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의 영역" 의사회 교육현장 문전성시..."전문성 갖췄나" 자성의 목소리도
지난해 말 정부에서 발표한 규제 기요틴 중 하나로 꼽힌 '카이로프랙틱 면허 허용'을 두고 의료계 안팎에서는 블루오션 개척 '신호탄'이라는 긍정적인 입장과 비전문영역에 대한 '맹신'이라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카이로프랙틱 품으려는 의료계
실제 개원가에서는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로 도수치료와 카이로프랙틱을 배우려는 의사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각종 학회에서 이를 반영해 개설한 강좌와 교육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지난달 열린 대한외과의사회·대한정형외과개원의사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도수치료, 카이로프랙틱 강좌가 열렸고, 대한의사협회에서도 도수위원회를 설립해 이론과 실기교육을 실시 중이다. 대한재활의학회 산하 임상통증학회와 근골격연구회 등에서 이를 다루고 있으며, 보다 체계화된 교육을 위해 올해 상반기 안으로 도수의학회를 새롭게 창립할 예정이다. 통증보완의학을 연구하기 위해 지난해 창립된 밸런스의학회도 지난달 3차 심포지엄에서 도수치료, 카이로프랙틱 등을 주요 분야로 다뤘다.
특히 의협 도수위원회 교육에서는 정형외과, 신경외과, 일반과, 신경과 등 다양한 전문과목 의사 400여 명 이상이 몰려 성황을 이뤘고, 조기 마감으로 참여하지 못한 의사들을 위해 가을께 교육을 추가로 개설할 계획이다. 정형외과의사회에서는 척추측만증에서 카이로프랙틱을 사용하는 부분과 물리치료나 재활치료에서의 도수치료 등을 다루는 강좌가 개설됐고, 외과의사회에서는 교정치료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도수치료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외과의사회 관계자는 "의료계가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어려움을 타파하려는 노력은커녕 '힘들다'는 것을 부각하는 데만 급급한 형국"이라며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실용 의학, 뜨는 의학을 배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특성상 척추 관련 환자가 많은데, 이들 대부분은 비수술적 치료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했을 때 도수치료, 카이로프랙틱 시장은 상당히 넓을 것이란 게 관계자 추측이다.
정형외과의사회 관계자도 "피부, 미용성형이나 통증치료 등은 이미 레드오션이된 지 오래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뛰어들더라도 이미 입지를 다져온 의사들이 워낙 많아 망하기 일쑤"라며 "도수치료, 카이로프랙틱, 유전자 검사, 주사 치료 등이 새롭게 뜨고 있다. 이를 진료현장에서 바로 접할 수 있게 의사회 차원에서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전문성 갖췄나” 의료계 내 자성의 목소리도
하지만 일각에서 이러한 의사들의 행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카이로프랙틱 전문가는 "국제공인 카이로프랙틱 자격증을 따려면 4200시간 이상의 전문교육을 받고, 4단계의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개원의사회나 학회 등에서 하는 관련 강좌는 2~3시간에 불과하며, 도수위원회에서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30시간 정도에 국한된다"며 "자격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따로 시험이 개설되지 않아 '전문가'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단순하게 손을 이용한 마사지 정도로 보면 안 된다. 상당히 위험한 고난이도 시술"이라며 "긴 교육에도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치료법인데, 이를 짧게 배우고 시행하게 된다면 환자안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도 "전문적인 영역에 발 담그기 식으로 참여하려는 의사들은 전문 진단기기,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는 한의사들과 다를 게 없다"는 눈총을 보내고 있다.
한 전문과목 개원의사회 관계자는 "전문과마다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우리만큼 어려운 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 아니다"라고 운을 뗀 후 "그럼에도 도수치료나 카이로프랙틱 등 엉뚱한 데 시선을 돌리지 않고, 기존에 하던 분야만 집중해서 파고 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까지 한 우물만 파는 이유는 이미 한의사들이 우리 과와 관련된 첩약을 팔고, 의료기기를 이용해 우리과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치료를 넘보면서,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내재됐기 때문"이라며 "아무리 어렵다한들 남의 영역까지 갉아먹으면서, 또 제대로 된 지식 없이 환자를 마루타로 삼아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민간에 산재된 카이로프랙틱 교육과 면허를 국가적으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양성화'의 방향만 언급한 것으로, 아직 어떤 방식으로 갈지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섣불리 장밋빛 미래만을 예견해 너도나도 뛰어들면 추후 개원가에 큰 혼란과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면서 "다들 이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공급이 크게 늘어날 뿐 아니라, 정부에서는 횟수 제한과 의료비 및 질관리를 위해 급여로 묶어버릴 수 있다"며 '블루오션'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카이로프랙틱과 관련된 과에서 부수적인 치료를 위해 이를 배우는 것은 찬성하지만, 무분별하게 이를 주된 상병으로 몰고 가면 의료계 자기잠식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