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에도 불만 여전...尹정부, 정책 엇박자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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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신약 제품화의 마지막 관문은 적정한 가치 반영이다. 즉 제약사와 규제당국 모두 인정하는 합리적 약가를 획득하느냐에 따라 상업화의 성패가 달라지는 것이다.

합리적 약가를 위해 정부와 제약사가 벌이는 약가협상은 비용효과 분석뿐 아니라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가격’으로만 치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본지는 2023년 계묘년을 맞아 약가 산정 척도 기준인 A7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리나라의 약가 시스템, 그 중에서 경제성평가의 현 주소를 점검했다.

특히 개정된 경제성평가 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보다 선진화된 제도 개선 방향성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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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경제성평가 면제 제도를 두고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환자 수가 소수이면서 삶의 질이 현격히 떨어지는 희귀질환에 사용하는 약제를 경제성평가 면제 대상에 추가하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소아에게 한정한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경제성평가 자료제출 면제의 대전제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개정안을 보면 경제성평가 자료제출 면제를 위한 필수조건에 ‘대상환자 소수’ 문구를 추가했다.

이 조건은 경제성평가 적용 대상 약제 조항 2호의 다목, 싱글암(Single-arm)연구로 진행한 경우 등과 함께 일종의 ‘또는(or)’을 의미하는 조건이었다.

이에 따라 경제성평가 자료제출 면제를 위해서는 환자 수가 소수(200명)여야 하고, 2호 다목을 통과하려면 이를 충족한 상태에서 근거 생산이 곤란하다는 것을 전문위원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제약업계는 경제성평가 자료제출 면제 대상 범위가 축소될 것을 우려한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관계자는 “대상환자 소수 기준이 대상 약제를 선정하는 여러 기준 중 하나였지만, 개정안은 경제성평가 면제 제도의 기본 조건이 됐다”며 “대상환자 수가 소수를 넘은 질환에 경제성평가 면제 적용이 불가해 오히려 대상 범위가 축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 같은 내용은 2022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복지부와 심평원으로부터 입수한 자료 분석 결과를 토대로 경제성평가 자료제출 면제 제도 개선안은 사실상 경제성평가 면제 가능 약제 적용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강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 경제성평가 면제 제도 대상 약제는 항암제 11개, 희귀질환 치료제 4개 등 총 15개다. 그러나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소수에 해당하는, 즉 환자 200명 미만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항암제 2개가 경제성평가 면제 제도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KRPIA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인구 1만명 당 각각 5명, 6.4명을 희귀질환 및 소수 환자 수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경제성평가 면제 환자 수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질병 특성을 고려한 예외를 인정하고 소아로 한정된 범위를 추후 성인까지 넓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지적은 국내 제약업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대상 환자가 소수인 희귀질환 의약품에 국한할 게 아니라 환자 수와 무관하게 경제성평가를 면제, 신속한 등재와 환자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며 “대상 환자 범위를 소아에 국한하지 말고 성인을 포함, 삶의 질이 떨어지는 희귀질환 치료제에도 경제성평가를 면제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尹정부 국정과제 엇박자 정책 우려...“신약 가치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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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현재 외국가격 참조국 A7(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에 캐나다와 호주를 추가하면서 약가 인하로 인한 ‘코리아 패싱’우려도 심해지고 있다.

국내에서 낮은 가격과 보험등재의 어려움으로 급여가 지연되거나 포기 사례가 있는 상황에서 이번 개정안은 되레 항암신약 및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의 국내 도입 시기를 지연시켜 환자의 신약 접근성에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란 주장이다.

KRPIA에 따르면 올해 보험등재된 2개의 원샷 치료제의 국내 약가는 A7 국가의 72%, 65% 수준이다.

신속등재 개선안 문제도 지적됐다. 

KRPIA가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희귀질환 치료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부터 건강보험 등재까지 총 23.6개월이 소요됐고, 희귀암 치료제는 31.8개월이 걸렸다. 23~31개월 중 60일 단축은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KRPIA는 “심평원과 건보공단 심의절차 전체 기간을 단축한다고 하지만 환자 접근성 관점으로는 미흡하다”며 “환자 관점에서는 식약처 허가 이후 빠르게 보험혜택으로 이어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 정부는 대선 공약부터 국정과제에 이르기까지 약자복지 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약속했다”며 “약가 참조국을 추가해 환자 접근성을 저해하고 신약개발 의지를 꺾어 제약기업을 고사시키는 규제를 신설하는 것은 현 정부 기조에도 역행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실제 신경섬유종증 치료제 아스트라제네카 코셀루고(성분명 셀루메티닙)는 2020년 10월 식약처 신속심사 대상으로 최초 지정돼 2021년 5월 품목허가를 획득했지만, 현재도 비급여 상태다.

이외에 아밀로이드성 심근병증, 단장 증후군, 유전성혈관부종, 척수성근위축증, 시신경척수염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한 환자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 중인 허가-평가-협상 연계제도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바늘구멍과 같은 극소수의 치료제만 해당된다”며 “생명을 위협받는 환자를 위한 치료제는 경제성평가 면제 제도 확대가 유일한 희망이지만 개정안을 보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활용될 경제성평가 면제 제도. 글로벌 제약업계와 국내 제약업계는 신약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KRPIA는 경제성평가 면제 제도는 그동안 생명에 위협을 주는 질환에 적용돼왔고, 앞으로는 환자의 삶의 질이 저하되는 희귀질환까지 확대되는 만큼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위해 제도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제약업계는 제도의 적극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신약의 가치가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조만간 국내 제약사에서도 대체 약제가 없는 혁신 신약을 출시할 예정인 만큼 적정가격을 보상받을 수 있는 새로운 약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국내사 관계자는 “신약의 가치를 보험약가에 제대로 반영하려면 신약 가격 책정 기준이 되는 대체약제 범위를 좁혀야 한다. 지금처럼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약제를 모두 대체약제로 삼는 방법으로는 답을 찾기 힘들다”며 “대체약제가 존재하지 않는 혁신 신약 개발까지 연구개발 수준이 높아진 만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약가정책이 수립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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