서 의사들이 요구한 '의권'은 의사 자율성으로 얻어지는 공적 이익이 정부의 규제 간섭으로 훼손될 수 있다는 문제 의식의 발로였을 것이다. 휴전 상태로 체제 불안정성이 높아 국가주의가 과도해지기 쉬운 우리 현실에서 개인 권리가 타국 이상으로 보장되기 어렵겠지만, 의사 직업 윤리는 사회적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으므로 전문가의 직업적 자율성과 양심은 존중돼야 한다. 한편으로 의사 집단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있어서 전문가 개개인이 직접 나서야 할 사명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은 개인을 사회적 윤리의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를 속박하는 모든 굴레에 대하여 개인 스스로 윤리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대 생명 윤리 준칙 중 하나인 뉘른베르크 강령은 나치가 저지른 반인륜 범죄를 반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으며 국가의 명령도 윤리에 맞지 않다면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는 전문가 자율성 원칙을 재확인해 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 이성인 '프로네시스'를 위해 자신이 속한 집단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있는 건강한 개인의 육성이 전문가 직업 윤리 확립을 위해 무엇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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