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포함 다국적 간학회, NAFLD→MASLD 변경 발표
델파이 기법 활용해 낙인 없는 진단 중심 명칭 선정
글로벌 통용엔 시간 걸릴 전망…국내 학계도 논의 필요

미국간학회(AASLD) 홈페이지 캡처.
미국간학회(AASLD) 홈페이지 캡처.

[메디칼업저버 배다현 기자] 미국, 유럽 등 다국적 간학회가 비알코올성지방간질환(NAFLD)을 비롯한 관련 명칭 및 정의를 변경하기로 했다. 기존 명칭이 병인의 명확한 파악을 방해하고 환자에게 낙인을 찍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6월 개최된 유럽간학회 연례학술대회(EASL 2023)에서 다국적 간학회는 '지방성 간질환(steatotic liver disease, SLD)'을 지방간(fatty liver)의 다양한 병인을 포함하는 명칭으로 선정했다.

이와 함께 NAFLD를 대사이상관련지방성간질환(metabolic dysfunction-associated steatotic liver disease, MASLD)으로 새롭게 명명했다. MASLD는 간 지방증이 있고 5가지 심장 대사 위험인자 중 최소 하나를 가진 환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순수한 MASLD를 제외하고 보다 많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환자를 설명하기 위해 MetALD라는 범주가 새롭게 설정됐다. MetALD는 주당 알코올 섭취량이 여성 140g 이상, 남성 210g 이상으로 정의했다.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은 대사이상관련간염(Metabolic dysfunction-associated steatohepatitis, MASH)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낙인 없는, 진단 중심 명칭으로 변경

미국간학회(AASLD) 홈페이지에 올라온 지방성 간질환(SLD)의 분류
미국간학회(AASLD) 홈페이지에 올라온 지방성 간질환(SLD)의 분류

학회는 MASLD가 전 세계 인구의 약 30%에 영향을 미치는 흔한 질환인 만큼 긍정적이고 낙인을 찍지 않는, 진단 중심의 명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연구에 따르면 MASLD에 속하는 대부분 질병은 비만, 내장비만, 인슐린 저항성, 이상지질혈증 등 대사 요인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NAFLD라는 용어는 비알코올성이라는 특징을 지나치게 강조해 질병의 대사적 요인은 간과하게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용어가 정확한 병인 파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비알코올성을 정의하는데 상대적으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더 많은 알코올을 섭취하고 2형 당뇨병과 같은 위험 요소를 가진 환자는 범주에 들어가지 못해 임상과 치료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더불어 비만함을 뜻하는 지방(fatty)이라는 단어가 경멸적인 의미로 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2020년에도 유럽, 미국, 아시아태평양 등 간 전문가들이 알코올 섭취량과 패턴에 관계 없이 지방간 환자를 MAFLD(metabolic dysfunction associated fatty liver disease)로 명명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병인의 혼합, 지방이라는 용어의 지속적 사용, 자유로운 알코올 섭취 허용 등과 관련해 우려가 제기됐다. 진단 기준의 변화가 바이오마커 및 치료법 개발에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어 찬반이 갈렸다. 

델파이 기법 활용해 합의 도출

이번 명칭 변경을 주도한 다국적 간학회는 미국간학회(AASLD), 유럽간학회(EASL), 라틴아메리카간학회(ALEH)의 리더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2020년부터 NAFLD 명명법 개발 이니셔티브를 구축하고 여러 국제 학회와 환자 단체, 규제 전문가, 업계 대표와 함께 더 나은 용어를 찾기 위해 논의했다. 

다국적 간학회는 새로운 용어 개발 연구에 델파이 기법을 활용했다. 델파이 기법은 집단의 의견을 조정, 통합, 개선하기 위한 분석 기법으로 전문가 패널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다단계 설문조사를 진행해 의견을 종합하는 방식이다. 

학회는 총 56개국 23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4회, 하이브리드 회의 2회를 진행했다. 

설문을 통해 △현재 명명법의 문제는 무엇이며 해결할 수 있는지 △질병 정의 및 목표점에서 지방간염의 중요성은 무엇인지 △알코올의 역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용어 변경이 질병 인식, 임상 시험 및 규제 승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대체 용어가 이질성을 줄이고 향후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물었다.

설문 결과, 74%는 기존 명명법이 용어 변경을 고려할 만큼 충분한 결함이 있다고 답했다. 무알코올과 지방이라는 용어가 낙인을 찍는다고 느낀 응답자는 각각 61%, 66%였다. 

이후 2022년 7월 미국 시카고에서 1.5일간의 하이브리드 회의가, 11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2개의 포럼이 개최됐다. 회의 결과를 반영한 최종 설문 및 분석을 통해 SLD, MASLD, MetALD 용어와 정의가 결정됐다.

연구를 주도한 미국 시카고의대 Mary E Rinella 박사는 "새로운 명명법 및 진단 기준은 환자들을 광범위하게 지원하고 낙인을 찍지 않으며, 환자 식별 및 인식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통용엔 시간 걸릴 전망

하지만 변경된 명칭이 글로벌 학계에서 통용, 정착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새 명칭과 관련해 아직 전체 학계 의견이 합의에 이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속한 아시아·태평양 간학회는 MASLD보다 앞서 제시된 MAFLD로의 변경을 염두에 두고 있다. 대한간학회는 아직 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적은 없으나 미국·유럽 쪽보다는 아시아·태평양 학회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분위기다.

대한간학회 김승업 간행이사(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국내 학회는 아시아·태평양 간학회에 더 가깝기 때문에 미국·유럽 학회의 MASLD라는 개념은 인정하지 않은 상태"라며 "발표 후 10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고, MASLD 명칭에 대해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의견도 있어 추가 연구 및 논의가 필요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MASLD는 비만에 대한 낙인을 지우기 위해 fatty라는 표현을 steatotic으로 변경했으나, 우리말로 번역할 경우 결국 '지방성'이라는 단어로 표현돼 의도를 살리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김 간행이사는 "MASLD를 번역하면 결국 대사이상관련지방간질환이 돼 단어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며 "국내도 미국·유럽 학회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조만간 학회에서 용어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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