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응답하라 의료윤리
내가 생각하는 굿 닥터

최주현
대한전공의협의회
사무총장
동명의 인기 드라마에서처럼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굿 닥터'의 조건은 '허준'의 성실함과  '골든타임' 최인혁의 명철함, '뉴하트' 최강국의 헌신성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보드리야르가 '시뮬라시옹'에서 말했듯이 매체가 만들어내는 시뮬라크르와 리얼 월드는 상호 복제하며 '좋은 의사'의 모습을 재구축한다.

푸코 식으로 말하면 해결되지 못한 욕구가 경계를 넘어 탈주하듯이, 사람들이 꿈꾸는 것들은 실제 마주치기 힘든 장면일 경우가 많다. 드라마 속 교통사고 현장에서 생면부지 피해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의 모습이나 난치병 환자를 위해 사재를 털어 치료비를 마련하는 주치의의 고뇌는 현실의 의사와 환자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지점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존재하는 욕망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를 들여다보아야 할 일이다.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다다른 막다른 골목에는 대개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가 놓여 있다. 의료가 발전하고 세분화할수록 진료장비와 진단기기의 가격이 높아진다. 치료 옵션이 많아질수록 시간당 단위 의료 비용은 증가한다. 전통 의학에서 한나절 발품을 들이면 구할 수 있던 약초에 비하면 국내 시판허가를 받지 못한 수입 신약은 팔을 뻗어도 닿지 않는 저 하늘의 별과 같다.

환자의 마음과 의사의 마음이 같아진다면 좋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 같을 것이다. 자기 환자에게 위해를 가해서 좋을 치료자가 어디 있겠으며, 수많은 병·의원 중 하나를 자유롭게 골라 간 환자가 굳이 의사에게 과한 실망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윤리적 행위를 제외한다면 환자-의사 신뢰의 가장 큰 걸림돌은 현재로서는 비용 문제일 것이다.
 
환자에게 부당하게 치료비 부담을 지우는 것을 막고자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도입됐다. 건강보험 체제 하에서 심사, 평가, 삭감, 실사, 환수까지 이어지는 돈 샐 틈 없는 방벽을 구축했다는데도 환자-의사의 경계는 여전히 단단해 보인다. 끝없는 의사 간 경쟁 끝에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자기 희생적 '굿 닥터' 가 나와주길 바라는 걸까. 의료 윤리의 4대 원칙 중 하나인 '정의의 원칙'은 의료 현장에서 정의와 공평이 이뤄져야 함을 역설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소통과 합의를 필요로 하는 경계 지점이다.

모든 의사가 '굿 닥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의사나 환자나 꼭 같다. 또한 무엇이 '굿 닥터'인가에 대한 답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대체로 합의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의사와 환자가 바라는 지점에서 만나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을 허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가와 체제의 억압은 필연적으로 탈주와 전복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모든 의사가 '굿 닥터'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굿 닥터'를 애써 찾아야 하는 수고와 선택으로 인한 불편과 불안은 감수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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