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응답하라 의료윤리
내가 생각하는 굿 닥터


이명진
명이비인후과원장
前의료윤리연구회장
좋은 의사(good doctor)는 환자나 의사 모두가 바라는 목표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씨앗과 좋은 토양이 필요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대한민국은 좋은 의사로 살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진료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수고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료진료나 값싼 진료를 하는 의사들만 윤리적인 의사라고 잘못 인식시키고 있다.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는 높지만 의료 서비스 수준이 이에 못 미친다는 불만이 많다. 의사들은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윤리적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항변한다. 고민의 수준을 넘어 해결 방법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영국과  미국의사들이 제일 고민하고 있는 화두는 바로 신뢰(trust)다.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고 좋은 의사로서 존경받으며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이 든다. 의사들이 어떻게 국민들에게서 멀어진 신뢰를 회복하고 좋은 의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원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고대에 의료(Medical Practice)는 단지 환자와 의사 사이의 단순한 관계를 적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제3자(보험사와 정부, 소비자 단체)의 출현으로 그대로 적용시키기 불가능한 환경이 되어버렸다. BC 5세기와  AD 21세기는 260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과 환경이 너무나 다르다. 새로운 윤리적 해석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굿 닥터가 되기 위해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는 것일까?

전문지식과 술기에 능해야
먼저 의사는 무엇보다도 전문지식과 술기에 능한 의사가 굿 닥터이다.

현대에서는 마음만 착하다고 윤리적인 의사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전문지식이 갖춰져야 윤리적인 의사가 될 수 있다. 아스베리우스 프리취는 '죄를 범하는 의사(The Sinning Doctor)'에서 의사의 도덕적 죄악 중에서 가장 중한 것이 "의술에 완전한 능력을 지니지 못한 채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환자를 위해 "의사들은 독서 수준을 넘어서는 치료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듬거리는 박애주의자보다는 능력 있는 악당에게 수술을 맡기겠다"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시대에 적합한 윤리기준 제정·실천
둘째로 현 시대에 맞는 윤리적 기준을 만들고 따르는 의사가 굿 닥터이다.

전문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고 윤리적인 것도 아니다. 인생의 경륜이 많다고 윤리적인 의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정확한 윤리기준을 배우고 실천하는 의사가 당당하고 윤리적인 의사가 되는 것이다. 환자의 자율성과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주며, 부단히 전공지식을 반복하고 습득해 최선의 치료를 하는 선행을 하고,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행위를 멀리하고, 정당한 의술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요구할 줄 아는 의사가 바로  당당하고 윤리적인 의사인 것 같다.

에티켓 잘 지켜야
세 번째는 에티켓을 잘 지키는 예의 바른 의사가 굿 닥터이다.

옛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정중하고 적절한 어휘를 선택해 설명해주고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소통의 매너가 필요한 것 같다. 환자들은 의사들의 작은 배려에 힘을 내고 의사를 신뢰한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저수가와 많은 규제조항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비록 돈을 좀 천천히 벌고 좀 덜 벌더라도 비윤리적인 의사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아무리 의료수가가 싸구려라고 해도 싸구려 의사로 폄하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정책은 항상 부작용을 낳게 된다. 정책을 주도하는 정부는 잘못된 정책의 부작용 중의 하나가 바로 의사들을 불친절하게 만들고 비윤리적인 이득에 눈을 돌리도록 유인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의사도 경제활동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돈도 벌어야 하고 더 벌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런 욕망을 죄악시하는 것은 잘못된 편견일 뿐이다.

적절한 대우는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적절한 대우 없이 향상된 서비스만 요구하게 된다면 편법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의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긍정적인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시설투자도 해야 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의사,   ‘굿 닥터(good doctor)’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이다. 정의로운 환경에서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의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노력과 정부의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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