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심평원, 17일 건강보험자료 제공 가이드라인 토론회 개최
시민단체 항의에 토론회 40분 지연…의료계도 “민간 보험사 배만 불린다” 비판
민간 보험사 “사기업 악마화 억울” 주장…전문가들 “신뢰 구축 전제돼야”

▲17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 세미나실에서 건강보험자료 제공 가이드라인 토론회를 개최했다.
▲17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 세미나실에서 건강보험자료 제공 가이드라인 토론회를 개최했다.

[메디칼업저버 박서영 기자]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을 두고 민간 보험사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에 기여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방침이지만,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공급자 단체는 쉽사리 믿지 못하는 눈초리다.

특히 무상의료운동본부와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등 시민계는 “민간 보험사가 영리를 추구하려는 것은 불보듯 뻔한 그림”이라며 민간 보험사로의 개인정보 제공을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17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 세미나실에서 건강보험자료 제공 가이드라인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자리는 개인정보 개방 여부에 대해 공단과 심평원이 단체 간 상호 의견을 청취하고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먼저 건보공단 빅데이터운영실은 국민건강정보DB 및 연구용DB로 빅데이터를 구축했으며, 이때 개인 식별이 불가능하도록 가명처리했다고 덧붙였다.

규격화한 표본연구DB 및 연구주제 맞춤형 연구DB 제공 건수는 2016년 464건에서 2022년 1181건으로 2.5배 이상 증가했다.

민간기업에는 2018년부터 약 30건 제공됐으며, 헬스케어플랫폼기업과 임상시험대행기관 등에 건강관리 및 질병예측 앱 개발에 활용됐다.

심평원 역시 가명처리 등 비식별 조치를 실시하고 있으며, 공공데이터 제공 시 연구목적의 부합성과 과학적 연구 해당 여부, 제3자 권리침해 여부, 정보주체 이익침해 여부 등을 심의해 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제공된 정보들은 맞춤형연구분석과 환자표본자료, 공공데이터, 다자간비교연구, 의약품사용정보 등에 활용되며, 개인 식별이 가능한 것은 ’내 진료정보열람‘ 뿐이다.

현재 공단과 심평원은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가입자와 공급자, 전문학회 간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가지고 있다.

 

공급자 및 소비자 단체 “국민 개인정보 제공, 신중해야”

▲토론회에 참여한 의협 김종민 보험이사(사진 중앙)와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사진 맨 오른쪽)
▲토론회에 참여한 의협 김종민 보험이사(사진 중앙)와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사진 맨 오른쪽)

공급자 및 소비자 단체 모두 “국민 개인정보 제공은 끝까지 신중해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했다.

공급자 단체 대표로 참석한 의협 김종민 보험이사는 “공단과 심평원 데이터를 갖고 보험사가 어떤 상품을 만들지 뻔히 보이는데, 그걸 가지고 찬반 토의를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강하게 보험 단체를 몰아붙였다.

이어 “가명 정보라고 해서 전부 가명이 아니다. 공단 자료에 금융 정보가 다 들어가있는데, 이걸로 개인 유추가 가능하다”며 “보험사가 정말 국민을 생각해 손해를 감수하고 상품을 설계하겠느냐. 가당치도 않다. 정치권은 생각을 달리 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화생명 문병준 과장은 “한화생명은 공단의 가명정보 데이터를 활용해 암과 심뇌혈관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의 경제적 부담에 대한 지수를 개발할 것이다. 공익에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민간 보험사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국립중앙의료원(NMC) 정책통계지원센터 김명희 센터장은 “지금까지 민간 보험사가 자료를 요청했던 논거는 대개 손해율 산정에 필요한 위험 예측 모형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라며 “이러한 모형으로 저위험군에 대해 할인을 제공한다고 하는데, 이는 고위험군 가입자를 배제하거나 차등적으로 보험료를 인상하는 조치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즉, 환자들의 정보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인 공단은 공익적 연구를 적극적으로 선별할 의무가 있다는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 역시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을 언급하며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대한병원협회 김성현 자문위원은 “민간 기업이 공단과 심평원으로부터 데이터를 제공받는 게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며 “그렇다면 민간 보험사한테는 그 규칙대로 정보를 제공하고, 공공 목적 연구에는 공단과 심평원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패널에서 건강보험 가입자인 국민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은 민간보험사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사무총장은 “그간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여럿 있었는데 다 민간 기업과 연관이 있었다”며 “지금 데이터 개방화 시작 단계인데, 갑자기 영리 보험사에 제공한다는 건 시기상조인 것 같다. 민간 보험사의 신뢰 구축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사실상 요식 절차에 불과한 토론회” 강한 반대

▲무상의료운동본부와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은 토론 시작 전부터 기자회견을 열고 “이 토론회는 사실상 요식 절차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와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은 토론 시작 전부터 기자회견을 열고 “이 토론회는 사실상 요식 절차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당초 오후 2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40분 연기됐다.

무상의료운동본부와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은 토론 시작 전부터 기자회견을 열고 “이 토론회는 시민사회단체가 참여를 거부한 자리”라며 “공단과 심평원이 축적한 국민 건강정보를 민간 영리기업에 제공하기 위한 절차로, 사실상 요식 절차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민간보험사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시민사회단체와 공유했다는 절차가 필요했던 것인데, 이를 부적절하게도 정부와 공단이 중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토론장인 세미나실에 입장해 “개인 건강정보 민간 제공은 의료 민영화”라며 “찬반 여부를 떠나 토론 자체가 상당히 부적절하다. 취소될 때까지 이곳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공급자 단체 대표 패널로 참석한 대한의사협회 김종민 보험이사도 “행사명에 ’가이드라인‘을 명시한 것부터가 이미 개인정보 제공을 사실로 전제한 것 아닌가”라며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공단 측은 “이해 관계자 간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한 자리다. 문제가 된다면 행사명에 ’가이드라인‘을 빼겠다”며 상황 수습에 나섰으며, 시민단체와 논의 끝에 어렵게 토론을 진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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