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강경 반대⟶협의 가능성 ‘입장 변화’
국회, 비대면 진료 법제화 ‘시동’…시민단체는 반대
의료계 “산업계 측에서 먼저 상생 방안 제시해야”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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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박서영 기자]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비대면 진료가 본격적으로 제도화 단계에 진입하는 추세다.

지난 1월 보건복지부는 2027년까지 5년간 비대면 진료기술 개발 및 실증연구에 399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신년 업무보고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겠다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초 안전성을 이유로 강경하게 반대 의사를 밝혔던 의료계도 지금은 한 발 물러서서 협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대한의사협회 이상운 부회장은 지난 30일 첫 번째 의료현안협의체 종료 후 “비대면진료에 대한 의협만의 방안이 있다”며 “앞으로 협의체 회의를 통해 회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제도화 의지가 강한 만큼 추진이 빠른 시일 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유관 직능단체간 논의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 비대면 진료 법제화 ‘시동’…시민단체는 반대

비대면 진료는 2002년 ‘원격 의료’라는 이름으로 물꼬를 텄다. 이후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도입을 추진했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번번이 좌절됐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국민 인식이 본격적으로 바뀐 건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부터다. 이때 한시적으로 허용돼 지금까지 3500만건 이상의 상담 처방이 이뤄졌다.

국회에서도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과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각각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다룬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섬·벽지에 거주해 의료기관으로의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무의식·거동불편 등으로 대리처방을 받을 수 있는 대리처방환자 등에 실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OECD 국가 중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뿐이다.

분당서울대병원 백남종 원장은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국내 비대면 진료 입법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미국 의사들은 비대면 진료에 전향적이다”라며 우리나라도 훗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을 때 노년 인구를 간병하려면 비대면 진료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역시 지난 25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생활 속에 빠르게 자리잡았다”며 의료계의 협조를 요청했다. 만일 이를 거부한다면 입법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였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성일종 의장은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위해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조를 촉구했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성일종 의장은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위해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조를 촉구했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의약품 오남용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의료 질 하락 △의료기기·플랫폼 업체의 과도한 상업성 등의 이유에서다. 또 정부가 사기업의 참여율을 끌어올릴 게 아니라 공공의료를 먼저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는 지난 1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에서 원격 의료는 여러 업체들의 이윤 창출을 위한 의료 민영화”라며 “윤석열 정부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공의료를 강화하기는커녕 의료 영리화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감염병 사태로 인해 대면 진료가 어려워졌을 때 비대면 진료를 지금처럼 한시적으로 허용하면 될 일”이라며 “이용자들의 편리함만을 내세워 도입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의료계 “산업계 측에서 먼저 상생 방안 제시해야”

시민단체의 반발과 달리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전 정부에서부터 꾸준히 논의됐던 데다 6월까지 제도화하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가 강한 점, 그리고 가장 높은 벽이었던 의료계로부터 협의 약속을 받아내서다.

다만 의료계는 추진 가능성만 열어뒀을 뿐,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와 불법 의료 광고 행위 등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의협 김이연 홍보이사는 “산업계 측은 기존 의료 환경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들고와야 한다”며 “환자 안전의 최종 책임은 의료계에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지지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현재 운영되는 택시 플랫폼의 예시를 들었다. 소비자가 이용 후 피해를 보는 사례가 발생해도 플랫폼 측은 중개업자라며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의료계 역시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이러한 우려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를 대체할 수 없는 보조적 수단”이라며 “도서 지역 거주자나 장애인들에게 활용될 수 있겠지만 기존 진료 형태를 혼란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고 기본 원칙 중시를 강조했다.

이에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장지호 회장은 복지부의 비대면 진료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준수하며 의료전달체계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역할하겠다고 밝혔다. 플랫폼이 단순 중개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협 측의 지적에 대한 입장이다.

또 산업계가 의료계에 먼저 상생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에 “비대면 진료의 주체는 의사와 약사인만큼 의약계가 주도해주면 산업계가 이를 뒷받침하고자 한다”며 오히려 의료계가 이끌어주길 바란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편 산업계는 향후 열릴 의료현안협의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30일 열린 제1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는 필수의료 정책에 밀려 비대면 진료가 논의되지 않았던 탓이다.

또 복지부 측이 약사회와의 약정협의체도 개최 의사가 있다고 밝힌만큼 비대면 진료와 더불어 약 배송 시스템도 자리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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