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폐암 90% 흡연 탓”vs 담배회사들 "폐암은 비특이성 질환“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은 이미 과학적으로 명백하게 밝혀진 자명한 진실이다. 인과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현재 과학적 지식체계를 부정하는 것이다."

"폐암은 비특이적 질병이므로 개별적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나, 소송을 시작한지 9개월이 지남에도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이란 특권적 지위를 남용해 소송을 단순한 금연 캠페인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KT&G, 필립모리스, BAT 등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537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세 번째 변론이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됐다.

세 시간이 넘는 기나긴 공방 끝에 결국 원고 측인 건보공단이 열세에 몰렸고, 소송당사자인 흡연자 3484명의 개인 진료내역, 생활습관, 흡연 전 질병, 가족력 등을 담배회사 측 변호인에 2개월 안으로 모두 제출키로 했다.
 

건보공단 "담배회사들도 유해성 인정...국내외 보고서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사실"

이날 건보공단 측은 '흡연-폐암의 인과성'을 증명하기 위해 미국 보건총감보고서(1964), WHO국제암연구소(IARC) 보고서(1986), 미국 암협회 2차 암예방연구(1980년대), 영국의학학회지(BMJ)의 Doll 논문(2004), 영국 의학저널(NEJM) (2013) 등 국내외 역학 연구 및 동물실험 연구자료를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또한 주요 국가 보고서 등에 따르면, 흡연집단의 폐암 사망률이 비흡연집단에 비해 적게는 10배, 많게는 20배 정도 차이가 나타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연구 대상수가 적고 추적조사 기간이 짧아 3~4배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고 부연했다.

이 같은 역학 연구자료들이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는 부분을 증명하기 위해 일본의 이따이이따이병, 니시요도가와 대기오염, 치바가와사키제철 공해소송, 요카이치 천식 손해배상 판결을 근거로 들었고, 해당 판결에서는 특정 위험인자의 위험도가 일정 수준을 초과해 질환이 발생했을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역학적 연구 결과만으로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 성상철 이사장을 비롯한 건보공단 임직원들이 담배소송을 참관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특히 공단 측 변호인은 "필립모리스 준비 서면에서 '흡연은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인과관계 인정했다"며 "세계적으로 큰 담배회사에서 이를 인정한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의를 남긴다. 국민 소비자 입장에서 이를 따져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공단 측은 "흡연은 폐암 중에서도 편평세포암, 소세포암과 관련성이 현저히 높다"며 "이미 선행 판결에서도 20년 이상의 흡연력을 가진 환자가 편평세포암과 소세포암 진단을 받은 인과관계를 인정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에볼라 감염시 사망률이 50% 정도인데, 이를 두고 '대재앙'으로 표현할 정도로 위험한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며 "흡연으로 인한 사망률도 40%에 달하는 것으로 안다. 따라서 담배 역시 건강의 대재앙"이라고 못박았다.

담배회사 측 "폐암은 비특이적 질병...개별적 인과관계 입증하라" 지적

공단의 이러한 주장에 담배회사 측 변호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반박에 나섰다. 무엇보다도 공단에서 제시하는 역학적 연구자료들은 증거에 쓰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KT&G 측 변호인(법무법인 세종)은 "폐암은 여러 요인에 의해 발현되는 비특이성 질환이다. 즉 흡연자도 걸릴 수 있지만 비흡연자도 걸릴 수 있는 질환"이라며 "흡연하지 않았으면 폐암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도 입증이 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는 원고가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이번 변론에서 공단은 원칙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특정원인으로 질병이 걸리는 것은 '의학적 진단'에 불과할 뿐, 법적 책임을 물을 땐 자연과학적 측면이 아닌 '가해자 행위 없으면 질병도 없음'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공단은 소송대리인으로 자처한만큼 3484명의 담배 노츨시기, 발병시기, 생활습관, 가족력, 노출정도 등 구체적 사항을 개별적으로 증명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에볼라와의 비교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며 "에볼라는 에볼라 숙주에 의해서만 걸리는 감염질환이고 이는 곧 사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폐암은 흡연도 원인이 되지만, 음식 조리시 연기, 스트레스, 대기오염 등 다양한 원인들이 있다"고 했다.
 

 

공단에서 '담배회사가 직접 흡연의 위해성을 인정했다'는 지적을 받은 필립모리스 측 변호인(법무법인 김앤장)은 "피고 회사에서는 이미 홈페이지, 담뱃갑 등을 통해 담배의 위해성을 충분히 알리고 있다"며 "사회전반에 이미 알려진 사실을 두고, 이를 담배회사들의 반성이나 회고로 착각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또한 KT&G 측과 마찬가지로 "담배회사들의 위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이 인정되려면 가입자들의 흡연과 이들의 폐암, 후두암 발병의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흡연력과 발병시기, 흡연 전 건강상태는 물론 3484명의 성명, 생년월일, 성별, 현재 및 과거 직업, 주소, 생활습관, 질병상태 변화, 가족력 등을 모두 증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필립모리스 측은 "원고가 소 제기의 기초가 되는 사실도 증명하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무릎쓰고 막대한 재정을 들이면서 직접 소송청구까지 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원고가 입증책임을 어긴 채 금연 홍보성 주장만 남발하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소송 자체가 기각되는 것이 맞다"고 비판했다.

이어 BAT 측 변호인(법무법인 화우)도 증거자료의 불충분에 대해 지적하면서, 동시에 피고에 낀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단지 우리나라 담배 수익금의 10% 이상이라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는 것.

BAT 측은 "3484명 중 몇명이 우리 회사의 담배를 피웠는지, 그리고 그들이 우리 회사 담배를 얼마간 피웠는지 정확히 조사해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며 "공단은 단순 추정치로 피고를 정한 것부터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공단의 빅데이터에 대해 "건강보험 관련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함에 있어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정도다, 역학 연구의 기초가 되는 집단적 통계에 불과한 것"이라며 소송 근거자료는 부족하다고 평가 절하했다.

불리해진 건보공단...4차 변론기일은 5월 중순으로 밀려

▲ 성상철 이사장.

한편 첫 소송에 임하기 전 공단 성상철 이사장은 미리 '우위'를 예견했다.

성 이사장은 변론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담배소송은 단일 보험자 체제에서 공단이 국민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기관으로써 제기한 것"이라며 "담배의 해악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성 이사장은 "이사장으로서 또 의료인 한사람으로서 담배와 폐암의 인과관계는 선진국에서도 충분히 입증된 사실이라고 본다. 게다가 담배에 관한 공단 빅데이터를 통해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며 "전문가들과 함께 공단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반드시 승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공단은 소송을 시작한지 9개월, 그리고 소송 준비 전까지 약 2년 가량의 시간을 허비했음에도 세 번째 변론기일에 가장 기초적인 '개별적 입증자료'조차 마련하지 못해 집중 포격을 당했다. 열세로 밀린 것이다.

재판부는 "원고가 일반적인 논의만 하고 있다. 원고 공단은 20갑년 이상 중에 폐암으로 판단된 급여비 전체 보상을 원하기 때문에 각 개별적 사안에 대해 심리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논의 넘어서서 원고가 보상하는 개별적 환자의 흡연-폐암 간 인과관계의 심리가 진행돼야 한다"며 "자료 제출 시간 필요하다고는 하나, 재판 효율성을 고려해서 2개월의 시간을 주겠다. 이후 약 2개월간은 담배회사측이 이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네 번째 변론기일은 수진자 자료 등 개별적 인과관계 제출 기간 고려해 오는 5월 15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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