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료기술평가 중복 규제로 인한 신의료기술 시장 진입 차단
체계적 문헌고찰,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 요구
신의료기술평가 통과는 ‘우연’이 결정한다?

[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국민건강 보호와 의료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2007년 도입된 신의료기술평가제도는 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객관적인 근거와 전문가 토론을 통해 평가는 제도다.

신의료기술평가는 한국을 비롯한 미국, 영국, 호주, 대만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한국을 제외한 제도 시행 국가들은 신의료기술평가제도를 건강보험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잣대로만 활용할 뿐, 한국처럼 판매 허가를 규제하지 않고 있지 않다.

의료현장에서는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최선의 환자 치료를 막고, 신의료기술 촉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메디칼업저버는 제도 도입 17년이 되어가는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실효성 있는 국민건강과 의료기술 촉진 역할을 할 수 있는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上)신의료기술평가, 중복 규제로 신의료기술 시장 진입 저해
(中)사법부 판단 불구, 심평원·NECA 제도 오해로 국민만 피해
(下)허가 신의료기기 선 시장진입 후 신의료기술평가로 제도 변화돼야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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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을 보호하고, 의료기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신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 등을 평가하는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를 마련했다.

의료법 제53조 및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제2조에 따르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하는 의료기술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평가되지 않은 의료기술로서 복지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의료기술이며, 이런 의료기술 중 복지부 장관이 잠재성의 평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의료기술이다.

또, 신의료기술로 평가받은 의료기술의 사용목적, 사용대상 및 시술방법 등을 변경한 경우로서 복지부 장관이 평가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의료기술이 해당된다. 대부분 새로운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기술이 신의료기술로 인정, 평가돼 신의료기술에는 새로운 의료기기가 전제되고 있다.

신의료기술이 새로운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의료기술을 평가하는 것이라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새로운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심사해 허가한 것과 별개로 신의료기술평가를 또 해야는 상황이다.

신의료기술평가는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 뿐 아니라 의료기기와 이를 활용한 수술·시술 행위까지 같이 검토하고, 신청인의 제출자료가 아닌 체계적 문헌고찰을 통해 전 세계에 출판된 모든 임상논문을 의료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검토한다는 점이 식약처 허가 절차와 다르다.

그러나 식약처의 허가 역시 의료기기에 대한 허가도 제품 그 자체만을 놓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의료기기의 사용목적, 사용방법, 사용상 주의사항 등을 심사해 해당 기기를 사용할 수술이나 시술행위가 심사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즉 식약처 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의 유일한 차이는 신청인이 제출한 자료를 기반으로 검토하는지, 전 세계 임상논문을 대상으로 체계적 문헌고찰을 하는지 여부만 다를 뿐이다.
 

식약처 허가와 NECA 신의료기술평가 중복 규제

의료기술 빠른 시장진입 저해 지적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의료현장 및 의료기기업계는 식약처의 새로운 의료기기 허가는 국가가 그 기기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증한 것으로, 바로 의료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새로운 의료기술이 요양급여대상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결정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임의비급여로 사용할 경우 부당청구로 인해 그 비용을 환수될 수 있다.

신의료기술에 대해 요양급여대상 여부 결정신청을 하려면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10조에 따라 신의료기술평가를 받거나, 평가유예를 받거나, 혁신의료기술로 인정받아야 한다.

평가유예나 혁신의료기술은 그 요건이 까다롭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결국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새로운 의료기기는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만 의료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

정부가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증한 의료기기에 대해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한 기술’이라는 중복적 영역의 안전성 및 유효성을 의료인들이 한번 더 검토하는 것이 신의료기술평가로 중복 규제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특히 신의료기술평가가 제도상으로 최대 250일이 소요되고, 실제로도 평균 소요기간이 226일 정도 소요되고 있으며, 임상문헌 상 근거가 부족해 연구단계 기술로 평가되는 경우 아예 시장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의료현장은 신의료기술평가를 두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NACA)과 일부 의료인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을 제외한 신의료기술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주요국들은 제품이 시장에 진입하기 전 신의료기술을 받을 것인지 여부가 선택사항”이라며 “한국만 시장진입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신의료기술평가에 활용되고 있는 체계적 문헌고찰 검토방식은 불가능한 조건이라는 지적이다.

신의료기술평가를 주관하는 NECA는 체계적 문헌고찰 방법으로 신청기술을 평가하고 있다. NECA는 이런 체계적 문헌고찰의 대상이 되는 임상문헌을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으로 수행된 논문일 것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평가 대상 기술이나 제품에 대한 임상논문이 있어도 RCT 논문이 없는 경우는 임상논문의 근거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기기는 의약품과 다르게 대조군이 되는 위약과 같은 가짜의료기기를 통한 비교임상이 거의 불가능하다.

위약은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의 건강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가짜의료기기를 사용할 경우 환자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에게 연구실적 제출 요구하는 모양새

신의료기술에 사용되는 의료기기는 새로운 기기로, 충분한 임상 근거를 축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의료기술에 대해 RCT 논문을 비롯한 충분한 임상적 근거를 요구하는 것은 막 입학한 아이에게 그동안의 연구실적을 가지고 오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하소연이다.

특히, 임상논문 작성을 위한 임상시험 수행을 위해서는 임상시험계획서 작성, IRB 승인, 식약처장의 승인 등 절차를 거쳐야 하고, 피험자 모집, 임상시험 수행, 임상결과 정리 및 통계 처리 등 수년에 걸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임상시험 진행 후에도 실제 임상논문을 작성하고 Peer Review를 거쳐 최종 논문으로 나오기까지는 수년이 더 걸린다.

신의기술평가를 신청한 A 업체 관계자는 “임상논문 1편으로는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한다”며 “RCT 논문을 포함한 다수의 임상논문을 확보해야 하지만, 소규모 국내 업체들은 동시에 여러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NECA가 원하는 수준의 임상문헌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결국, 대규모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재원이 많은 다국적 기업이나 대기업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NECA의 2007~2016년 신의료기술평가 통계에 따르면, 비용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대규모 임상연구를 진행하기 어려운 국내 의료기기 제조업체는 다국적 의료기기 수입업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약 23% 의료기술만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해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신의료기술평가와 관련해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출시한 기업은 데이터 축적 부족으로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는 반면, 우연히 기존 기업들의 아이디어를 복제한 기업들은 선행기업들이 창출한 데이터를 활용해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즉 우연이라는 변수가 신의료기술의 의료현장 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신의료기술을 개발하는 혁신적 기업들은 혁신 의지를 잃게돼 국가 경쟁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 위원 전문성 의문 제기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서울지역 상급종합병원 A 교수는 신의료기술평가제도 자체가 중복규제로서 작용하고 있다며, 세상에 새롭게 나온 신의료인데 어떻게 다수의 임상논문이 존재할 수 있는지 발상이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A 교수는 “신의료기술이 활용하는 의료기기는 식약처 허가를 받아 안전성이 인정되면 의료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신의료기술평가는 유효성 여부를 판단해 급여냐, 비급여냐를 결정하는 근거로 활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현재 신의료기술은 안전성과 유효성 모두를 판단해 허가와 비허가 문제가 됐다”며 “과거 정말 유효성 없는 신의료기술이 비급여로 마구 처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신의료기술평가가 현재는 오히려 신의료기술 의료현장 진입을 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A 교수는 신의료기술평가를 심의하는 위원회의 전문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신의료기술 중 특정 진료과와 관련 있는 기술은 관련 전문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소위원회에서 근거 논문 분석과 회의를 거쳐 전체 위원회에 상정한다”며 “전체 위원회는 해당 기술 전문 분야가 아닌 타 분야 위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 이런저런 이유와 논리를 들어 신의료기술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관련 전문가들이 소위원회에서 숙의를 거쳐 상정한 신의료기술이 비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탈락하는 경우도 있어 위원회의 구조 개선 필요성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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