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회장 후보 5명…빠르면 1월 7일 회장 결정
공통 메시지는 “다양한 직역 포용해 의료계 단일화”
상반기, 의대증원 여파 줄이기와 26학번 정원 합의에 초점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대한의사협회의 2024년은 앙리루소의 그림 ‘폭풍우 속의 배’ 그 자체였다. 의대증원이라는 폭풍우 속에서 정신없이 흔들리고, 조타를 잡아야 하는 선장은 폭풍을 예측 못해 물러나거나, 위기 속에서 신임을 잃고 탄핵당했다. 두 번의 비상대책위원회가 회장의 공백을 채우며 항해를 이어가는 중이다.
다행히 길었던 폭풍은 끝이 보인다. 지난해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것이다. 탄핵이 확정되기까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남았으나 그간 윤 대통령은 국정에서 배제된다.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 역시 비상계엄의 책임을 지고 다른 국무위원들과 함께 사퇴의사를 밝혔다. 윤 대통령이 밀어붙이던 의대정원 증원 등 의료개혁 정책은 동력을 잃고 불시착할 확률이 높아졌다.
그러나 간신히 폭풍의 눈을 빠져나왔을 뿐 폭풍은 현재진행형이다. 대통령과 복지부 장관의 공석으로 인한 정책적 불확실 상황 속에 2025년 의대입시, 군의관 및 공보의 지원, 의대 개강 등 높은 파도를 수차례 넘어야 한다. 더군다나 항로를 결정할 선장은 아직 공석이다. 1월 8일 결정될 선장이 누구냐에 따라 2025년 의협의 항해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후보들이 제시한 주요 공약과 현안을 통해 2025년 의협의 모습을 예측해 본다.
의협의 제43대 회장 선거는 1월 2~4일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한 후보가 나오지 않을 경우 7~8일 1, 2위 득표자 사이에서 결선투표가 한 번 더 진행된다. 후보는 5명으로 △1번 김택우 후보(전국시도의사회장협의회장, 강원특별자치도의사회장) △2번 강희경 후보(서울대의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 △3번 주수호 후보(미래의료포럼 대표) △4번 이동욱 후보(경기도의사회장) △5번 최안나 후보(제42대 의협 기획이사)이다.
이들의 공약에서 대정부 투쟁 강경론을 제외하고 방점이 찍힌 부분은 다양한 직역 포용을 통한 의료계 단일화다. 의정 갈등 상황에서 전공의들을 껴안지 못하고 개원의, 교수, 의학회 등 목소리가 각기 나왔던 것을 의식한 처방이다. 여러 직군과 직역의 지지를 통해 의사 법정단체로서 의협의 대표성을 확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전공의 및 의대생 등 회무 참여 확대
수련 환경 개선에 의협 역할 커질 것
우선 전공의와 의대생 등 젊은 의사들의 의협 내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의정갈등 상황에서 집단 사직으로 행동력을 보인 전공의 집단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대위원장은 이번 사태에서 대통령과 독대한 유일한 의료계 인사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현재 비대위 자리의 40%가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돌아간 것 역시 의협이 젊은 의사들에 보내는 적극적 구애의 메시지다.
회장 후보들도 입을 모아 전공의 회무 참여 확대를 제언했다. 김택우 후보는 수가 개선을 통한 필수의료와 진료환경 정상화, 전공의 회무 참여 확대와 의대생 준회원 자격 부여, 사직 전공의와 휴학 의대생 지원 강화, 전공의 특별법 개정, 수평위와 의평원의 독립성 확보와 지원 강화 등 실천공약 7개 중 4개를 전공의와 의대생을 위해 할애했다.
강희경 후보 역시 전공의들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지역/병원별 전문의 고용계획에 기반한 TO 추진과 수련지원센터 설립 등을 제안했으며, 주수호 후보는 전공의 수련 교육 국고 지원 의무화를, 이동욱 후보는 멘토-멘티 프로그램 확대 및 사직 전공의를 위한 경제적, 법률적 지원 등을 약속했다. 최안나 후보는 아예 5년 이하 젊은 의사 중심으로 의협 내 소통 네트워크 구축하겠다고 나섰다.
헤게모니 의대생으로 변화 가능성
젊은 의사들의 회무 참여가 늘어날수록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에 대한 의협의 역할과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전공의들의 존재감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3월 개강을 기점으로 헤게모니가 전공의에서 의대생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2025년 정원 결정에 따른 반동이 개강 시즌에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공의와 달리 의협 회원이 아닌 의대생들에게 얼마나 의협의 목소리가 닿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원의 위주 이미지 탈피
교수‧봉직의에 영향력 발휘 시도
비단 젊은 의사들뿐 아니라 회원 전체의 지지도를 지금보다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고질적 문제로 지적된 개원의 위주 이미지에서 벗어나, 봉직의와 교수 등 여러 직역을 껴안는 것이 의협의 2025년 숙제다. 지난해 의협과 전공의들이 불협화음을 내는 동안 대학 교수들은 전공의와 의협 사이에서 별도의 목소리를 내며 정부와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의협 비대위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야의정협의체에 참여한 것이 일례다. 그 과정에서 의협은 의사단체 대표에서 의사단체들 중 하나로 격이 내려앉으며 정부 협상에서 배제되는 모습이 연출됐다.
회장 후보들은 의협이 정부와 맞설 수 있도록 의료계의 대표성을 되찾고, 의료계 중심에서 단일된 목소리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편으로는 조직력 강화 등이 제시됐다. 주수호 후보는 병원 개원을 반드시 시군의사회를 경유하도록 하고, 봉직의와 교수들의 노조 설립을 의협에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관개정으로 교수협의회를 의협 정식 산하단체로 지정하겠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투표권 확대 등 지지 유인책도…
회비 감면 및 기준 완화는 글쎄?
교수 출신인 강희경 후보는 “이익단체로서의 기능은 대한개원의협의회 등 각 직역의 세부단체로 이양하고, 의협은 그 연맹으로서 정책 마련 및 체계적인 홍보와 소통, 유관단체와의 돈독한 협력관계 구축에 집중하도록 할 것”을 제언했다. 투표권을 확대해 좀 더 많은 회원의 관심을 유도하겠다는 방안도 복수의 후보들에게서 나왔다. 현재 의협 회장 및 투표권은 전년도 2년간 회비가 완납된 회원에게만 주어진다. 강 후보는 회비 납부와 상관없이 회원 모두에게 회장선거 및 대의원 투표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주 후보는 투표권 기준을 회비 1년 완납으로 완화하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다만, 정관개정과 예산 및 결산에 관한 사항은 대위원총회 의결 사항인 만큼 회비 기준 완화를 통한 투표권 확대는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의협 관계자는 “11월 기준 회원들의 회비 납부율은 50% 미만”이라며 “예산 및 결산을 심의의결해야 하는 대의원회는 회비 납부율이 떨어지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관계자도 “사직 전공의 등에 회비 면제 등 예외 조항은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투표권자 확대를 위해 회비 기준을 낮추자는 안을 대의원들이 반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25학번 정원 백지화 현실적으로 불가능
26학번 정원 수 조절 관건
의협 내부의 단일화 및 조직력 강화 등과 별개로 항해 중 만날 일기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우선 의대 증원 폭풍우를 잘 빠져나오는 것이 선제 조건이다.
그나마 이어지던 정부와 의료계의 소통은 계엄포고령 여파로 모두 끊어졌다. 여기에 양쪽 모두 수장 공백 상황이라 상반기 동안은 새로운 행동을 옮기기보단 현상유지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현재 의협 비대위와 전대협 등이 주장하는 2025학번 의대증원 백지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미 각 의대의 모집 절차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험생 혼란이 불가피한 모험을 대통령권한대행 체제에서 시도할 리 없다는 것.
차라리 지금부터 정부의 2026년 의대 증원 조절 협의를 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경우 의협의 상반기 주요 역할은 의대증원 여파 줄이기와 2026학번 의대정원 조절 합의로 가닥 잡힌다.
정권 교체 시 공공의대 등
또 다른 폭풍 대응해야
정권 교체 시 더불어민주당의 의료정책이 새로운 폭풍우가 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공공의대, 지역의사제 등이 다시 추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의대증원 등에 긍정적인 국민 여론은 의협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산이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윤 대통령 탄핵으로 2025년 이후 의대증원 2000명 정책은 파기되겠지만, 의사증원에 국민들의 여론이 긍정적인 만큼 증원 등 의료개혁은 결국 다시 도마 위로 오를 것”이라며 “의협 등 의료계가 매우 혁신적인 방안으로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의사 증원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후보 5명 중 4명은 대국민 홍보를 확대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김택우 후보는 “의료정책연구 용역 등을 통해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강희경 후보는 “쟁점이 되는 문제들은 유튜브 등을 통한 국민대토론회 등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겠다”고 소통을 강조했다. 이동욱 후보와 최안나 후보 역시 국민들과 스킨십을 늘리며 여론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주수호 후보는 “국민들은 이성적인 말보다 정치인이나 시민단체의 감성적인 목소리에 더 끌린다. 왜 의사들이 들고 일어났는지 귀담아듣겠다는 자세를 갖출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는 강경론을 펼쳐 입장을 달리했다.
새 회장과 집행부에 따라 2025년 의협 회무 개성은 달라지겠으나, 쉽지 않은 항해가 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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