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선배’ 일본, 재택 의료 활성화…한 해 954만 건 진료
국내 재택 의료는 ‘걸음마’ 단계…수가·제도 미비 한계
방문 의사 “환자 만족도 높아, 시스템 개선 시 의사 참여율 높아질 것”

사진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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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박서영 기자] 고령화 문제가 대두되면서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때 재택 의료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 2일 대한재택의료학회가 출범했다.

고려의대 신경과 교수인 박건우 이사장은 학회 출범의 이유로 “현장에서 치매나 파킨슨 질환 등 이동이 어려운 환자들을 진료해오며 재택 의료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보다 고령화가 한 발 더 빨랐던 일본에서는 1994년 왕진 진료 수가를 만든 뒤 재택의료 활성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후생노동성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에서의 방문 진료 건수는 2006년 237만 7000여 건에서 2019년 954만 3000여 건으로 증가했다. 이용자의 대다수는 75세 이상의 노년층이다.

재택 의료를 하는 진료소는 2017년 기준 2만 167개소로, 전체 의료기관 중 21.8%를 차지한다.

특히 일본은 평균 입원 기간을 줄이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병원이 아닌 본인의 익숙한 집에서 여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국민의 60% 이상이 자택 요양을 원한다는 조사 결과가 그 근거다.

이렇듯 당장 옆 나라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재택 의료 도입을 서두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건복지부 재택 의료 시범 사업, 참여율 0.4% 불과
홍보 시급한데 왕진·방문진료 키워드는 의료광고 심의 미통과

우리나라도 재택 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제도적 미비로 의료진에게 외면받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6년 가정형 호스피스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18년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2019년 중증의료 재택의료 시범사업 및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참여율은 전체 의료기관 가운데 0.4%에 불과하다.

의사들은 낮은 수가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현재 수가는 방문당 12만원으로, 재택 의료 특성상 의사들은 환자의 집에 최소 삼십 분에서 한 시간가량 머물기 때문에 사실상 시급이 12만원인 셈이다. 외래 진료 수익과 비교해봤을 때 메리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가 중증 상황일 때 급하게 찾아가는 왕진 수가도 두 배 이상 책정돼야 한다. 재택 의료를 이용하는 환자들은 응급실 이용을 꺼려 집안 내 의료 장비를 마련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다.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찾아가는 방문 진료와 달리 응급 왕진은 의사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실생활적인 문제도 있다. 주거 형태에 따라 다르게 조성돼있는 주차장이 그 예다. 주차장이 잘 마련돼있지 않은 주택가에서 방문 의사는 ‘1차 위기’를 맞는다. 의사들은 방문 진료 차량을 공적 차량으로 인정해 장애인 주차구역에 세울 수 있도록 배려해줄 것을 요청한다.

가장 큰 문제는 홍보가 어렵다는 점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왕진’, ‘방문진료’ 등의 키워드로 의료 광고를 신청할 경우 심의에 통과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 성형외과, 피부과 등을 검색했을 때 수많은 의료기관이 나오는 것과 대조된다.

이외에 EMR과 OCS 등 방문 진료 시스템의 구축 필요성도 제기된다. 해당 시스템이 없어 의원에서 직접 만들어 쓰는 상황이다보니 활용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환자 만족도 높아…수가 개선 통해 의사 관심도 끌어내야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소수의 방문 의사들이 활동하는 이유는 재택 의료여야만 하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의원 김주형 원장은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직접 병원을 찾아 연락을 주더라. 얼마나 필요해서 그랬겠느냐”고 말했다.

김 원장은 간호부장 한 명과 함께 성남시 곳곳을 다니며 환자들을 치료한다. 초음파 검사와 혈액 검사, 수액 치료, 처방전 발행 등을 전부 집에서 한다.

김주형 원장의 진료 가방 물품들 (사진출처: 김주형 원장)
김주형 원장의 진료 가방 물품들 (사진출처: 김주형 원장)

아주대학교 요양병원 진료부원장과 한빛현요양병원 원장을 역임했던 김 원장은 고령 환자들이 병원이 아닌 집에 있고 싶어하는 경우들을 숱하게 봐왔다.

특히 응급실에서 3~4시간 대기하는 경험을 여러 번 겪었던 중증환자들은 병원보다 재택 의료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진료가 이뤄지다 보니 환자들이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당연히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나가기 전 의료진에게 오렌지 하나라도 쥐어주려고 한다”고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수가 개선과 제도 보완이 이뤄진다면 의사들의 참여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원장은 “의사 일을 30년간 해왔는데 지금처럼 보람 있게 환자를 본 적은 없었다. 시스템만 잘 갖춘다면 방문 진료가 우리나라의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며 “의사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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