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현행 종합병원급 적용 회계기준 병원급으로 확대 움직임 보여
의료계, 회계자료 의무보고 시 통제·통솔 등 악용될 우려 크다며 반발
기준 적용되면 재무제표 추가 작성에 투입되는 행정인력·비용도 부담

[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의료계가 국회의 '의료기관 회계기준' 적용 확대 움직임에 긴장하고 있다.

이 기준이 확대 적용될 경우 소규모 병원에서도 일정 수준의 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고, 소위 '얼마나 벌고 얼마나 쓰는지' 등 수입·지출 내역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맹성규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의료기관의 경영현황 파악과 회계투명성을 제고하는 취지에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최근 대표발의했다.

이번 개정법률안은 의료기관 회계기준 적용 대상을 현행 종합병원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급 의료기관까지 확대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맹 의원은 현행법을 적용받는 의료기관이 적어 일반 병원급의 회계자료를 비교·수집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맹 의원은 "2004년부터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에 대한 의료기관 회계기준 적용을 의무화했으나 적용 대상 종합병원은 2018년 기준 353개소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3924개의 8.9%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소병원의 재무상태 및 경영수지 분석이 어려워 정책 수립에 애로사항이 있다"며 "일부 해외 국가들은 모든 병원에 회계자료 제출 의무를 명시해 합리적인 수가 결정 등에 이용 중"이라고 덧붙였다.
 

의료기관 회계기준이 도대체 무엇인가? 장점과 단점은?

현재 의료법 제62조 제2항 및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 제2조에 따르면 직전 회계연도 종료일 기준 1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은 의료기관 회계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이는 의료기관의 설립자가 개인인지, 법인인지에 따라 구분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즉, 개인 의료인이 개인사업자로서 1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면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을 적용해야 하며 반대로 의료법인이 법인사업자로서 100병상 미만의 종합병원이 아닌 병의원을 운영하고 있다면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의 적용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의료기관의 설립주체가 학교법인이거나, 사회복지법인이거나, 준정부기관이거나에 상관없이 100병상 이상의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이 적용된다는 뜻이다.

회계·세무 전문가들은 비록 의무적용대상이 아니더라도 의료기관 회계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 회계기준을 적용하면 의료미수금 등 의료기관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계정을 병원 내부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용이할 수 있고, 추후 의료기관이 성장할 경우에 회계처리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회계·세무 전문가는 "회계학의 질적 특성 중 하나가 비교가능성"이라며 "병원 내부 관리 관점인 기간별 비교가능성과 병원끼리의 비교인 실체별 비교가능성 제고를 위한다면 의료기관 회계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고 언급했다.

특히 그는 비교가능성을 제고시키면 병원 경영에 대한 의사결정뿐만 아니라 수요자인 환자들의 병원 선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의료기관 회계정보의 이해 가능성, 목적 적합성, 신뢰성 등이 주요 질적 특성으로 제고된다면 환자들의 의료기관 신뢰도도 덩달아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회계·세무 전문가가 강조한 '비교가능성'이 100병상 미만의 병·의원과 100병상 이상이지만 종합병원이 아닌 병원급 의료기관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될 여지가 높다.

일반적으로 개인사업자에게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별도의 회계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부분의 개인사업자는 소득세법에 어긋남이 없도록 회계처리를 하고 이를 근거로 소득세를 납부하면 된다.

반면, 의료기관 회계기준을 적용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 제4조에 따르면 해당 기준을 적용받는 병원은 재무상태와 운영성과를 나타내기 위해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기본금변동계산서(병원 개설자가 개인인 경우 제외) △현금흐름표 등의 재무제표를 작성할 의무가 있다.

재무제표의 세부작성방법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해 고시하도록 돼있다.

또한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상 주석 기재 사항도 존재하는데 여기에는 △유형자산 과목별 감가상각방법·내용연수 △주차장·매점·일반식당·장례식장 직영수익 △의료사고 처리 수수료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사용내역 △의료수익 삭감액내역 등이 포함된다.

다시 말해 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법률안이 소규모 병원으로까지 확대될 경우 이들 의료기관은 상급종합병원 혹은 대학병원들이 매년 공개하는 예·결산자료와 대동소이한 회계처리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한의사협회, 반대 의사 공식적으로 밝혀
의료기관 부담만 주는 과도한 규제에 불과

이와 관련 의료계는 중소병원에 또 다른 회계업무만을 가중시켜 경영에 타격을 줄 것이며 반발하고 있다.

회계 투명성 제고 및 합리적인 수가 결정의 명목 하에 의료기관 회계기준 의무화를 확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도 강하다.

이미 저수가와 최저임금 상승, 간호등급제 등의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의료기관에 추가 부담만 되는 개정안이 될 것은 자명하다는 것.

대한의사협회는 "오히려 영세한 병원급 의료기관에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병실을 운영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이나 중소병원에 저리대출, 카드 수수료 인하 등의 세제완화 대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아울러 개정안에서 제시한 의료기관의 재무상태, 경영수지 분석 등은 현재도 건강보험 청구와 국세청 세금신고 등으로 갈음해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의협이다.

실제로 중소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도 이번 의료기관 회계기준 확대 적용은 경영수지분석 지원보다는 통제 목적이 더 강한 것 같다는 의문을 표했다.

대한지역병원협의회 이상운 의장 겸 공동회장은 "중소형 병원에 대한 지원책은 회계기준 변경이 아니더라도 각종 규제 완화 등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많다"며 "오히려 민간자본이 완벽하게 통제가 돼 의료기관을 통솔하겠다는 의미로 밖에 안 들린다"고 비판했다.

지금보다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회계기준을 중소병원이 따라가기 힘든 부분도 문제다.

이상운 의장 겸 공동회장은 "대형병원과 달리 작은 병원은 병원장이 혼자 모든 것을 다하는 경향이 많은데 회계·세무 전문 행정 인력을 확보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현재 정부 정책의 모든 기류가 능력 있는 의사나 의료기관이 약간 적폐로 몰리고 있는데 이 회계기준도 의료계를 옥죄는 용도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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