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의 영역" 의사회 교육현장 문전성시..."전문성 갖췄나" 자성의 목소리도

▲지난 3월 열린 의협 도수치료 연수강좌. 400여명의 회원들이 강의장을 가득채우고 있다.

지난해 말 정부에서 발표한 규제 기요틴 중 하나로 꼽힌 '카이로프랙틱 면허 허용'을 두고 의료계 안팎에서는 블루오션 개척 '신호탄'이라는 긍정적인 입장과 비전문영역에 대한 '맹신'이라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카이로프랙틱 품으려는 의료계

실제 개원가에서는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로 도수치료와 카이로프랙틱을 배우려는 의사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각종 학회에서 이를 반영해 개설한 강좌와 교육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지난달 열린 대한외과의사회·대한정형외과개원의사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도수치료, 카이로프랙틱 강좌가 열렸고, 대한의사협회에서도 도수위원회를 설립해 이론과 실기교육을 실시 중이다. 대한재활의학회 산하 임상통증학회와 근골격연구회 등에서 이를 다루고 있으며, 보다 체계화된 교육을 위해 올해 상반기 안으로 도수의학회를 새롭게 창립할 예정이다. 통증보완의학을 연구하기 위해 지난해 창립된 밸런스의학회도 지난달 3차 심포지엄에서 도수치료, 카이로프랙틱 등을 주요 분야로 다뤘다.

특히 의협 도수위원회 교육에서는 정형외과, 신경외과, 일반과, 신경과 등 다양한 전문과목 의사 400여 명 이상이 몰려 성황을 이뤘고, 조기 마감으로 참여하지 못한 의사들을 위해 가을께 교육을 추가로 개설할 계획이다. 정형외과의사회에서는 척추측만증에서 카이로프랙틱을 사용하는 부분과 물리치료나 재활치료에서의 도수치료 등을 다루는 강좌가 개설됐고, 외과의사회에서는 교정치료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도수치료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외과의사회 관계자는 "의료계가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어려움을 타파하려는 노력은커녕 '힘들다'는 것을 부각하는 데만 급급한 형국"이라며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실용 의학, 뜨는 의학을 배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특성상 척추 관련 환자가 많은데, 이들 대부분은 비수술적 치료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했을 때 도수치료, 카이로프랙틱 시장은 상당히 넓을 것이란 게 관계자 추측이다. 

정형외과의사회 관계자도 "피부, 미용성형이나 통증치료 등은 이미 레드오션이된 지 오래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뛰어들더라도 이미 입지를 다져온 의사들이 워낙 많아 망하기 일쑤"라며 "도수치료, 카이로프랙틱, 유전자 검사, 주사 치료 등이 새롭게 뜨고 있다. 이를 진료현장에서 바로 접할 수 있게 의사회 차원에서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전문성 갖췄나” 의료계 내 자성의 목소리도

하지만 일각에서 이러한 의사들의 행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카이로프랙틱 전문가는 "국제공인 카이로프랙틱 자격증을 따려면 4200시간 이상의 전문교육을 받고, 4단계의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개원의사회나 학회 등에서 하는 관련 강좌는 2~3시간에 불과하며, 도수위원회에서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30시간 정도에 국한된다"며 "자격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따로 시험이 개설되지 않아 '전문가'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단순하게 손을 이용한 마사지 정도로 보면 안 된다. 상당히 위험한 고난이도 시술"이라며 "긴 교육에도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치료법인데, 이를 짧게 배우고 시행하게 된다면 환자안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도 "전문적인 영역에 발 담그기 식으로 참여하려는 의사들은 전문 진단기기,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는 한의사들과 다를 게 없다"는 눈총을 보내고 있다.

한 전문과목 개원의사회 관계자는 "전문과마다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우리만큼 어려운 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 아니다"라고 운을 뗀 후 "그럼에도 도수치료나 카이로프랙틱 등 엉뚱한 데 시선을 돌리지 않고, 기존에 하던 분야만 집중해서 파고 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까지 한 우물만 파는 이유는 이미 한의사들이 우리 과와 관련된 첩약을 팔고, 의료기기를 이용해 우리과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치료를 넘보면서,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내재됐기 때문"이라며 "아무리 어렵다한들 남의 영역까지 갉아먹으면서, 또 제대로 된 지식 없이 환자를 마루타로 삼아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민간에 산재된 카이로프랙틱 교육과 면허를 국가적으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양성화'의 방향만 언급한 것으로, 아직 어떤 방식으로 갈지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섣불리 장밋빛 미래만을 예견해 너도나도 뛰어들면 추후 개원가에 큰 혼란과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면서 "다들 이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공급이 크게 늘어날 뿐 아니라, 정부에서는 횟수 제한과 의료비 및 질관리를 위해 급여로 묶어버릴 수 있다"며 '블루오션'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카이로프랙틱과 관련된 과에서 부수적인 치료를 위해 이를 배우는 것은 찬성하지만, 무분별하게 이를 주된 상병으로 몰고 가면 의료계 자기잠식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카이로프랙틱과 도수의학, 무엇이 같고 다른가? 카이로프랙틱은 다양한 도수치료법 가운데 하나로 보면 된다. 도수치료가 상위개념, 카이로프랙틱이 하위 개념이다. 카이로프랙틱은 손을 뜻하는 '카이로'와 치료를 뜻하는 '프락시스'의 합성어로 손으로 압박을 가하거나 자극해, 비정상적인 척추를 교정하거나 억눌린 신경을 풀어주는 등의 치료법이다.   -규제기요틴 발표 이후, 위원회가 꾸려졌고 의사들을 대상으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카이로프랙틱은 도수치료의 일종으로 의사가 시행해야만 하는 의료행위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 활성화 등의 명목으로 비의료인의 카이로프랙틱을 허용하려 하고 있다. 사실 규제 기요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긴 했지만, 한국형 도수의학·도수치료의 개념 정립은 우리 의학계가 가지고 있던 숙제이기도 하다. -카이로프랙틱협회 등에서는 자신들이 국제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6년, 4200시간에 이르는 교육과정과 까다로운 자격시험을 통과한 전문가라며, 의사들의 비전문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의사들은 6년간의 의대교육 과정, 더불어 5년간의 수련기간을 거쳐 해부학과 병리학 등 관련 지식들을 이미 배웠다. 누가 비전문가라는 말인가? 의사들에게 추가로 필요한 교육은 테크닉, 술기 정도다. 연수강좌를 통해 이 부분들을 교육하고 있다.  -국제자격을 취득했는데 왜 국내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제3국 의사면허가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바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가? 나라마다 각각의 면허체계가 있고, 이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카이로프랙틱, 왜 의사가 해야 하나? 각종 문헌에 따르면 카이로프랙틱 시행례의 5~20% 정도에서 부작용 보고가 있다. 이 가운데는 전신마비와 척수손상 등 치명적인 부작용도 포함되어 있다. 일례로 척수암으로 인한 통증을 단순통증으로 오인해 물리적 힘을 가하면 환자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고 방지할 수 있는 또 긴급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전문가는 전문 의학지식을 가진 의사뿐이다. 뻔히 예측되는 부작용을 안고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앞으로 활동계획은? 한국형 도수의학의 개념을 정립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카이로프랙틱을 포함해 각종 도수치료 행위를 정의하고, 각각 행위별로 위험도를 반영해 필요한 자격이나 심화교육 여부 등 세부 내용을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고신정 기자(ksj8855@monews.co.kr) 사진·고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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