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책 두고 의정 갈등…향방은?
의대 정원 확대…의료계 총파업 불사

[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2020년 경자년(庚子年)의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 초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코로나19(COVID-19) 감염병 확산은 전 세계를 혼란과 공포에 빠트렸고, 코로나19 감염 확산세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행히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내년 상반기부터는 백신 투약이 가능해져 코로나19 확산세가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도 보이고 있다. 2020년 보건의료정책은 코로나19 블랙홀에 빠져 추진되던 정책들이 지연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1년간 보건복지부의 복수차관제 도입과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 등 정부의 역할과 기능은 확대됐지만 성과는 아직 미지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의료계와의 갈등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공공의료 확대 필요성과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이에 정부 여당은 코로나19 등 감염병 위기 대응을 위해 방역·진료 인력의 확충이 필요하며, 의대 정원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감염병 대응능력을 향상시키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자원 신고 현황(2017년 기준)에 따르면 지역의 중증 및 필수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필요한 의사 수는 약 3000명으로 추계됐다. 역학조사관, 중증외상, 소아외과 등 특수분야 의사 수 부족도 고질적인 문제라는 게 당·정의 판단이다. 전문의 약 10만명 중 감염내과 전문의는 277명, 소아외과 전문의는 48명에 불과한 것이 그 증거다. 

정부와 여당의 당·정 협의안에 따르면 현재 의대 정원 3058명을 2022학년도부터 최대 400명 증원해 앞으로 10년간 한시적으로 3458명을 유지하고 최대 4000여 명을 양성하기로 했다. 확대되는 400명의 의대 정원 중 300명은 지역 내 중증·필수 의료분야에 의무적으로 종사할 인재(지역의사) 양성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와 여당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은 첩약급여화 및 공공의대 신설 정책에 반대해 왔던 의료계의 반발 기류에 기름을 부었다.

8월 7일 집단휴진에 나선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집회를 열고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반대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

결국,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는 지난 8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강행 △비대면 진료 육성 등 4대악 의료정책 철폐를 위한 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번 의료계의 4대악 의료정책 저지 총파업은 개원의보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파급력이 더 컸던 총파업이었다.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분만실 등 필수유지업무 진료과 전공의까지 업무를 전면 중단했으며, 의대생들 역시 수업거부와 의사국시 거부 카드를 꺼내들고 정부를 압박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무기한 파업과 사직서 제출에 대해 의료법 제59조 2항에 따른 정당한 사유없이 진료를 중단하는 것에 해당된다며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이런 정부의 대응에 의대 교수들도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의료계와 원점에서 재검토해 의사인력 배출 정상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의대 교수까지 의료계 파업에 동참한 것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소속 전국 40개 의과대학장, 원장들은 성명을 통해 의대생들의 정부에 대한 요구가 정당하다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비의사인 의대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끝을 알 수 없는 대치상황은 9월 4일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의협과 민주당이 5개 조항에 대한 최종 합의문에 의협과 복지부가 별도의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봉합수순에 들어갔다.
 

의협과 대전협 간 갈등 노출도

이 과정에서 의료계는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 간 소통 미흡으로 인해 내부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대전협은 정부와 여당, 의협이 합의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점이 있다고 의협 최대집 집행부의 합의 결정에 대해 반발했다.

대전협은 의료계 문제 해결에 20년 동안 목소리를 냈던 선배들을 믿었지만, 최종 합의 과정에서 전공의들이 배제됐다고 비판했다. 최대집 집행부의 독단적 진행은 폭력적 행위라며, 의협과 별개의 집단휴진을 이어갈 것이라고 사실상 의협 결정 불복을 시사했다.

8월 21일 서울의대 학생이 병원본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의료계와 정부가 9·4 의정합의를 통해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등 갈등 쟁점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의대생 의사 국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현재 진행형이다.
의료계는 의사 국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향후 몇 년간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입원전담전문의 활용 등 여러 대책을 마련하는 모양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실기시험을 치르지 않은 응시자의 상당수는 내년 1월 7~8일 치러지는 필기시험 원서를 제출한 상태이지만, 필기와 실기 모두 합격해야 의사 면허를 받을 수 있어 2700명의 신규 의사 미배출 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외과계 교수는 "2700명이나 되는 인력은 단기간에 확보할 수 없다. 인턴이 비면 단순히 1년이 아니라 계속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전문의들과 의대 교수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릴 수 있고, 현장의 혼선도 예상된다. 전국적으로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담간호사를 확충해 진료보조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는 의사의 업무가 완전히 배제돼야 하기 때문에 인력 확충에 한계가 있다. 사실 백약이 무효"라고 토로했다.

이런 의대생 의사국시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부와 의대생들은 직접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논의가 잘 진행될 경우 내년 1분기 내 실기시험을 재응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2700명 인턴이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

현재 복지부는 2021년도 전반기 레지던트 1년차만 모집을 공고한 상황으로, 예년 같으면 인턴과 레지던트 모집 공고를 함께 진행해왔다. 인턴 모집 공고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료계는 정부가 의대생들의 실기시험 재응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병협 정영호 회장은 "의사국시 문제는 꼭 해결돼야 한다"며 "이런 상황은 벌어지면 안되겠지만 의사국시 문제가 이대로 마무리된다면 병원들 입장에서는 간호인력을 활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라고 전했다. 또 "병원계는 국회와 정부에 의대생 구제 필요성을 계속 설득하고 있다"며 "의대생들도 적극 응시 의사를 밝히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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