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흐름 반영한 수련 제도의 전면 재검토 필요
전공의가 자부심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해답

이미지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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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전공의가 돌아온다.

강경파인 박단 전 비대위원장이 사퇴하고,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지도부가 새롭게 개편되면서 교착 상태에 빠져있던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변화될 기미가 보인다.

새로 선출된 한성존 비대위원장은 전임 지도부의 불통을 비판하고 의료정상화와 소통을 강조해, 전공의 복귀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모이고 있다. 이르면 당장 7월부터 시작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부터 대거 복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이 바뀐 수련환경이다. 정부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정작 수련현장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는 차가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다시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으로 돌아온다면, 필연적으로 수련제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존의 수련제도는 그 수명이 다했기 때문이다. 본지는 창간 24주년을 맞아 의료대란 종식 후 수련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바뀐 환경 속 전공의 수련, 나아 갈 방향은? ①
바뀐 환경 속 전공의 수련, 나아 갈 방향은?  ②

최근 대한의학회는 '전공의 수련 교육원' 설립을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현재 수련 시스템은 복지부가 수련기관 지정 및 정원을 승인하고 각 학회가 수련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병원이 실무를 맡고 있다. 이를 관리·감독할 전담기구를 따로 설립하자는 것이다.

의학회 이진우 회장은 "그동안 수련 교육이 각 병원의 역량과 책임 속에서 체계적 지원 없이 운영돼 온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수련의 질을 모니터링하거나 교육 내용을 점검하는 독립 기관이 없어 병원별, 전공과별 격차가 심각하다. 전공의가 인력 공백을 메우는 '노동력'으로만 취급되는 악순환도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은 전문의 수련 프로그램을 인증하는 ACGME(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에서, 영국은 의사 면허와 교육을 총괄하는 국가 기관 GMC(General Medical Council)에서 전공의 수련 교육 프로그램 평가를 전담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전담 기구를 설립해 △수련 교육 과정 개발 △수련 평가 △지도전문의 역량 개발 △수련기관 평가 △전공의 교육 연수 체계화 등 수련 전 과정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게 의학회의 제언이다.

미래의료포럼은 이를 기반으로 모듈 기반 프리랜서형 수련 제도를 제안했다. 특정 역량 단위의 학점 취득으로 전문의 인증을 받는 구조다. 예를 들어 △중환자실 모듈 △외상센터 모듈 △당직 50회 모듈 등 단위별로 쪼갠 훈련 과정을 이수하고, 학점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전문의 자격 심사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프리랜서 방식으로 다수의 수련병원과 단기 계약을 맺어 근무하면서 다양한 병원에서 수련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존 도제식 수련과 달리 경력 인정이 가능해, 수련 중단자나 일반의의 재수련 경로도 열 수 있다. 또 여성 전공의나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 장벽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모듈제 도입에 대한 의료계 내부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기존 연차제 수련에 체크리스트 기반 유연성을 더하는 과도기 수련안도 고민해 볼 수 있다. 미이수 항목은 타 병원 파견 수련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모듈 수련제로 넘어갈 수 있다. 

수련 관리 전담기구 설립부터 수련제도 재접근까지…다양한 목소리  

일각에서는 변화하는 사회구조와 의료환경을 고려해 수련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와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보건학자 B씨는 "예를 들어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지원 전공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저출산 사회에서 장기적으로 해당 과의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이라며 "관성적으로 같은 수의 전공의를 뽑으며 지원률을 걱정하기보단 이들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전공의 수를 줄이는 게 맞다"고 밝혔다. 

2025년 수련병원 근무 전공의 인원
2025년 수련병원 근무 전공의 인원

고령화로 정부가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주치의 제도 등 일차의료 강화에 나선 상황에서 긴 전공의 과정을 밟는 것이 보편적일 필요도 없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태현 교수(의료경영학과)는 "우리나라는 전공의 과정을 밟은 전문의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유달리 높은 국가"라며 "그러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전문의가 돼서는 다른 진료과로 개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전공의 과정을 밟지 않고 일반의로 개원하는 경향이 꾸준히 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지난해 의원급 일반의 개원이 11% 증가했다. 

이 때문에 전문의 양성 트랙의 이원화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종합병원 이상에서 근무할 세부 과목 전문의와 개원가로 나갈 일차 의료 전문의를 분리 양성하자는 것이다. 

목원대 의생명보건학부 권혜영 교수(보건의료행정학과)는 "현행 제도에서는 국시를 통과하면 바로 개원을 할 수 있어 소비자 입장에서 의료질을 우려할 수 있다"며 "이에 미국의 서브인턴제처럼 국시 이후 일정 기간 수련을 통과해야 단독 개원할 수 있도록 별도의 수련제도를 운영하자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전공의들이 돌아오고 그들이 다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임은 변함이 없다. 특히 전공의들이 없어 무너지고 있는 필수의료 현장에서 그들의 복귀는 매우 시급한 문제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당장 초과사망률 등이 표가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막고 있을 뿐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전공의들이 사라진 동안 상급종합병원의 중증응급환자 대응능력은 이미 하향 고착화됐으며, 의료 개입이 늦어지면서 환자들의 피해는 지금도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전문의나 의료인 수급 없이 전문의 중심의료를 논하는 것은 기득권의 욕심일 뿐"이라며 "다음 세대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전공의는 양성돼야 한다. 이들을 억지로 필수과나 지역의료에 눌러앉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필수의료과를 자랑스럽게 선택하고 일할 수 있도록 보상과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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