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위주 성장과 체계 없는 연구비 지원으로 연속성 결여
임상3상 설계 CRO에 의지하지 말고 전문가와 소통해야

이미지출처: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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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1조 이상 매출액을 기록하는 제약사가 늘어나고, 성장 가치와 잠재력은 세계 으뜸이지만 블록버스터 신약과는 거리가 먼 국내 제약·바이오 생태계가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왔다.

코로나19(COVID-19)를 계기로 글로벌 의약품 공급망 재편 주도권과 자급자족 능력이 해당 국가의 영향력을 의미한다는 것을 증명한 만큼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회가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

이들은 정부와 대학, 민간이 각자의 이익보다는 서로의 역할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평가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임상3상 설계 시 직접 환자를 진료하고 연구하는 임상전문가와 제약사 간의 연계는 필수 조건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30일 온라인으로 'K-블록버스터 글로벌 포럼'을 개최하고 민·관·학이 함께 해야 할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 진입, 메가펀드 조성, 임상3상 전략 등을 공유했다.
 

글로벌 성공 경험 부재…분산된 정부 지원 한계
IPO 위주 성장 벗어나야…체계적 대응 필요해

첫 발표에 나선 연세의대 송시영 교수(소화기내과)는 향후 3~5년 내에 글로벌 제약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국가적인 위험이 다가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내수시장 위주의 성장과 높은 수입의존도 때문에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진단인데, 범국가적인 체계적 대응이 미흡했기 때문으로 봤다.

연세의대 소화기내과 송시영 교수
연세의대 소화기내과 송시영 교수

세계적인 제약사를 배출한 스위스와 영국 등은 산업 육성을 위해 니즈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법제까지 바꿔가며 경계를 허무는 오픈이노베이션을 일찍부터 활성화한 반면 국내 기업들은 IPO(기업공개)에 의존한 점을 비판했다.

송 교수는 "글로벌 빅파마들은 벤처창업, 기술이전, 인수합병(M&A) 가속화를 통해 파이프라인을 성장시켰다"며 "하지만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은 매출 없는 IPO에 기대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능한 대학 교수들이 수많은 창업을 했지만 IPO에 실패해 후학 양성과 깊이 있는 연구를 할 기회를 잃었다"며 "기업들도 세습 위주로 전략을 세워 방향성이 불투명한 경우가 많았다"고 부연했다.

정부 지원 연구비가 늘어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지만 대부분 대학으로 투입되고 이마저도 인건비 위주로 사용돼 이를 획득하기 위한 교수들 간의 갈등, 학연·지연 갈등이 생겨난 것을 우려했다.

즉, 정부의 지원과 제약·바이오기업의 지향점, 대학의 연구 목표 등이 따로 놀지 않고 서로 유기적으로 융합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미국은 보건의료 연구개발(R&D) 예산의 90%를 국립보건원에 투자해 혁신 프로젝트 개발에 집중하지만 우리는 정부 투자와 지원과제가 부처별로 분산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 교수들이 갖고 있는 개발 초기 단계 후보물질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제약·바이오기업의 경우 강력한 리더가 하나둘씩 나와야 하는데 다행히 지난해 매출 1조 이상 기업이 많이 늘었다"라고 덧붙였다.
 

환자 진료하는 연구자들과 임상3상 설계해야
임상시험수탁기관만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돼 

서울의대 방영주 명예교수(혈액종양내과, 방앤옥컨설팅 대표이사)는 임상3상을 설계할 때 환자와 가장 밀접한 위치에 있는 임상전문가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서울의대 방영주 명예교수(방앤옥컨설팅 대표이사)
서울의대 방영주 명예교수

임상3상이 실패하면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는데 실패 원인은 충분하지 못한 환자 수, 안전성 문제, 중대한 부작용을 찾지 못하는 경우 등에 있는 만큼 제약사가 임상 현장과 더욱 친해져야 한다는 의미다.

방 교수는 "임상3상까지 왔으면 어떤 약물과 경쟁해야 하는지, 국가마다 환자 특징이 어떤지, 통계적인 허점은 없는지, 위협은 무엇인지 등의 자문을 구하고 프로토콜을 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설계의 주체가 제약사인 것은 맞지만 실제 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연구하는 임상 전문가와 소통을 강화하는 게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전했다.

이는 임상시험수탁기관(CRO)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안 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그는 "국내 제약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지만, 임상3상 설계 후 CRO에만 의존하지 말고 주의 깊게 모니터링 하는 게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메가펀드'는 혁신 신약 완주 도우미 
각자도생 버리고 컨소시엄 구성해 뭉쳐야

한국형 블록버스터 창출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도 제시됐다.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 허경화 대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개발 모델'을 주제로 신약개발 자본시장의 구조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허 대표는 "신약개발 투자를 위한 자본시장을 정부지원, 민간펀드, 제약·바이오기업 세 가지로 구분했을 때 대부분 초기 단계 포트폴리오에 집중해 임상 후기 R&D 투자는 한계에 부딪혀 기술 수출에 의존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 허경화 대표의 발표 모습.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 허경화 대표의 발표 모습.

투자 규모는 늘고 있지만 블록버스터 개발을 위해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후기 단계 투자가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의 '민·관 합작 투자사업(public-private partnership, PPP)'이 요구되고 특히, 후기 임상에 집중 투자할 수 있는 1조원 규모의 '메가펀드'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 혁신의약품 이니셔티브(IMI),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 및 블랙스톤 등이 대표적인 메가펀드 사례다.

그는 "초기 기술수출에서 후기 임상개발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메가펀드를 조성해야 한다"며 "메가펀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역설했다.  

이어 "제약바이오기업과 바이오텍은 각자도생 할 것이 아니라 컨소시엄 등을 구성해 뭉치고 민관은 협의체를 통해 협력해야 할 것"이라며 "전략보다는 구체적인 실행이 필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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