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가 떠났던 이유, 여전히 유효한 구조적 문제
인센티브 기반 수련환경 개선, 효과보기 어려워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전공의가 돌아온다.
강경파인 박단 전 비대위원장이 사퇴하고,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지도부가 새롭게 개편되면서 교착 상태에 빠져있던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변화될 기미가 보인다. 새로 선출된 한성존 비대위원장은 전임 지도부의 불통을 비판하고 의료정상화와 소통을 강조해, 전공의 복귀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모이고 있다. 이르면 당장 7월부터 시작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부터 대거 복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이 바뀐 수련환경이다. 정부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정작 수련현장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는 차가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다시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으로 돌아온다면, 필연적으로 수련제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존의 수련제도는 그 수명이 다했기 때문이다. 본지는 창간 24주년을 맞아 의료대란 종식 후 수련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바뀐 환경 속 전공의 수련, 나아 갈 방향은? ①
바뀐 환경 속 전공의 수련, 나아 갈 방향은? ②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밀어붙였던 전 정부가 물러나고 새 정부가 들어서도 전공의들은 별다른 복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6월부터 수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잠시 열었을 때 이에 답한 인원은 추가 모집 정원의 5.9%(860명)에 불과했다. 현재 수련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공의들은 2532명으로 의정갈등 전 대비 18.7%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아직은 돌아갈 때가 아니다"라던 강경파 대전협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이 돌연 사퇴를 선언하고, 새 정부와 대화를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고 주장한 서울아산병원 한성존 전공의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된 후 세브란스병원 김은식 전공의대표, 서울대병원 김동건 전공의대표, 고려대의료원 박지희 전공의대표 등과 함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박주민 위원장과 교육위원회 김영호 위원장을 만나 현안 해결을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선출 소감에서도 "의료정상화를 위한 논의가 최우선"이라며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인 만큼 대화 물꼬가 빠르게 트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르면 7월에 있을 하반기 전공의 모집부터 복귀자가 대거 몰릴 수도 있다는 예측이다.
그러나 전공의들의 복귀가 곧 해피엔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공의 복귀를 가로막았던 낡은 수련환경의 구조적 폐단 즉, 고된 노동, 실습 기회 부족, 법적책임 전가, 정책 시스템 불신 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이는 언제고 다시 터질 화산이다.
수련환경 개선에 팔 걷어붙인 정부, 그게 진짜 문제일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전공의 수련지원 사업 추진계획안'을 발표하고 시행 중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필수의료 분야 수련 지원금 확대 △지도전문의 활동 지원 강화 △수련환경 혁신 예산 확보 등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공의 근무단축은 시범사업을 통해 전공의의 연속근무 시간을 24(+4)시간으로 줄이고, 주당 근무 시간도 72(+8)시간을 넘지 않도록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시범사업 참여 시 전공의 정원 추가 배정 및 수련환경 평가 현지 조사 면제 등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은 해당 시범사업에 모두 참여 중이다.
또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신경과, 신경외과 등 8개 전문과목의 경우 전공의와 지도전문의에게 수당을 지원하고, 외과에는 술기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학회별 보조금이 지급된다. 수련환경 혁신을 위한 예산도 매년 따로 배정된다.
2025년 확보된 예산은 2788억원으로 이는 전공의당직실, 의학교육지원실, 전공의 휴게실 및 학습실 등 시설 및 기구 개선에 사용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기관 협력수련 시범사업이다. 전공의가 중증에서 경증까지, 지역의료 임상 등 경험을 두루 쌓을 수 있도록 다양한 기관 간 협력수련 체계(네트워크) 구축을 하겠다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과 연계, 상급종합병원이 수련책임기관이 돼 지역의 수련 협력병원에 6개월 이내 범위에서 전공의를 파견하는 방식이다. 수련책임기관 1개, 수련협력기관 5개 내외 구성을 원칙으로 하되, 수도권 수련책임기관은 비수도권 의료기관 1개 이상을 포함하도록 해 지역의료가 소외되지 않도록 했다.
앞서 공공병원이나 국립대병원 중심으로 이뤄졌던 공동수련 시범사업의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병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을 완화했다. 전공의 파견수당, 수련 협력 기관의 담당 전문의 수당 및 운영비 등이 지원될 예정이다. 여기에 최근 국회에서는 전공의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수련시간을 주 60시간 이하로 줄인 법안들도 발의됐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차갑다. 임상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대한수련병원협의회 관계자 A씨는 "복지부에서 돈을 준다고하니 여러 병원에서 참여하겠다고 나섰지만, 얼마나 내실있게 운영될지는 미지수"라며 "특히 절대적인 수련시간을 줄이고, 시설을 좋게 해주면 전공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정책이 정해졌는데, 이는 전공의가 노동자가 아닌 수련자라는 부분이 간과된 접근 방식"라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 치료, 특히 외과적 수술은 끝나는 시간을 장담할 수 없는데, 이를 몇 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다고 정하는 것부터가 모순"이라며 "시간이 줄어든 만큼 내실있는 수련을 하려면 수련책임 교수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수련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업무가 몰려 있고 연구도 병행해야 하는 교수들에겐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다기관 협력수련 시범사업 역시 시간과 예산의 낭비만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A씨는 "수련병원의 경우 오랜 기간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으나, 협력수련 병원으로 신청한 1차와 2차 의료기관에 그런 교육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교육 프로그램이 얼마나 공유될지도 의문이다. 자칫, 그야말로 값싼 노동자 역할을 하다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예산마저 6월 국회에서 본예산 대비 51.3%(1235억 6100만원)이 감액되면서 해당 정책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키우게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편성된 예산 중 상반기 전공의 복귀가 거의 이뤄지지 않으면서 불용된 부분을 감액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정부의 인센티브 기반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정책이 유의미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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