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지방 할 것 없이 ‘소아 응급실 찾아 삼만리’
소청과의사회 임현택 회장, 해결책으로 대통령 직속 ‘어린이청’ 제안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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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박서영 기자]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같은 질환이라도 원인 진단과 치료 방식 등 모든 것이 어른과는 다르다. 그만큼 중요성도 높다. 소아청소년과가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로 묶이며 필수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이유다.

그런데 소청과의 몰락이 심상치 않다. 최근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전국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15.9%로, 전체 모집인원 207명 중 33명만 지원했다.

대표적 기피과로 꼽히는 흉부외과와 응급의학과도 이 정도 지원율을 기록한 적은 없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존폐를 걱정해야 할 수준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위기는 점차 겉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상급종합병원인 가천길병원은 의료진 미달로 소청과 입원 진료를 잠정 중단했다.

길병원은 2020년부터 전공의를 한 명도 뽑지 못한 실정이다. 지난 1일에는 인천성모병원에서 소청과 응급실 야간 진료를 중단했다. 마찬가지로 의료진 미달이 원인이다.

소위 ‘빅5 병원’이라고 불리는 서울 내 종합병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서울병원 소청과는 모집 정원 6명 중 3명이 지원했으며, 서울대병원은 14명 중 10명, 가톨릭중앙의료원은 13명 중 1명, 세브란스병원은 11명 중 0명 지원이라는 처참한 숫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서울아산병원만 8명 모집에 10명이 지원해 겨우 체면을 세운 정도다.

지방 병원 지원율은 더욱 심각하다. 충북대병원과 전북대병원에서 각각 1명씩 지원한 것을 빼면 지원자가 아예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이 확장되는 모양새로, 지방 거주민들 사이에서는 육아는커녕 아이가 마음 놓고 아파할 수도 없겠다는 성토가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청과 대책은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지난 1월 보건복지부는 소아암 지방 거점병원 5곳을 신규 지정해 집중 운영하고 달빛 어린이 병원을 확대한다는 내용의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구체적 재정 확보 방안은 빠져있어 ‘땜질 처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은 이 점을 지적하며 “소청과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상태다. 복지부에서 전체적인 수가 조정 로드맵을 미리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현재로서는 정확한 재정 소요를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며 “하반기에나 종합 대책을 발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도권·지방 할 것 없이 ‘소아 응급실 찾아 삼만리’
‘맘카페 갑질’ 지적에…부모들 “절대 아냐”

정치권이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논의에만 골몰하는 사이, 아이들은 아파도 제때 진료받지 못한 채 응급의료 현장에서 방치되고 있다. 부모들은 말 그대로 “애가 끓는 심정”이라고 입 모아 성토한다.

충북 청주시에 거주하는 7살 남자아이의 아빠 김모 씨(37)는 불과 한달 전 소아 응급실을 찾을 수 없어 아찔한 상황을 겪어야만 했다. 밤 9시 50분경, 아이가 해열제를 먹고도 고열이 가라앉지 않았다.

119를 통해 안내받은 병원 12군데에 전화를 돌렸지만 모두 소청과 전문의가 없다며 진료를 거부했다. 그나마 전문의가 있는 충북대병원마저도 대기 시간이 3시간이었다.

한참을 연락한 끝에 소아 응급실이 있는 먼 거리의 종합병원을 찾았다. 그 날 마침 소청과 전문의가 있어 진료가 가능했다. 좀처럼 내려갈 것 같지 않던 아이의 열은 주사 한 대에 싹 사라졌다. 이 주사 한 대를 맞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김 씨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심정이다.

김 씨는 “나라에서 매번 저출산이 문제라고 하는데, 정작 태어난 아이들 관리도 못하는 실정”이라며 “진료 거부하는 병원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나. 문제가 있으면 대책을 세워야하는 것 아니냐”라고 토로했다.

수도권이라고 여건이 더 나은 것도 아니다. 경기도 의정부시에 거주하는 노주현 씨(45)는 “당장이라도 용산으로 갈 지경”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3살 여자아이의 엄마인 노 씨는 지난해 급체한 아이가 구토 증세를 보여 종합병원을 찾았으나 소청과 전문의가 없어 진료를 받지 못했다. 결국 119의 안내를 받고 서울의 상계백병원까지 내려갔으나 그곳에서도 대기 시간이 3~4시간이라는 안내에 아이를 민간요법으로 직접 치료해야 했다.

몇 달 뒤에는 아이의 고열로 인해 밤 9시경 달빛병원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밤 11시까지 운영하는 달빛병원 측이 수차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노 씨는 심야약국에서 급하게 약을 사와 아이에게 먹여야 했다.

노 씨는 “정부가 제시하는 대책은 여론 잠재우기 수준에 불과하다”며 “수요자에게 의견을 묻고 그들이 원하는 의료체계를 빈틈없이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소청과 위기의 원인으로 ‘맘카페 갑질’을 지적한다. 이에 노 씨는 “절대 말이 안 된다”라고 단언했다.

노 씨는 “맘카페 회원들이 소청과 후기를 올려봤자 ‘의사가 친절하다’, ‘얘기를 잘 들어준다’ 정도다. 다들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의사가 치료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오히려 맘카페 회원들은 성형외과나 피부과에 할 말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 역시 “소청과 아닌 다른 진료과목도 후기가 올라오는 건 매한가지”라며 “단순 무릎 수술을 받더라도 후기가 안 좋은 병원은 안 찾지 않느냐. 소청과만 평가한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생각만큼 부모들이 병원에 대해 자주 얘기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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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택 회장 “조규홍 장관, 고장난 녹음기처럼 같은 말 반복”
해결책으로 대통령 직속 ‘어린이청’ 제안

정부에서 급하게 ‘소청과 살리기’에 돌입했지만, 의사들 사이에서는 현장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복지부와 중앙응급의료센터는 지난 8일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 공청회를 개최하고 소아 응급 체계 개선책으로 △응급의료기관 평가에 소아 환자 실적 반영 △소아 전문 24시간 상담센터 시범 사업 추진 검토 등을 발표했다. 해당 계획은 2023~2027년까지 5년간 실시된다.

당시 자리에 참석한 대한소아응급의학회 김도균 총무이사는 “소아 응급 체계는 중증환자뿐만 아니라 90%에 달하는 일반 진료 체계도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5개년 계획을 세울 게 아니라 1년마다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고 점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필수의료 지원대책도 마찬가지다. 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지난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공정책수가 도입과 더불어 △중증 소아 진료에 대한 사후 보상 △어린이 공공전문병원 설립 △소아 심장 등 특수 분야의 의사 양성 △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한 의대 정원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장관이 고장난 녹음기처럼 복지부 공무원들의 탁상공론을 연거푸 말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임 회장의 주장에 따르면 어린이 공공전문병원은 이미 설립된 곳마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실정이다. 또 소아 심장 등 특수 분야는 탁월한 인재들이 의사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보상과 뒷받침이 이뤄져야 하는데 조 장관의 발표에는 이런 점이 모두 배제돼있다.

의대 정원 확대 역시 소청과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봤다. 임 회장은 “의사의 질은 담보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대우가 좋아야 소청과 전문의를 하는 거지, 대우가 바닥인데 누가 소청과를 지원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해결책으로 저출산·어린이 정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대통령 직속 어린이청 신설을 제시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운영 중에 있으며, 일본 역시 올해 상반기 설립 예정이다.

전담 부서 신설은 소청과학회 주장과도 상통한다. 학회는 소청과 대책 방안으로 부서 신설과 더불어 △기본 입원진료 수가의 소아연령 가산 2배 이상 강화 △중증도에 따른 입원 및 행위료 가산율 인상 △전공의 임금지원 및 보조인력 비용지원 △입원전담·응급전담전문의 고용지원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임 회장은 “아이들이 길 위에서 갈 곳을 못 찾고 위험해지는 경우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조규홍 장관과 임인택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아이들에게 분명한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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