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의료계, 잇따른 규탄성명 발표와 기자회견 통해 여론 환기
범의료계 대책 기구 구성해 총력 대응 예고
의료법 개정 및 정부 제도 개선 위한 방안 모색

[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지난해 말 대법원의 한의사 초음파 사용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에 의료계 전체가 분노와 함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2월 22일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한의사 A씨에 대해 형법상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한의사 A씨는 부인과 증상을 호소하던 여성환자를 진료하면서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약 2년간 68회에 걸쳐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했지만 환자의 자궁내막암 발병 사실을 진단하지 못해 형사 고발됐다.

대법원은 기존 대법원의 판례와 다르게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해 의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할 때 의학적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 한의사가 사용해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없는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에, 의료계는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각 시도의사회 및 전문진료과목 학회 및 의사회 등 비판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의협 한방특별위원회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송두리째 흔드는 불합리한 한의사 초음파기기 판결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규탄했다.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일로, 이 판결의 결과로 무면허 의료행위가 만연하게 돼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의협 대의원회는 이번 판결로 국가가 보장해야 할 국민의 건강추구권이 심각하게 유린당할 위기를 맞았다며 초음파 장비 자체의 위험도는 낮을지라도 초음파를 이용한 진단 과정에서 오진이 발생한다면 환자는 물론 공중보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것이 자명해 대법원 판단은 매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대한의학회 역시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단하지 않은 대법원의 판결에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한다고 발표했다. 

의학회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한 의료기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초음파 기기에 미숙한 사용자가 이를 이용해 ‘부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그에 따라 치료를 하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대로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범의료계 한의사 초음파 판결 대책기구 구성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비판 성명에 이어 직접 대법원 앞에서 규탄집회도 열렸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4일 대법원 맞은편에서 한의사 초음파기기 사용 대법원 판결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박명하 회장은 "이번 대법원의 초음파 판결에 대해 서울시의사회 전 회원과 가족들은 참담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며 "초음파 진단기기가 안전하기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한의사가 사용해도 국민건강에 위해를 주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의사의 오진으로 인해 환자가 입을 피해는 누가 책임지느냐"라며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에 고무돼 혈액검사, 엑스레이, CT, MRI 등 각종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려 한다"고 우려했다.

의료계는 의협 제41대 집행부를 비롯한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광역시도의사회회장협의회, 대한개원의협의회 등 범의료계 대표자 회의를 지난 7일 개최하고 대응 전략을 논의했으며, 대법원 앞으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규탄 기자회견에서 이필수 회장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게 될 대법원 판결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느낀다"며 "이번 판결로 국민 건강 피해와 의료체계 혼란 책임은 대법원에 있다"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향후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신중한 검토와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한의사들이 이번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의과 의료기기 사용 등 무면허 의료행위를 시도한다면, 불범의료행위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의협은 대표자 회의를 통해 △대법원의 한의사 초음파 판결 부당함 대국민 홍보 △불법 한방 피해 신고센터 운영 △서울중앙지법 판결 대비 법적 준비 강화 △범의료계 대책 기구를 구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번주 중 시도의사회,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등과 논의해 대책기구 구성을 논의하고, 범의료계 단일 대책방안을 만들어 대응할 방침이다.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자체 근절 근본 대책 필요

의료계 내부적으로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규탄 및 중앙지방법원 판결에 의료계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여론을 환기하는 대응도 중요하지만,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자체를 근절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국회와 복지부에 의료인의 면허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의료계는 서울중앙지법 판결 준비와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 등 투트랙으로 대응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협 역시 한의사들의 초음파 진단기기 및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A 관계자는 "의료계 대표자 회의를 통해 범의료계 대책 기구에서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대법원 판결 대응 및 서울중앙지법 판결 대비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이와 함께 국회 및 복지부를 통한 의료법 개정 및 관련 제도 개선 방안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의료법 개정 문제는 시간을 두고 숙고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며 "복지부와도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다각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공개적인 대국회, 대정부 활동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의료계가 나서 의료법 개정 움직임을 보일 경우 한의계와 면허범위 논란만 더 키워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어서다.

복지부로서는 일단 신중한 입장이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한의계에서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의료행위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할 경우 대법원의 판결을 반영해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행위가 보험급여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한의사들이 초음파 진단기기 급여청구를 위해서는 신의료기술평가 승인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방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하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의료계가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및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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