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응답하라 의료윤리
내가 생각하는 굿 닥터

안상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고문

역지사지 태도로 경청할 때 환자와 라포 형성

 의료계 리더들에게 좋은 의사라는 주제에 관해 물었을 때, 환자에게 설명을 잘해주는 자상한 의사라는 구태의연한 답이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그렇기도 하겠으나 의료관리학이 주도하는 대한민국의 의료 2.0세대에 사는 현실이 반영된 듯하다. 그래서 의사들이 생각하는 굿닥터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변화 요청에 용기를 갖고 소통해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율성을 가지고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며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데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사회적 참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비 의료인에게 "굿닥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십중팔구는 친근하고 따뜻한 의사라고 답한다. 물론 의료계 리더들이 말하는 사회와의 소통이라는 항목에 이런 것들이 포함되겠지만,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누구나 알고 있으나 실천되기 힘든 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필자는 인간관계론에 바탕을 두고 교감을 잘하는 굿닥터를 정의해 보고자 한다.

인간은 본래 남에 대해 관심을 갖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갖는 법이다.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상대방에게 순수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다. 그러므로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병을 치료해 줄 대상으로 환자를 대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을 궁금해 하며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유능한 탐방기자로 이름난 아이작 F. 마코슨은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말에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좋은 첫인상을 주는 데 실패한다고 말한다. "자기가 할 말만 생각하기 때문에 귀를 놀리는 사람이 많다. 여러 거물급 인사들은 화술이 능한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경청자를 좋아한다. 그러나 남의 말을 잘 듣는 재능은 다른 재능보다 훨씬 얻기 힘든 일이다." 비단 좋은 경청자를 바라는 것은 거물급 인사뿐만이 아닌 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때론 의사들이 환자의 이야기를 몇 마디만 듣고 그의 증상을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미 판단이 서고 나면 환자와 보호자가 말을 하는 순간에도 의사는 머리속으로 향후 진단 및 치료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물론 현재 의료시스템에서 환자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환자들에게 깊은 신뢰감과 안도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의사들이 환자의 말을 좀더 경청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상대방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없애고 당신의 말을 관심있게 듣도록 해 주는 좋은 방법은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일 제가 당신이라도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까요"라고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더구나 상대방의 입장이 되면 당연히 상대방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될 테니까 이 말에는 100퍼센트의 성의가 담긴 것이라고 한다. 의사들이 치료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와 같은 인간관계론을 이용한다면 환자와의 라포 형성에 도움이 될 것임은 물론, 치료 과정에 있어서도 환자 스스로 협조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이 논리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감정을 중시하고 자존심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의사들도 명심해야 한다. 환자들이 느끼는 감정에 따라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에게 좋은 약이 되기도 하고, 자존심이라는 화약고의 폭발을 유도하는 불씨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관계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삼는 것은 본인 외에는 대부분 그것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자기의 관심사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람을 움직이는 현명한 방법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삶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란다. 이를 적용해 보면, 환자가 원하는 것은 의사가 혈압을 직접 측정해 주는 것인데, 자동화된 혈압 기계로 혈압을 측정하라고 한 후 약 처방에만 신경 써서 혈압을 잘 조절해 주는 것이 환자에게 그리 만족감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또는 환자가 통증조절을 강력하게 원하는데 약을 많이 먹는 것이 몸에 좋지 않다며 의학적 주장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료행위 역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일들이다.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데 중요감을 갖도록 존중해 주는것, 논쟁을 피하는 것, 이름을 기억하고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것, 우선 칭찬을 하고 체면을 세워주는 것 등이 있으나 이를 머리로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잘 적용하는 의사가 결과적으로도 굿닥터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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