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노동환경, 실습 기회 박탈, 의료사고 책임 등 지목
전공의 없는 수련 환경 고착화, 복귀 후에 적응도 걱정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의료계 초유의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는 어느새 1년 반을 넘어가고 있다. 의대 증원 정책을 밀어붙인 윤석열 정권이 물러서고 새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그들의 복귀는 지지부진하다.
의료계는 새 정부에 이들의 복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달라고 당부하고 있으나, 지난 1년간 병원들은 그들의 공백을 기술과 인력으로 메웠다.
정치권도 더 이상 그들과의 대화에서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돌아올 이들은 다 돌아왔다"는 기조가 팽배하다. 의대증원 철회, 전공의 추가모집, 필기시험 면제, 입영 특례 등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모두 사용했음에도 그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여전히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부에 '명분'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명분이란 무엇인가? 돌아오고 싶다고 외치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진짜 문제는 무엇인지 알아본다.-편집자 주
① 위기의 전공의 수련, 왜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가? 上
② 위기의 전공의 수련, 왜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가? 下
③ 바뀐 환경 속 전공의 수련, 나아 갈 방향은? 上
③ 바뀐 환경 속 전공의 수련, 나아 갈 방향은?
가장 먼저 손에 꼽히는 것은 수련 기간 중 노동강도가 가혹하다는 것이다. 수련환경 개선은 전공의들의 7대 요구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언급됐던 부분이다.
그간 전공의들은 도제식 수련 속에서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부담하고 있었다. 2015년 전공의 수련 개선법이 마련되면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일선 수련현장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적발되더라도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 외엔 별다른 조치가 없어 악습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공의 평균 월급은 약 400만원, 주당 근무시간은 88시간에 달한다. 법적으로는 주당 88시간 근무이지만, 실질적으론 주 120시간, 연속 48시간 근무도 빈번하다. 이를 기반으로 계산하면 전공의의 시간당 임금은 1만 1538원으로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상업화된 의료기관 구조 속에서 전공의들이 충분한 술기 실습 기회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주요 수술은 교수와 PA가 전담하고, 전공의들은 병동 업무, 행정, 전산 입력 등 잡무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자체 통계에 따르면 국내 외과 수련의의 수술 참여 시간은 전체 수련 시간의 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대학병원 전공의는 "수술방 대신 서류 작업에 치우치는 현실이 반복된다"며 "전공의가 기술을 익힐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의료사고 책임 문제 역시 전공의들의 발목을 붙잡는 원인이다. 지난 3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의료사고 안전망 확충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단국대병원 외상외과 허윤정 교수 "전공의는 피교육자이자 수련생 신분으로 단독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대학병원의 테두리 안에서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에도 최근 의료기관의 상업화로 인해 최근 의료행위 과실이나 의료진 감독 소홀 등의 법적책임을 전공의가 단독으로 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재일 비상대책위원은 지난 3월 국회 정책토론에서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고연차 전공의 21명 가운데 12명이 의료 소송으로 인한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누가 전공의 수련을 받으러 응급의학과에 지원하겠는가"고 되물었다.
최근 정부가 필수의료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감면 등의 내용을 의료사고특례법을 추진했으나, 환자단체 등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
복귀해도 마찰 우려, 수련 포함 의료체계 본질적인 손질 필요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으로 복귀한다고 해도 병원 내에서 마찰이 우려된다. 장기화된 공백 속 일부 수련병원은 이미 전공의 없는 운영 시스템에 적응하고 있어, 전공의 역할이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수련병원 현장에서 전공의를 배제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6월 복귀한 전공의 D씨는 "진료지원간호사, 인공지능(AI) 기술 활용, 전문의 업무 확대 등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어, 다시 역할 분장할 때 어려움을 느꼈다"며 "일부 병원에서는 전공의를 반기지 않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고 말했다.
의료사태를 겪으면서 발생한 내부 갈등과 의정불신 등도 오랜 기간 상처로 작용하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정적으로 의정갈등으로 발생한 정책 불신과 미래 불확실성이 전공의들에게 충격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수련과정에서의 불합리함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현재를 견디면 미래가 보장돼 있다는 점 때문"이라며 "이번 의료사태로 정부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미래가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전공의들이 충격을 받고 버틸 의지를 잃었다"고 전했다.
D씨도 "의료사태 과정에서 직역간, 세대간 갈등의 골이 크게 패였다"며 "고령화, AI, 인구구조 악화 등 여러 위기 상황에서 의료계가 전문가 단체로서 목소리를 내며 정책을 이끌어야 하는데 컨센서스 마련도, 국민 신뢰 회복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토로했다.
전공의에 한정하는 게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손을 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의료 붕괴와 필수의료 인력 부족, 고령화와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 등 저수가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지적돼오던 의료 문제를 이번 기회에 손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의료 전문가는 "고령화에 맞춰 지역 커뮤니티 돌봄의료를 강화하겠다면서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과 정원은 그대로"라며 "저출산으로 소아와 산모가 줄고 있는데,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의 전공의 수를 유지하는 데 정책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맞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병원들이 수익 보전을 위해 전공의의 노동력을 값싸게 착취하려 하고, 전공의들은 수련 후 비급여진료가 많은 진료과로 빠지면서 필수의료가 붕괴한 것이 근본적 원인"이라며 "변화하는 사회 구조에 맞춰 전공의의 수련을 포함한 의료전달체계에 본질적인 손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하반기 추가모집을 예고하고 있지만 시스템 신뢰 회복 없이는 복귀율 반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전공의 없는 의료 현장은 일시적 공백을 넘어 의료계의 구조적 전환기로 접어들고 있다. 의료계와 정부가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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