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진료 의사 서울신내의원 이상범 원장(신경과)
진료 현장을 따라가보다

[메디칼업저버 박서영 기자] 병원 한 번 가려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계단을 오르내리고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는 일은 각오 없이 불가능한 도전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위해 어떤 의사들은 직접 환자의 집을 찾는다. 의사들이 도착한 그곳은 순식간에 가정집에서 병원이 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방문진료가 성행하고 있다. 고령화가 먼저 시작된 일본의 경우, 방문진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 비율이 20%를 훌쩍 넘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참여율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장애 환자에게 병원까지 와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의사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미비한 시스템이 의사들에게 큰 메리트가 되지 못하는 탓이다. 그렇다면 그 ‘1% 이하’ 의사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본지는 그들의 조금 특별한 의료 현장을 함께 해보기로 한다.

1) 기다리는 의사에서 찾아가는 의사로

2) 환자의 집은 가정집 아닌 병원이 된다

방문진료에 나선 서울신내의원 이상범 원장(좌측)과 김경미 간호과장(우측)이 환자의 집에 들어서고 있다.
방문진료에 나선 서울신내의원 이상범 원장(좌측)과 김경미 간호과장(우측)이 환자의 집에 들어서고 있다.

기자가 만난 ‘1% 이하’ 방문진료 의사는 서울신내의원 이상범 원장(신경과)이었다. 그는 무거운 가방을 챙기고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운영 중인 병원은 외래보다 사실상 방문진료를 위한 준비 장소였다. 뒷자리에는 김경미 간호과장이 앉았다. 

기자는 이들의 일정을 동행하기로 했다. 차가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 좁고 비탈진 길목 탓에 차체가 덜컹거렸다. 이 원장이 익숙한 듯 핸들을 움직였다.

도착한 빌라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구조였다. 이 원장과 김 간호과장은 무거운 의료 물품 가방을 양손에 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환자 분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죠?” 이 원장이 기자에게 넌지시 물었다. 과연, 맞는 말이었다. 척수마비 환자 정 씨(70)는 이 빌라의 3층에 살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 정 씨의 아내인 남 씨가 의료진을 반겼다. 우측의 환자 방에는 정 씨가 누워있었다. 그는 2주째 텔레비전 시청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서 엉덩이에 욕창이 나 앉기가 힘들어진 탓이다. 약 5년 전 교통사고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그에게 텔레비전 시청은 몇 없는 취미였다.

이 원장이 청진을 하고 있다.
이 원장이 청진을 하고 있다.

욕창으로 어려워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텔레비전 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도 감상하기 힘들어졌다. 등을 기대고 앉아 푸른 이파리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빨갛게 단풍으로 물들었다가 천천히 낙엽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정 씨에게 텔레비전 시청만큼이나 즐거운 일상이었다.

“사모님, 소독은 어제 하신 건가요?” “그럼요. 오늘도 했어요.” 이 원장의 물음에 아내 남 씨가 대답한다. 이 원장은 2021년 10월부터 정 씨의 집에 방문해 치료를 하고 있다. 원래는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다가 최근 정 씨의 욕창이 심해지면서 일주일에 한 번으로 방문 간격을 좁혔다.

욕창 부위를 소독하던 이 원장이 말한다. “아버님, 식사 잘하셔야겠어요. 살이 차오르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리거든요. 단백질 음식 많이 드셨을까요?” 그러자 정 씨가 두부와 계란, 생선을 먹었다고 대답한다. “너무 잘하시는 거예요. 그래도 어떻게든 먹는 양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이 원장은 끼니를 챙긴 환자에게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이 원장과 김 간호과장이 환자의 욕창을 치료하고 있다.
이 원장과 김 간호과장이 환자의 욕창을 치료하고 있다.

 

방문진료 의뢰, 3년 만에 10건→100건으로

이 원장이 방문진료를 하게 된 건 지난 2019년 건보공단에서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을 시작한 뒤부터다. 병원에서 고령 입원 환자들을 주로 돌보던 그는 상대적으로 한가한 평일 낮시간을 활용해 환자들의 집을 직접 찾기 시작했다.

한 달에 10건도 되지 않던 방문진료는 3년 만에 100건으로 늘었다. 요양병원 학대 이슈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서 의뢰가 갑작스레 늘어난 영향이다.

“방문진료의 수요가 늘어난 것을 피부로 느껴요. 어떻게 해야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매일 한 가구당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까지 진료에 매진한다.

두 의료진이 챙기고 다니는 가방 속 의료 물품들.
두 의료진이 챙기고 다니는 가방 속 의료 물품들.

“단백질 주사 맞으시는 게 어때요, 아버님?” 정 씨의 상태를 보던 이 원장이 조심스레 권한다. 아무래도 식사만으로는 살이 찌기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정 씨에게서 바로 싫다는 대답이 나온다. 너무 아프다는 것이다. “그래도 맞고 나면 단백질 보충은 될 텐데.” 이 원장의 말투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이 원장을 만나기 전, 정 씨는 약 3년간 여러 재활병원을 전전했다. 그 과정에서 중증 환자들을 다수 접했다. 그래서일까. 입에서 저절로 비관적인 소리가 줄줄 나온다. 이 원장은 곧장 나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낙담한 환자를 북돋아 주는 것도 주치의인 그의 몫이다.

“아버님, 식사만 잘하시면 엉덩이 살 금방 채워져요. 지금 욕창 치료 중이신 85세 할머니가 있거든요? 그분도 아버님하고 비슷했는데 3개월 만에 80% 정도 나아졌어요. 그러니까 아버님도 당연히 좋아질 거예요.”

정 씨에게 재활병원은 썩 좋지 않은 기억이다. 재활이 중점인 곳이다보니 증상이 눈에 띄게 호전되는 환자가 드물었다. 또 간병인과 함께 지내면서 스트레스도 적지 않게 받았다. 대개 외국인인 데다가 가족이 아니다 보니 심리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내 남 씨가 말했다.

“물론 좋은 간병인도 있죠. 그렇지만 안 좋은 분도 많은 건 사실이고요. 실제로 남편을 돌봐주던 간병인 한 분은 밤 9시만 되면 술을 먹고 들어오시기도 했어요. 주변에서 간병인 때문에 다쳤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간병인이 문제를 일으켜 경찰이 잡아가는 경우도 있어요. 환자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재활병원 치료 자체가 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잖아요. 진짜로 재활을 해서 걸어 다닐 수만 있다면 10년이라도 입원하죠. 근데 그럴 가능성이 없으니까 차라리 집에 와서 지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환자들 접근성 높이려면 사업 인지도 향상시켜야

2년 전인 2021년, 코로나19(COVID-19)가 한창 극성이던 시기에 정 씨는 집으로 돌아와 가정 간호사의 돌봄을 받았다. 간호사가 일을 못 하게 됐을 때 아내 남 씨가 지역 신문에서 방문진료 시범사업 안내 문구를 발견했다. 곧장 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이 원장을 만나게 됐다. 정 씨와 남 씨는 이 사업을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몰랐다면 병원에 가야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문진료 사업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저도 예전에는 동사무소에 몇 번을 찾아갔어요. 가서 뭐 좋은 거 있느냐고 물어도 대답을 듣지 못했고요. 제도가 버젓이 있어도 다들 몰라서 못 쓰는 거예요. 드물게 안다고 하더라도 참여하기까지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요.”

남 씨가 이야기하는 동안 쉬고 있던 정 씨가 마음을 굳혔다. 이 원장이 권했던 단백질 주사를 맞기로 한 것이다. 그제야 의료진의 얼굴에 안도감이 내려앉는다.

소독부터 정맥 주사까지 모두 집에서 이뤄진다.
소독부터 정맥 주사까지 모두 집에서 이뤄진다.
정 씨 방에는 링거를 걸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정 씨 방에는 링거를 걸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김 간호과장이 병원에서 챙겨온 아미노산 수액제를 꺼낸다. 침대 뒤편에 걸린 줄에 링거를 건다. 정 씨의 손등에 링거 바늘이 꽂히는 것을 아내 남 씨가 바라본다.

“입으로 많이 드실 수 있으면 좋은데 지금 그렇지 못하니까.” 이 원장의 말에 정 씨가 증상 설명을 보탠다. “먹기 싫은 건 아냐. 그런데 먹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한 느낌이야.” 링거액이 들어가는 동안 김 간호과장이 연신 정 씨의 팔을 주물러준다. 하루 종일 누운 채로 지내는 목 근육 부분도 능숙하게 마사지한다.

헤어지기 전, 의료진은 다음 주 같은 요일에 방문하기로 약속한다. 떠나려는 이들을 배웅하던 아내 남 씨가 솔직하게 고백한다. “항상 선생님들께 고맙게 생각해요. 만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을 정도예요. 선생님들만 믿고 있습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고마운 건 의료진도 마찬가지다. 이 원장이 말한다. “치료라는 게 가족들의 협조도 정말 중요한데, 너무 잘해주셔서 오히려 저희가 감사할 뿐이죠. 마음 같아서는 더 좋아지게 해드리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 아쉽고 죄송해요. 같은 지역사회 주민으로서 부족하지만 계속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낮은 의사 참여율, 저수가  비롯해 ‘이것’ 때문

방문진료에 나선 의사는 외래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환자는 시간·공간적 한계에서 벗어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앞으로 고령화가 가속화되면 정 씨처럼 병원을 찾기 어려운 환자가 늘어날 것이다. 방문진료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의원들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지난 2022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지적된 내용에 따르면 방문진료 수가를 청구한 의원은 전체의 0.4%에 불과하다. 원인이 뭘까. 당연히 저수가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 기자에게 이 원장이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우리나라 의료 교육 시스템이 방문진료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직은 인식이 그래요. 의사들이 수련 과정에서부터 찾아오는 환자만 진료했지, 직접 환자에게 찾아간 적은 없으니까요. 익숙하지 않은 거죠. 게다가 참여 의사들이 지역사회 인력들과 꾸준히 관계를 이어 나가야 하고요. 수가도 중요하지만 의사들의 적극적 노력과 인식 개선이 시급합니다.”

“또 시범사업 시스템이 행정적으로 미비하기도 해요. 제가 아는 의사분들은 밤 열 시 이후에 방문진료를 하기도 하시거든요. 사명감으로 열심히 하신 건데, 사실 많은 의사에게 보편적으로 자리 잡기는 어려운 진료 시스템이죠. 의사들이 외래 말고 방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보상 정책이 구축돼야 해요.”

그래도 다행인 건 방문진료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참여 의원 숫자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건정심은 시범사업을 3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또 올해부터는 가산 수가가 적용된다.

“서울처럼 밀집된 주택가가 아니면 방문진료가 어렵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지만,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이 방문진료를 필요로 하는 만큼 의사들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적극적으로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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