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의대 증원 수요 조사 결과 발표에 의협 “총파업 불사하겠다” 으름장
개원가 “의협 입장 발표 늦은 감 있지만 단체 행동 동참할 것”
국민 압도적 찬성 여론 발목 잡을 듯…복지부는 추진 속도 ↑

21일 정부가 의대정원 수요조사 결과 발표를 한 후 대한의사협회가 이를 비판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의협 회관에서 열었다.  
21일 정부가 의대정원 수요조사 결과 발표를 한 후 대한의사협회가 이를 비판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의협 회관에서 열었다.  

[메디칼업저버 박서영 기자] “보건복지부가 비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하려고 한다.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시 최후의 수단으로 총파업까지 불사하겠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정부와 줄다리기 싸움을 하던 대한의사협회가 결국 총파업을 언급하며 으름장을 놨다. 정부가 의대 수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다.

그러나 국민들의 압도적 찬성률 등으로 인해 의협의 단체 행동이 성공으로 귀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지난 21일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2025학년도 입학 증원 규모는 최소 2151명부터 최대 2847명에 달한다. 특히 2030년까지의 증원 수요는 최소 2738명에서 최대 3953명으로, 현 의대 정원인 3058명의 두 배 수준이다.

의협은 같은 날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즉각 반발에 나섰다. 그동안 정부의 의사 인력 추계 방식을 두고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했지만, 총파업을 시사하며 강하게 경고한 것은 간호법 사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22일 개최된 제18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는 의협이 30분 만에 자리를 뜨면서 회의가 파행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양동호 의장은 “정부가 비과학적인 수요 조사를 일방적으로 발표해 여론몰이를 한 점을 항의했다”며 “이번 주 일요일 전국의사대표자회의에서 총파업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원가 “파업 동참은 하겠지만 의협 결정 너무 늦은 감 있어”

의협 단체 행동의 가장 큰 축을 꼽으라면 개원의들이다. 개원가는 일단 “의협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는 할 것”이라는 입장이 중론이다. 다만 의협의 뒤늦은 대처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개원의 A씨는 “의협이 그동안 의대 정원 확대를 사실상 용인하는 인상이 강했다”며 “그런데 수요 조사 발표 직후 갑자기 총파업을 운운하며 강하게 반대해 개원의들은 조금 의아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부터 의사 수 한 명도 안 늘리겠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그동안 지켜만 보다가 이제 못 막을 것 같으니까 갑자기 강성으로 나오는 게 아쉽다”고 덧붙였다.

개원의 B씨는 “파업이 쉬운 것도 아니고, 최후의 수단인데”라며 말을 흐리면서도 “개원가는 의협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고 동참 의사만은 명확히 드러냈다.

개원의 C씨 역시 “개원가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는 완전히 '언 발에 오줌 누기'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분위기”라며 “파업 등의 방식으로 의견을 천명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총파업 가능성에 무게감을 느끼면서도 단체 행동에 동참하겠다는 이유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가 장기적으로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이 더 크기 때문이다.

B씨는 “2020년에 공공의대 설립 등의 문제로 의협과 문재인 정부 간 갈등이 심하지 않았나. 이후 윤석열 정부로 들어서면서 의료계 내부에 분명히 기대감이 있었다”며 “그런데 현 정부가 과학적이지 않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료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굉장히 실망이 큰 상태”라고 말했다.

 

대전협 집행부는 “정부에 좌시하지 않을 것” 강경하지만
전공의 개개인 참여 여부는 두고봐야

지난 5월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메디칼업저버 DB
지난 5월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메디칼업저버 DB

그간 지켜보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할 뿐 특별히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던 전공의들도 “정부의 독단적인 결정에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침묵을 깼다.

특히 전공의들은 종합병원 의료 최전선을 담당하는 데다 2020년 당시 의료계 단체 행동을 이끌었던 터라 정부에게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22일 성명서를 통해 “정부는 지금까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 의사 인력 확충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들이 부르짖는 과학적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라며 “정부는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협과의 합의와 달리 사실상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대 증원 논의에 앞서 △전문의 중심의 의료 체계 구축 △의료 사고 법적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의료 수요 및 의사 수급 추계의 과학적 근거 마련 등을 우선 촉구하는 한편, 정부가 독단적인 결정을 강행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도 강조했다.

그러나 전공의 개개인이 나서서 단체 행동에 동참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앞서 지난 2020년 파업에 나섰던 전공의들은 의협이 먼저 현장 복귀 협의서를 체결하면서 파업 동력을 잃고 내부 진통을 겪은 경험이 있어서다.

지난 5월 대전협 강민구 전 회장 역시 “더이상 이기적 직역으로 손가락질받고 싶지 않다. 전공의들은 국민 건강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며 파업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국민 찬성 여론도 의협 총파업 여부에 영향 끼칠 듯

지난 1월 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했다. ⓒ메디칼업저버 DB
지난 1월 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했다. ⓒ메디칼업저버 DB

그런가 하면 이들의 발목을 가장 강하게 잡는 건 의대 정원 확대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는 국민 여론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서든포스트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에게 실시한 유·무선 전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료 취약지와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할 의사를 충원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응답자의 57.7%가 ‘매우 필요하다’, 25.0%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의대 정원에 찬성하는 비율이 무려 전체의 82.7%를 차지하는 것이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를 비롯한 환자단체 역시 “필수의료와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고 지지한다”면서도 “그 방법을 두고 정부와 의협 간 갈등으로 인해 환자들에게 발생할 여러 피해를 심히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무조건 식 증원이 아닌 지역의사제 등의 안전장치도 함께 추진할 것을 요청하면서, 이번 사태로 인해 2020년 전공의 파업과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진다면 사태를 악화시킨 단체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복지부는 이번 수요 조사는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기초 작업이라며, 앞으로 사회 각계와 논의하며 이행 계획을 구체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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