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병원의 전공의 비율 줄여야 ... 미국 10% 미만 vs 한국 30% 이상
정부가 수련병원에 전공의 비용 지불해야 한다는 목소리 커져

2020년 대한전공의협의회 단체행동 당시 모습
2020년 대한전공의협의회 단체행동 당시 모습

[메디칼업저버 박선재 기자] 전공의들은 의사 집단행동 시에만 빛난다(?). 

정부와 의료계가 의료 정책으로 치열할 갈등상태에 이르고, 해결을 못하면 맨 끝단에 있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다.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의대정원 확대를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대화로 풀지 못하자, 보건복지부가 내년부터 2000명 증원한다는 일방적 발표를 했다. 결국 전공의들은 자발적 사직이라는 형태를 취하며 병원을 떠났다. 

그리고 정부는 전공의들은 병원 현장으로 돌아오라고 호소(매달리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듯)하고 있다.

물론 이번에는 검사 정권답게 강도가 좀 세다.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 병원에 복귀하지 않으면 구속기소 등 강력한 처벌을 하겠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실수가 4번 반복되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고 했다.  2000년, 2014년, 2020년 그리고 이번에도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병원에 있는 환자들과 복지부는 불안 상태에 접어들었다.

"수련병원의 전공의 비중 30% 이상 말이 되나"

전문가들은 수련하는 대학병원의 전공의 비율을 줄이고, 정부가 수련 비용을 지불해야 반복되는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수련병원 221곳에 근무하는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는 1만3000여 명이다. 이중 '빅5'로 불리는 서울 시내 주요 상급종합병원 5곳(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의 전공의 수가 2745명이다. 

현재 빅5 병원에 근무하는 전체 의사 수가 7042명이고, 이중 전공의 비율이 39%나 차지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서울대병원 46.2%, 세브란스병원 40.2%, 삼성서울병원 38.0%, 서울아산병원 34.5%, 서울성모병원 33.8%다. 

이에 반해 미국 등 외국의 수련병원 전공의 비율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로로 낮다. 미국 메이요클리닉은 10.9%, 일본 도쿄대 병원은 10.0%다. 

수도권 주요 대학병원장을 경험한 A 교수는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인한 파업 때도 전공의들이 맨 앞에 섰다. 그때도 피교육자인 전공의들이 정부와 대치했다"며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다고 병원이 멈추어 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란 얘기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미국 등 주요 대학병원은 전공의 없는 병원도 많고, 전공의들이 '몸빵'하는 경우도 없다. 우리나라도 수련병원의 전공의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길병원 B 교수도 수련받는 병원의 전공의 비율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미국 등 외국은 수련받는 병원의 전공의 비율이 10% 이하인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서울대병원 46% 정도다. 전문의가 판단해야 하는 것을 전공의가 판단하게 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에서도 같은 인식을 하고 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피교육자인 전공의가 병원을 떠받치는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 정책국장은 "서울대병원은 의사 수가 적지 않지만, 전공의 비율이 46.2%로 빅5병원 중 가장 높아 전공의에게 의존하는 병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정부는 서울대병원이 알아서 돈을 벌도록 방치하고, 병원장도 정규직 전문의보다 싼 전공의로 경영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전공의 비율 낮출 방법은? 

수련병원의 전공의 비중을 줄이려면 정부가 수련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련병원의 전공의 비중을 줄이려면 정부가 수련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련병원의 전공의 비율을 낮출 수 있을까.

의료계는 오래전부터 전공의 수련비용을 정부가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인 상태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의료계의 주장은 무리한 것은 아닌 듯하다. 

미국은 메디케어에서 직접지원 20%, 간접지원 40~50%의 비용을 담당하고 있고, 메디케이드에서도 약 3~4조원을 전공의 수련비용으로 지불한다. 또 국방성, 연방정부 및 보훈처에서도 일정 예산을 전공의 교육을 위해 집행하고 있다. 

영국도 NHS에서 전공의가 수련받는 기간의 급여와 수련교육에 드는 대부분 비용을 지원한다. 정부기금으로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을 양성하기 위한 수련비용을 직접 지원하고 있다. 캐나다도 전공의 급여는 보건부에서 지도전문의 급여는 교육부에서 재정 지원을 한다. 

우리나라 전공의 1인당 수련 비용은 약 8266만원인데, 이를 모두 병원이 감당한다. 

A 교수는 "지금처럼 병원이 수련 비용을 모두 지불하면 병원 입장에서는 내 돈을 쓰기 때문에 더 많이 일을 시킬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수련 비용을 부담하고, 전공의들을 컨트롤해야 한다. 그러면 수련병원들은 '손님'인 전공의들을 교육하는 일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B 교수도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B 교수는 "정부가 전공의 수련과 행정 인력 채용에 필요한 비용을 책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처럼 전공의들이 병원 현장을 벗어나면 또 전전긍긍하는 상황을 계속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만일 정부가 모든 전공의 수련비용을 책임질 수 없다면, 응급실과 중환자실, 응급질환 등 만이라도 수련비용을 지불하는 정책을 했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전공의 빠진다면 그 일은 누가? 

수련비용을 정부가 모두 책임진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전공의들이 해오던 업무를 누가 맡느냐다. 

정부는 필수의료 패키지에서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개선하고, 진료지원인력(PA) 시범사업 등을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전문의 장기계약 활성화와 육아휴직과 연구년 보장, 번아웃 방지하기 위한 병원 자체 거너넌스 등을 거론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같은 정부 대책은 답이 될 수 없다고 평가절하한다. 

삼성서울병원 내과 C 교수는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을 바꾸겠다고 하면서 정부가 제시한 게 입원전담의인데, 현장을 잘 모르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입원전담전문의는 연봉도 높고, 채용하기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A 교수는 전공의의 빈자리를 입원전담전문의로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A 교수는 "입원전담전문의 자체가 적고, 현재 수가로 입원전담전문의에게 그 정도 연봉을 주면서 채용할 수 있는 병원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PA 카드 꺼낸 정부

정부가 수련비용을 지불해도 전공의들이 하던 업무를 누가 대체하느냐도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수련비용을 지불해도 전공의들이 하던 업무를 누가 대체하느냐도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저수가 체계에서 병원들이 전문의를 채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선택지는 PA를 일부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 이번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병원 공백이 길어지자 정부는 '보건의료기본법' 제44조에 근거해 PA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26일 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의료기관의 장이 내부 위원회를 구성하거나 간호부서장과 협의해 결정할 수 있으며, 대법원 판례로 명시적으로 금지된 행위는 수행할 수 없다"며 시범사업 기관 내에서 이뤄지는 행위는 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시범사업 지침을 각 병원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한간호협회도 이에 호응했다. 

27일 간협은 보도자료를 내고 시범사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간협은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 이후 정부가 나서서 간호사 보호 체계를 마련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다만, 이번 조치가 시범사업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후에 법으로 제도화돼 의료 현장의 간호사들을 보호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요구했다. 

A 교수는 병원이 더 많은 의사를 고용할 수 없다면, 이제 PA 활용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A 교수는 "저수가 상태에서 전공의를 대체할 의사 연봉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병원 내에서 PA 역할을 공식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PA 활용도 전공의들이 반대하는 정채이라 정부가 어떤 묘수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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