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고령사회로 접어들며 헌혈할 수 있는 젊은 인구는 감소하고, 수혈받아야 하는 노령인구는 증가하는 등 혈액수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은 헌혈할 수 있는 인구조차 헌혈이 불가능하게 만들어, 정부는 혈액부족으로 인해 전 국민에게 헌혈에 동참해 달라는 긴급재난문자까지 발송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다행히 긴급재난문자 영향으로 혈액부족 상태는 다소 해소됐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절실한 시국이다. 이에 감소하는 헌혈과 부적정한 수혈을 제어할 수 있는 방안으로 환자혈액관리(Patient Blood Management, PBM)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KPBM)는 환자혈액관리을 위한 의료진 교육 및 홍보, 수혈 가이드라인 마련과 정부의 정책 자문을 통해 의료진과 환자들의 인식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정부의 환자혈액관리를 위한 정책 추진과 맞물려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KPBM)는 지난달 18일 '팬데믹(Pandemic) 상황에서의 환자혈액관리 중요성'을 주제로 온라인 세미나인 웨비나를 개최했다. 이날 웨비나는 KPBM 전 회장인 인제의대 엄태현 교수의 '국내 환자혈액관리 제도의 변화', KPBM 회장인 고려의대 박종훈 교수의 '병원 차원의 환자혈액관리 실행'에 대한 강의가 진행됐다.

엄 교수는 환자혈액관리의 정의와 최근 유럽국가들의 PBM 도입 전략, EU의 PBM 가이드라인에 기반한 우리 정부의 PBM 도입 진행과정을 설명했다. 엄 교수에 따르면, 환자 임상 결과는 세 가지 독립위험인자인 환자의 출혈과, 출혈에 따른 빈혈 발생, 빈혈 치료를 위한 수혈을 잘 조절해야 좋은 치료성과를 얻을 수 있다. 즉 출혈, 빈혈, 수혈을 잘 조절하는 것이 환자혈액관리라는 것이다. 세 가지 위험인자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면 수혈률을 낮추고, 환자의 사망률과 재원기간, 재수술률 및 재입원율, 합병증, 경제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유럽은 PBM 도입 활발…가이드라인도 제정

인제의대 엄태현 교수.

            국제환자혈액관리재단(The International Foundation for Patient Blood Management, IFPBM)은 환자혈액관리를 환자가 자신의 혈액을 잘 관리·보존하고, 근거에 기반한 다학제적 진료를 통해 환자의 내외과적 의료결과를 최적화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북미환자혈액관리학회(The Society for the Advancement of Blood Management, SABM)에서는 환자의 혈색소 농도·출혈·지혈을 잘 관리하며, 출혈량을 최소화하고, 근거에 기반한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의 치료결과를 증진시키는 것으로 규정했다.

유럽은 PBM이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으며, 2017년 3월 PBM 도입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제정됐다. 가이드라인은 구조, 과정, 결과로 세 가지 측면에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구조’는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 장비, 제도 구축 등이다. ‘과정’은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종류 및 그 흐름이다. ‘결과’는 제공된 의료서비스가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으로 PBM은 세 가지 측면을 통해 현재 상황을 파악해 발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또 가이드라인은 국가적으로 PBM을 도입하기 위해 PBM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회 산하에 전문학제별로 표준화할 수 있는 PBM 가이드라인 개발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PBM의 데이터를 구축하고, 벤치마킹 및 분석할 수 있는 위원회 설치와 인적자원을 육성해야 하며, 실질적인 구조적 요건을 제공하는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국가는 PBM 연구를 지원해야 하며 PBM을 구현할 수 있는 재정적 지원과 수가반영을 위한 연구 TFT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서도 변화 움직임…질본, PBM 방안 연구 중 

엄 교수는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 산하 혈액관리위원회에서 PBM을 중요한 정책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PBM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질병관리본부가 연구과제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질본은 국립암센터 김영우 교수를 책임연구자로 한 '환자혈액관리의 효과적인 추진방안'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엄 교수는 지난 18년간 의료계 내부적으로 수혈적정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화됐다고 진단했다. 엄 교수는 "질본은 2019년 변화된 내용을 반영해 적정성평가 지표 개발 연구를 진행했다"며 "평가지표는 2016년 개정된 제4판 수혈가이드라인 내용을 바탕으로 53개 지표가 발굴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는 이 중 타당성이 높은 16개 지표를 제시했다"며 "선정된 평가지표는 기관수혈지침서, 수혈관리교육 실시, 대량수혈프로토콜, 혈액제제 혈액형 재확인율, 수혈 전 빈혈환자의 빈도 및 원인분석, 1단위 수혈량지표 등"이라며 "현재 연구보고서에서 제시된 지표를 기반으로 심평원은 적정성평가에 사용할 지표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엄 교수는 "환자혈액관리는 환자 중심의 다학제 진료"라며 "외과계 수술뿐만 아니라 내과 분야도 연관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적정 혈액 사용 시 환자와 의료기관 모두 유익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현재는 환자혈액관리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구현할지 노력이 필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병원 차원에서 PBM 관심 가져야

박 교수는 병원 차원에서의 PBM 적용을 위한 방법과 그 영향을 고려대 안암병원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환자혈액관리 개념이 지난 7~8년간 국내에 많이 보급됐지만, 아직 PBM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며 "환자혈액관리에 내포된 의미 속에는 기존 방식과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환자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끌어올려 최소량의 수혈로 모든 치료를 마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지난 2015년 네이처지에 ‘Save Blood, Save Lives’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됐다"며 "수혈 역사 1세기 동안 인류는 수혈이 생명을 살리는 개념으로 인식해 왔지만, 2000년대부터 이러한 개념이 변화되고, 수혈량을 줄여 환자 생명을 살린다는 논문들이 발표됐다"고 설명했다.

여러 논문에 따르면, 의사들에게 수혈 가이드라인을 상기시켜도 수혈량이 상당히 줄어들며, 재원기간과 사망률이 감소됐다는 것이다. 북미환자혈액관리학회(SABM)는 환자관점에서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PBM은 관리가 중요하다. 수술 전 환자의 빈혈상태를 개선하고, 기존 방식대로 수혈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수술 이후에는 환자의 혈액량 요구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

박 교수는 "빈혈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개선해야 한다"며 "미국은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의료진이 환자에게 수혈에 대한 위험을 설명해야 하고, 수혈 이외 다른 방법은 없는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의 빈혈을 치료하기 위한 내과 및 마취과 등도 PBM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하며, PBM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의사 개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다학제적으로 각 전문 진료과가 관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려의대 박종훈 교수.

 

고려대 안암병원, PBM 정착 위해 인프라 구축

박 교수는 안암병원 사례를 들어, PBM 정착을 위해 인프라 구축과 실행 기구 마련 및 OCS(Order Communication System)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마이크로 샘플링시스템으로 환자의 빈혈상태 확인을 위한 최소한의 혈액만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PBM 보고시스템과 벤치마킹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며 "의료기관은 자체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구축해 환자와 의료진에게 적용해야 한다. 이런 방식이 정착되면 의료기관 전체가 최소 수혈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에서 PBM을 정착하기 위해 의료진의 공감대가 이뤄져야 하며, 병원 최고경영진이 PBM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정착하고자 하는 의지와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의료기관 내에서 PBM을 정착하기 위한 병원 최고경영진은 PBM에 공감하는 의료진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비전을 공유한 의료진은 핵심 PBM 위원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방법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국제적 컨센서스는 전체 수혈의 90%가 부적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도 이런 국제적 컨센서스보다 낮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평원이 인공관절 수술을 한 의료기관들의 수혈률을 표본조사한 결과, 상급종합병원은 40.7%였으며 일반 병원급은 74%에 달했다. 같은 기간 안암병원은 3.8%로 상급종합병원의 10분의 1 수준이었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다.

또 "이런 것이 기관단위의 PBM이 지향하는 방향"이라며 "안암병원은 2017년부터 PBM TFT를 구성하고, 무수혈센터 및 빈혈클리닉을 운영하며, OCS 프로그램을 개선해 왔고 혈액샘플링을 최소화하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안암병원은 의사가 수혈처방전을 내면 검증 절차 없이 바로 수혈이 이뤄졌다. 하지만 OCS 프로그램 개선을 통해 의사가 수혈 처방 시 수혈 가이드라인에 적합한 처방인지 검증해 체크해야만 수혈 처방이 이뤄지도록 했다.

부적정 수혈 시 즉시 피드백

10년간 수혈량 절반으로 줄여 

수혈처방을 할 때마다 수혈 가이드라인을 상기시키는 것이 의미가 있다. OCS 프로그램에서 수혈 처방에 대한 데이터를 구축해, 누가 어떤 조직에서 부적절한 수혈을 하는지 체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암병원은 OCS 프로그램 데이터를 적정수혈 알고리듬에 대입해 부적정 데이터를 모아 부적정 수혈을 한 의료진에게 피드백하고 있다. 안암병원은 2018년 1월 당시 적정 수혈이 30%, 부적정 수혈이 70%였지만, 2020년 5월에는 적정 수혈이 80%, 부적정 수혈이 20%로 변화됐다. 대부분 부적정에서 적정수혈로 유도됐다는 평가다.

안암병원은 의료진 개인별로 적정 수혈과 부적정 수혈에 대해 피드백을 하고 있으며, 매달 수술 전 빈혈 가이드라인을 공유하고 있다. 박 교수는 "안암병원의 정형외과는 지난 10년간 수혈량을 절반으로 줄였다"며 "인공관절 수술의 경우 미국의 수혈량에 비해 절반 수준"이라고 전했다.

그는 "안암병원의 무수혈센터는 심평원이 수혈적정성평가를 시행할 경우 핵심위원회가 될 것"이라며 "각 의료기관은 PBM을 제대로 해야 한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의료기관에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PBM은 당연히 해야 한다"며 "PBM은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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