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협회 및 600명 마취간호사들, 미국 상황 근거로 들며 마취·PA 인정 주장

간호계가 우리나라와 보건의료제도와 환경이 다른 미국의 제도를 근거로, 간호사도 '마취'행위를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3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간호협회가 주관한 '마취전문간호사 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에서 이 같은 간호사들의 주장이 정부, 학계로부터 큰 질타를 받았다.

이날 문제가 된 주장은 바로 간호사들도 일정 시간의 교육을 받으면 마취전문간호사로서 마취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해달라는 것.

▲ 센트럴병원 김미형 마취전문간호사.

공청회에서 발제를 맡은 센트럴병원 김미형 간호사는 "지난 1961년 마취간호교육과정을 받은 간호장교가 배출됐고, 1973년부터는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에서 공식적인 마취간호사제도가 도입됐다"면서 "현재 마취전문간호사가 되기 위해 200시간의 교육과 100여건 이상의 실습을 거치고 있고, 마취전문간호사 중 약 100여명은 마취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는 의료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도 기준으로 총 619명의 마취전문간호사가 배출됐지만, 이들이 단독으로 마취를 시행할 수 없는 법적 여건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김 간호사는 "마취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점, 그리고 현행 의료법상 '마취는 의사만 할 수 있는 행위'로 적시된 점 등을 토대로 마취 교육을 받은 간호사임에도 마취를 하면 범법자가 된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 2010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구체적인 의사 지시 없이 독자적인 마취약제를 결정해 척추마취 시술을 한 간호사에게 의료법 위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같은 판례가 나온 후로 임상에서 활동하는 마취전문간호사에 대한 고소, 고발이 이어지고 있으며, 위법 판단을 받은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김 간호사는 "전문적인 마취 교육을 받은 마취전문간호사들이 좌절과 혼란을 겪고 있다"며 "마취과 전문의들이 기피하는 도서벽지에서 열심히 근무하는 마취전문간호사들의 법적 보호를 위해 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비롯한 다른 선진국들은 마취전문간호사 제도를 도입, 이미 자리잡은지 오래"라며 "우리나라에서도 마취전문간호사가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 법과 제도적인 환경을 국회와 정부에서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취간호사회 김태민 前 회장은 "미국에서는 마취전문간호사 뿐 아니라 PA에 대해서도 법적인 보호를 해주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속히 법을 개정해야 PA, 전문간호사 등 고급인력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간호계 주장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은 "법에는 전문간호사의 자격만 규정돼 있을 뿐 역할, 업무, 배치기준 등에 대한 법률규정을 마련하지 못해 제도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며 "앞으로 남은 임기 1년 내에 반드시 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새정련 오제세 의원도 "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당 차원에서 돕겠다"고 약속했으며, 간호협회장 출신인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 역시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복지부 "국민들 목소리에 따라 수용할 수 없는 주장"

 

하지만 정부와 학계, 의료계, 법조계 등에서는 모두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고, 간호사들에게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주문했다.

보건복지부 임을기 의료자원정책과장은 "60-70년대에 마취전문간호사들이 활동한 것은 의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복지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따라 의사 지시 및 감독하에 이뤄지는 간호사의 마취행위에 대해 진료보조활동으로 유권해석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2010년 대법원 판례가 나오면서 달라지게 됐다"며 "유권해석을 하기 전 환자의 상황를 충분히 고려하고, 반드시 해당 병의원을 방문에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에 따른 해석이기 때문에 정부의 방침은 이에 귀속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일단 관련 사안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면, 간호사가 의사가 직접 지시 하에 행해진 마취라고 해도 반드시 실사와 검증을 거친다는 것.

▲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임을기 과장.

임 과장은 "이제는 유권해석이 케이스마다 달라진다. 간호사가 해도 될 정도의 간단한 마취 행위였는지, 환자의 상태나 위중도 등은 어떠했는지,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마취를 해야 할만한 상황이었는지 등 포괄적이면서도 동시에 구체적인 사안을 모두 검토한 후 해석을 내린다"고 밝혔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대법원 판례 뿐 아니라 '국민적 요구'에 따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근 수술시 사망한 사례 대부분은 중증 질환이 아닌 간단한 수술이나 시술을 하다 마취가 잘못된 경우가 많은데, 이에 환자들, 특히 환자단체들 사이에서 '마취과 전문의만 마취를 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임 과장은 "국민들은 간호사는 커녕 마취과를 제외한 일반 의사들도 '마취를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일파만파 커지는 중"이라며 "간호계에서 내세우는 주장은 국민의 요구나 동향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문간호사 형태 중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마취'가 아닌 '치매'나 '호스피스' 등이다. 간호계는 이런 부분에 대해 전문성을 갖추고 인정해달라고 해야 한다"며 "마취전문간호사제도를 법에 녹여내는 것도, 또 이를 위한 법안을 만드는 것도 모두 국민입장에서 옳지 않다"고 단언했다.

◆"당신이 환자라면 누구에게 마취를 받겠습니까?"

의료계도 마취전문간호사에 대해 의사 '밥그릇'을 떠나, 일반 국민입장에서 '거부감'이 드는 제도라고 꼬집었다.

서울의대 마취통증의학과 이국현 교수는 "간호사의 활동 영역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러 온 것이 아니지만, 마취는 생명과 관련된 의료행위이자 의사 고유의 권한"이라며 "간호사가 단독으로 마취행위를 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어 "이미 법원에서 이와 관련해 수많은 판결을 내렸음에도, 간호계가 이를 무시하고 '미국이 하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주장은 관철시키 있다"며 "미국과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의료제도, 상황, 환경이 다른 점, 미국의 마취가이드라인에 '단독 허용'을 용인하지 않는 점 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밀어부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서울의대 마취통증의학교실 이국현 교수.

특히 이 교수는 "현재 의료수가나 인건비 문제, 간호사와 의사라는 직함, 밥그릇 등을 다 떠나서 내 가족, 내 자식들이 수술받을 때 마취를 누구에게 받게 할지부터 생각하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환자안전,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또 몇몇 국회의원이 이와 관련한 법안을 준비하려는 것에 대해 "아무리 법을 좋게 만들어도 대상자인 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입법을 준비할 때 간호사들의 목소리만 듣지 말고, 국민 목소리부터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 김필수 법제이사 역시 이에 동의하면서, "미국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의료제도, 진료비 문제 등에 대해 정확히 이해한 후, 비슷한 나라와 비교해야 한다"며 간호계의 근거 불분명에 대해 지적했다.

법무법인 단천 이경희 변호사는 현행 제도와 법과의 간극이 크다는 점을 전제로 들면서, "간호사-의사 뿐 아니라 의사-한의사, 간호조무사-간호사 간에도 면허 행위와 관련한 논란이 많다"며 "이때 법령 규정 및 취지, 학문적 원리, 의료원리의 목적, 전문성 확보 여부 등을 고려해 사회통념에 비춰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취전문간호사제도는 아직 법적 공백이 많은 제도기 때문에 이를 폐기하든, 수정하든, 법을 신설하든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고쳐나가는 것이 맞으나, 일단은 마취를 하는 간호사 뿐만 아니라 협업을 통해 일하는 의사 역시 의료법 위반에 관한 교사범, 방조범으로 처벌받을 위험이 있으므로 당장 마취행위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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