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윤석열 정부는 암·희귀질환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해 신약 신속등재 절차 검토 기한 단축 및 경제성평가 면제 대상 확대, 위험분담제 확대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 윤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 중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는 계속 이어갈 방침이다.

정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비용효과성 평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허가-평가-협상 연계제도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범사업 1호 약제는 소아 희귀질환 치료제 중 신경모세포종 치료제와 진행성 담즙 정체증 치료제 2품목이다. 하반기에는 2차 사업 대상을 선정할 예정이며, 1차 수요조사에서 검토한 약제도 2차 대상 약제에 포함해 선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현황 및 보장성 강화 방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2년~2022년 국내에서 허가된 희귀의약품 136개 품목의 보험 급여율은 52.9%에 머물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치료 접근성 제고 정책에 대해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의료진은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신경섬유종증을 앓는 13살 태경이와 ATTR 아밀로이드증으로 투병 중인 60세 김동현 씨. 두 환자와 담당 의료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편집자 주 -

⓵“태경이는 평범한 어른이 되는 게 꿈이예요.”

⓶“저는 아이들에게 죄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절 얼마나 원망하겠어요?”

대구에 살고 있는 13살 태경이는 출생 5개월 만에 신경섬유종증 1형(NF1)을 진단받았다. 신경섬유종증 1형은 전신에 걸쳐 비정상적으로 세포가 증식하는 희귀질환이다. 

2020년 기준 국내 환자 수는 약 4317명으로 추산된다. 보통 10세 이전에 진단돼 나이가 들수록 심화하는 진행성 질환으로, 언어장애나 척추측만증, 심각한 통증 등 합병증을 동반한다.

신경섬유종증 1형은 완치가 어려워 표면적인 증상 개선에 치중된 대증치료만 이뤄져 왔다. 특히 총상신경섬유종은 특히 임상적으로 효과를 입증한 치료제가 부재하다. 유일한 치료법은 외과적 절제술 뿐이지만. 

종양 특성상 건강한 정상세포 주변이나 혈관에 얽혀서 나타나며, 불규칙적 형태로 발현되는 탓에 신경손상을 배제한 완전 절제는 어렵다. 
이에 심각한 병적 상태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부분 절제만이 가능하다. 수술 후에도 재발 가능성이 높고 영구적인 신경손상 및 후유증 위험까지 안고 있다.

희귀질환 신경섬유종증을 앓고 있는 태경이(우)와 부친 이병문 씨(좌).
희귀질환 신경섬유종증을 앓고 있는 태경이(우)와 부친 이병문 씨(좌).

대구에서 서울아산병원으로 진료받기 위해 올라온 태경이는 또래 열세 살 장난꾸러기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것은 스스로 힘차게 걷거나 뛰어 다니지 못하는 것뿐. 한창 뛰어다니고, 혈기가 왕성해야 하는 열세 살 꼬마는 무너져가는 척추와 좋지 않은 시력에도 힘겹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태경이 아버지 이병문 씨가 말했다.

“태경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정맥이 심해 집 근처 병원에서 진료받았지만 정확한 질환을 찾지 못했어요. 20곳 이상 의료기관을 찾아 다녔지만 알 수 없었죠. 태어난지 5개월 만에 서울아산병원에서 신경섬유종증이라는 질환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신경섬유종증 진단 당시를 회상한 이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치료제도 없는 희귀질환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 부인의 탓인 것만 같기 때문. 

“생후 5개월부터 지금까지 13년간 병마와 싸우고 있는 태경이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죠. 처음 태경이가 신경섬유종증으로 진단받았을 때는 암담함으로 저와 아내, 모친까지 모두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이 씨는 “지금은 태경이가 힘들고 아프지만 묵묵히 용기를 보여주고 있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태경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속 모든 신경 세포 주위에 종양들이 계속 자라고 있다. 태어나 첫 돌이 되기 전부터 경추 부분 신경 종양 제거 수술을 받게됐다. 그리고 투병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매년 2회 이상 개복 수술을 받고 있다.

“더 이상 신경에서 종양을 제거하는 외과적 수술을 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이미 한쪽 폐도 절제된 상태입니다. 종양을 제거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아이의 증세가 악화할 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코셀루고 임상시험 참여 후 처음 개근한 태경이

서울아산병원 이범희 교수(소아내분비대사과)
서울아산병원 이범희 교수(소아내분비대사과)

서울아산병원 이범희 교수(소아내분비대사과)는 아스트라제네카 신경섬유종증 치료제 코셀루고(성분명 셀루메티닙) 임상시험 참여를 권유했다. 2019년부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상시험에 참여한 태경이 가족은 절망에서 희망을 볼 수 있게 됐다.

“종양 크기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효과는 매년 2회 이상 종양 제거 수술을 받으며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태경이가 더 이상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수술을 받지 않으니 합병증도 많이 줄어 지난해는 처음으로 학교에 태경이가 개근했다. 이 씨는 “태경이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친구를 사귈 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태경이는 자신이 아파 아빠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며 “아빠 고마워”라고 제일 먼저 읖조렸다. 그리고 평범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전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 속에서 13년을 살아온 꼬마는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 어른이 되고 싶은 태경이는 친구들이 체육시간에 뛰어노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왜 구경만으로도 만족스러운지 묻자 “뛰어다니면 힘들어요. 그냥 친구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요”라고 말했다.

이 씨는 “태경이는 운이 좋아 임상시험에 참여해 치료제 투약을 받고 있지만, 임상시험이 끝나면 고가의 치료제를 언제까지 투약할 수 있을지 두렵다”며 “정부가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희귀질환을 앓는 당사자로서는 조금만 더 빨리 치료제가 보험급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태경이 같은 신경섬유종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언제 시한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희귀질환자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정부가 관심을 더 가져줬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희귀질환 특성 고려해 환자의 삶의 질 훼손 줄여야”

태경이를 진료한 이범희 교수는 정부가 한정된 재원 안에서 희귀질환 치료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제로도 긍정적인 변화가 확인되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여전히 희귀질환 환자의 치료제 사용 시간을 앞당길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해외에서 허가된 신약이 우리나라에 공급되고 급여 등재되기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그동안 치료법 자체가 전무한 경우도 많아 기존 잣대로 평가하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환자 삶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희귀질환의 특성을 적극 고려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치료제 급여화의 행정적 소요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경섬유종증 1형의 유일한 치료제인 코셀루고 급여가 되지 않은 것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 교수는 “임상에 참여하지 못하면 치료를 못 받는 환자들이 너무 많다”며 “대부분 희귀질환 치료제처럼 코셀루고도 환자 개인의 힘만으로 치료 비용을 부담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재 임상에 참여해 코셀루고를 복용하는 대부분의 환자도 연구가 종료되면 경제적인 부담으로 치료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결국 국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어린 소아 환자 치료 통해 증상 개선돼 희망 갖는 환경돼야

특히 어린 소아 환자가 치료를 통해 증상이 개선돼 밝게 성장하는 모습으로 인해 가정이 다시 희망을 갖게 되는 긍정적 변화를 가까이에서 접한 의사로서, 하루 빨리 더 많은 환자가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신경섬유종증 1형을 진료하면서 느낀 보람과 어려운 점도 설명했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해외에서 개발돼 국내에서 허가 및 보험을 받고 실제 진료현장에 도입되는 기간이 10년 이상 걸린다.

이 교수는 “2019년부터 한국에서도 신경섬유종증 환자를 대상으로 코셀루고의 연구자 주도 임상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며 “현재 임상 참여 환자 대부분이 신경섬유종증 크기가 확연히 줄었고, 증상이 호전됐다. 환자와 가족들의 표정이 바뀌고 희망과 꿈을 갖는 모습을 지켜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국내에는 희귀질환 전문가가 적은 탓에 환자들의 외래 진료 대기 기간이 너무 길어 죄송한 마음이 크다는 이 교수는 “최대한 많은 분을 뵙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국내에서도 희귀질환 전문가 양성과 더불어 유전 상담 서비스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첫 돌이 되기 전 종양제거 수술을 받은 태경이에 대해 말했다.

그는 “수술을 해도 6개월이 지나면 종양이 순식간에 퍼져 기도와 척추신경을 압박했고, 여러번의 수술에도 불구하고 종양이 폐를 누르고 있어 수술이 어려웠다”며 “때마침 코셀루고 임상 참여 기회가 생겼고, 열심히 치료한 결과 눈에 띄게 신경섬유종이 줄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개근을 하는 등 삶 자체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신경섬유종증 1형을 앓고 있는 환우들을 향해 “치료 환경도 이전에 비해 나아지고 있으며, 신약도 개발되고 있으니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며 “신경섬유종증 치료 여정은 길기 때문에 보호자인 가족들도 마음을 굳게 먹고 치료 과정을 함께 헤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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