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응답하라 의료윤리
내가 생각하는 굿 닥터

홍성수
의료윤리연구회
회장
연세이비인후과
원장
세월호라는 악령이 온 나라를 떠돌고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방치하고 만들어낸 무원칙, 무사안일, 안전 불감증 그리고 마피아로까지 비유되는 온갖 관치 규제와 청탁 유착의 불법, 편법, 비리의 비능률이라는 악령이다. 이 악령은 이미 우리 사회 모든 분야와 각자에게 스며들어 익숙하고 보편적이고 불가항력이기에 분노가 아니라, 공포와 무기력에 휩싸여있다.
 
세월호 선장의 무력한 모습을 보면서 직업전문성, 선장으로서의 사명과 직무 그리고 '좋은 선장'이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 많은 인명을 저버리고 앞다투어 탈출한 무책임한 괴물, 살인자라며 개인의 윤리나 자질의 문제로 좁혀 단정지어도 될까? 법적 처벌을 하는 것으로 끝날 일일까? 구체적이고 대대적인 국가 개조가 절실하고 그렇기에 우리 의료 분야,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하겠다.
 
의사는 법으로 정한 기간 동안 소정의 교육과 수련을 이수하고 시험을 통과하면 면허가 가능하고 자격이 갖춰진 것으로 일단 인정한다. 그나마 발전하는 의학의 최신지견과 술기에 대해서는 학회 학술대회, 각종 세미나, 심포지엄, 보수교육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있다. 과연 이것만으로 '좋은 의사'가 되기에 충분할까?
 
의학(medicine)이 과학의 한 분야로서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일 뿐이라면 모를까 의료라는 실천(medical practice)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한 인격체와의 만남이며 교감이며 관계이기에 포괄적이고 섬세하고 진지한 전문가로서의 자기 성찰과 확신에 대한 평생지속적인 점검과 강화가 필요하다. 또한 의사에게 요구되는 전문성(professionalism)과 역할(role), 이를 실현하기 위한 비용(cost)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감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그런 장치를 갖추지 못 한다면 일차적으로 의사가 불행해지고, 불행한 의사들에게 건강을 맡겨야 한다면 최종적 피해는 이번 참사의 애꿎은 희생자들처럼 환자-국민이 다 떠안게 될 것이다.
 
그 선장도 당연히 자격증이 있을 것이고 나름 경력도 쌓았을 것이다. 하지만 1년에 몇 시간이나 선장의 역할에 대한 전문직 보수교육을 이수했을까? 1년에 몇 번 정도 재난상황 대처 훈련을 실시하고 지휘해 봤을까? 어느 단체, 어느 기관에서 선장의 전문직업성 교육을 책임지고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을까? 이와 같은 교육과 훈련을 위한 예산으로 선장 1인당 얼마나 책정되어 있을까? 그렇지 못 한 환경에서 한 개인에게 선장으로서의 긍지와 명예를 기대해도 될까? 본인의 책임 하에 운항하는 배에 탄 많은 인명에 대해 무한책임이 있음을 늘 자각하고 있었을까? 본인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아니면 사회적 합의의 문제인가?
 
의과대학 입학 이후 의업에서 은퇴할 때까지 의무적으로 매년 40시간가량의 직업전문성 교육을 시행하는 캐나다에서조차 전체 의사의 3% 안팎이 내부 징계나 사법적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아무런 제도나 장치가 없음에도 이 만큼이나마 의료계의 기본이 유지되는 우리나라는 과연 의사들의 의료 기술뿐만 아니라 의식 수준도 최고 수준인가, 아니면 어찌 되려니 다들 손 놓고 있다가 언젠가 대형사고가 터질 아슬아슬한 시한폭탄인가? 한 번의 대형 참사가 아니라 눈에 안 뜨이게 서서히 더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선언적 의미의 의사윤리나 강령을 제정하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무사안일, 복지부동의 관료와 뭐가 다를 것이며 세월호 선주나 그 선장과 뭐가 다르겠는가? 이번 참사 직후 페이스북 친구 의사 한 분이 제일 먼저 챙긴 일이 병원의 응급의료 장비 점검과 직원 교육이었다고 한다. 존경스럽다. 지금 우리는 차분하게 각자 주변의 위험 요인을 살피는 일이 우선이며 그 이후에나 그 선장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바다와 배를 제일 잘 아는' 선장이 엉뚱한 마음을 먹으면 수많은 승객의 안전을 저버릴 수 있기에 선장 스스로 최고의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자체 교육과 현장 훈련 프로그램에 치중한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선장의 최후 하선을 법으로 규정하는 곳은 없다고 한다. '내 배 정신(My Ship Spirit: 선장인 나는 내 배와 운명을 함께 한다)'은 법률의 영역이 아니라 전문직업성의 자발적 덕목이자, 윤리와 도덕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몸과 질병을 제일 잘 아는' 우리 의사들도 좋은 의사답게 '지킬 것은 자발적으로 지킬 수 있는' 그런 선진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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