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승계 여부가 관건 ... 의료계, 의료영리화 우려

[메디컬업저버 신형주기자] 올해 중소병원계 및 의료법인들의 오랜 숙원인 인수합병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부실 의료법인은 퇴출 절차가 마련되지 않아 경영상태가 어려워도 파산 시까지 운영할 수밖에 없어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와 경영 악순환으로 인해 지역 내 의료제공에 차질이 발생한다.

이 논의는 2006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재임 당시부터 논의가 있어 왔지만, 의료 영리화, 병원 구조조정 및 고용 불안 등의 반대에 부딪쳐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경영악화로 인해 좀비형 중소병원들이 증가하면서 19대, 20대, 21대 국회는 지속적으로 부실 의료법인의 퇴출 구조를 마련하고, 인수합병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인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은 부실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해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부실 의료법인에 대한 퇴출 구조 마련 필요성과 의료자원 효율성 증대를 위한 의료법인 인수합병 공감대가 형성되는 상황이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본지는 올해 의료법인 인수합병의 토대가 마련될지 짚어본다.   - 편집자 주

의료법인은 의료의 공공성 제고와 지역 간 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해 의료취약지에 건립되고 있다.

대부분 의료법인 의료기관은 중소규모이며, 대도시보다 지방 및 중소도시에 상당수 분포돼  있다. 1203개 의료법인 의료기관은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의원급 의료기관 등 전체 의료기관 약 6만 577개 기관 중 2%를 차지하고 있으며, 1203개 의료법인 의료기관 중 병원과 요양병원이  849개 기관으로 70.5%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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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인 인수합병 왜 필요한가?

의료법인은 지역 내 의료제공과 의료취약지 의료제공 등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 신종플루 당시 171개 의료법인 의료기관이 시설과 인력확충 등을 통해 신종플루 거점병원으로 운영됐으며, 응급의료센터 및 응급의료기관 중 의료법인 의료기관이 41.4%를 차지했다.

그러나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의료법인의 경영 상태는 해가 거듭될수록 악화되고 있다. 수익이 발생하는 의료행위 수가 중 비급여 항목들이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급여화되고, 지속적인 저수가 정책으로 인해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2013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의료법인 의료기관의 의료수익 순이익률은 2008년 1.0%에서 2009년 1.4%, 2010년 0.2%로 급감했으며, 2011년 0.9%에서 2012년 -0.1%로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됐다.

지방에 있는 의료법인 A 원장은 "현재 의료법상 의료법인 합병은 재단법인에 관한 법률을 준용하게 돼 있어 인수합병이 불가능하다"며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은 법적으로 매각할 수 없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병원을 팔 수 없고, 병원을 국가나 지자체에 재산을 귀속시켜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중소병원들이 어려워 시장에 나와 있는 병원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며 "병원이 폐업 직전까지 가도 처리할 수 없어 합병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영만이라도 맡아 달라고 하는 병원장들이 있을 정도로 중소병원의 어려움은 심각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중소병원계는 부실 법인을 퇴출시키고, 정상적인 고유목적사업 수행을 위한 인수합병 절차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중소병원과 부실한 의료법인 퇴출 구조 마련을 위한 인수합병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여당과 야당 모두 공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20대 국회 당시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결국 회기 종료로 폐기된 바 있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은 의료법인 인수합병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지만, 지난 20대 국회부터 분위기가 변화돼 의료법인 인수합병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원준 전문위원은 "과거에는 의료 영리화 우려로 의료법인 인수합병에 부정적 입장이었다"면서도 "현재는 의료법인 인수합병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분위기 변화는 지난해 12월 10일 열린 대한의료법인연합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민석 위원장과 이명수 의원의 축사에서 감지할 수 있다.

김민석 위원장은 "의료법인 인수합병과 부대사업 규제는 현실과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위에서 의료법인 인수합병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논의할 때 무거운 마음으로 논의하겠다"고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긍정적 신호를 보냈다.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은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한 당사자로서 건실한 의료법인이 부실한 의료법인을 합병해 부실한 의료법인 운영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며, 환자들에게는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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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인수합병에 대한 우려의 핵심은 영리를 추구하는 체인병원이 증가해 의료 영리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법인 합병 허용은 병원의 매각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조치로, 병원의 가격이 책정되면 의료법인의 투자자본은 회수 가능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체인형 병원이 설립되면 영리자회사를 통해 병원 체인에 병원임대, 의료 용구 임대나 판매, 인력공급, 경영컨설팅 등 영리사업을 하게돼 영리자회사가 지주회사화 되는 영리병원 체인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소병원계는 의료법인의 합병과 의료 공공성은 무관한 영역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합병에 따른 법인 역시 의료법인으로, 그 재산 역시 완전한 개인의 재산으로 볼 수 없다는 것.

학교법인과 사회복지법인의 인수합병 절차가 이미 법률에 규정돼 있는 상황에서 부실 의료법인 퇴출 절차가 마련된다고 해서 의료법인의 자산이 사적 소유물로 간주되거나 공공성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대형 의료기관이 주변 중소병원을 합병해 지방 중소병원의 몰락으로 국민 의료접근성 훼손 및 의료비 상승을 초래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중소병원계는 반박했다.

대형병원인 상급종합병원 대부분은 학교법인 또는 특수법인으로 의료법인과의 합병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상급종합병원 중 의료법인 병원은 가천대길병원과 강북삼성병원 뿐이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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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는 무르익는데, 주요 쟁점은?

20년 가까이 중소병원계가 요구하는 의료법인 인수합병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의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정치권과 정부, 병원계는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어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하지만 의료 영리화를 우려하는 대한의사협회의 반대와 노조의 명확한 고용승계 요구는 의료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복지부는 의료법인 인수합병이 의료 영리화로 변질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인수합병 과정에서 병원 종사자에 대한 보호규정 보완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오창현 과장은 "이명수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종사자에 대한 고용승계 부분이 빠져 있어 종사자 보호차원에서 보호규정이 추가적으로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의료법인 간 인수합병으로 인해 의료 영리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합병 시 우려되는 사항은 하위법령을 마련할 때 합병요건을 규정하고, 심사과정에서 신중하게 검토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것"이라며 "합병요건 검증 강화를 위해 시도지사가 합병 허가 시에는 복지부 장관 승인을 받도록 절차를 추가하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개정된 의료법에는 의료법인 임원 선임과 관련해 금품수수 등을 제한하고 있어 비영리법인 간 금전적 대가를 전제로 합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의료법인만 인수합병을 허용해 합병 후에도 수익 외부유출이 금지돼 비영리법인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 복지부의 판단이다.

남은 것은 합병 과정에서 직원들의 고용승계 문제다. 복지부는 종사자들의 보호규정 보완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당사자인 의료법인들은 어느정도까지 고용을 승계할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한의료법인연합회 이성규 회장은 "의료법인 인수합병은 정치권, 정부, 병원계가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노조 역시 고용승계 문제가 해결된다면 크게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고용승계 문제는 논의가 더 필요한 사항"이라고 전했다.

이 회장은 "부실 의료법인 의료기관의 모든 직원에 대해 100% 고용을 승계할 수 없다. 부실 의료법인 종사자들의 고용 승계는 마땅하지만, 문제가 있는 직원까지 승계할 수는 없다"며 "국회 논의 과정에서 고용승계의 적정선이 설정돼야 한다. 70~80%까지는 고용을 승계할 수 있지만 100%를 승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의협 인수합병 통한 대형병원 브랜드·체인화 통한 의료영리화로 여전히 반대

정치권과 정부, 병원계, 노조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의협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협은 의료 영리화 및 동네 병의원 몰락에 따른 의료접근성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단체가 의협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의협 박수현 대변인은 "인수합병을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고민해야 한다. 결국 거대자본을 가진 대형병원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중소병원을 분원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브랜드화 내지 체인화된 대형병원들이 늘어날수록 1차, 2차, 3차 의료전달체계는 무너질 것이다. 기존에 잘 운영되던 의료법인이 부실한 의료법인을 인수합병하면서 잘 운영되던 의료법인까지 경영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인수합병한 의료법인은 적자를 메우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기존 병원을 공장식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있으며, 값싼 의료인력을 활용한 불법진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부실한 의료법인에 대한 청산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부실 의료법인이 발생하기 이전 정부가 사전에 의료기관 인증이나 의료법인 운영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방지책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런 의료계의 부정적 의견에 의료법인들은 인수합병으로 병원의 규모가 커지거나 병원 수가 늘어나지 않는다며, 합병에 따른 지역의 의원 이용 환자가 합병된 병원으로 옮기는 현상도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병원과 의원을 이용하는 환자의 병명이나 상태가 일반적으로 달라 근접한 소규모 병의원과의 경쟁이 심화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열악한 의료법인이 계속 존재함으로써 불가피한 경쟁으로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재 의료법인 의료기관은 전체 의료기관의 2%에 불과해 병원급뿐만 아니라 의원급도 개설돼 있는 다양한 종별 현실을 감안할 때 근접한 의원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성규 회장은 "경영 부실 의료기관 감소로 불필요한 진료비 증가를 억제하고,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며 "부실 의료기관이 계속 운영되면서 국가재정을 소모하는 것은 국민 의료비 증가 및 국가 재정관리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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