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비급여 보고 합헌 판결…법률유보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판단
의료계 반발…“환자 민감한 개인정보 노출 및 의료기관 행정부담 가중”
의료 산업 축소 우려도 나와…저가 서비스 부추기는 ‘덤핑’ 현상 나타날 수도

[메디칼업저버 박서영 기자] 최근 비급여 진료비용 보고 의무가 헌재에서 합헌 판결을 받은 가운데, 의료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비급여는 의료 산업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나 감시가 이뤄지면 오히려 발전이 더뎌진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비급여 진료를 바라보는 의정 간 시선이 크게 엇갈려 향후 협의가 어떻게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23일 헌재는 서울시의사회와 서울시한의사회, 서울시치과의사회 등 3개 단체가 제기한 의료법 제45조의2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비급여 항목과 기준, 금액, 진료내역 등 보고의무에 관한 본질적인 사항을 법률에서 직접 정하고 있어 법률유보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외에도 환자의 동의 없이 진료내역에 환자 신상정보가 포함되지 않음이 유추 가능해 포괄위임금지원칙에 반하지 않으며, 진료 전문분야에 따라 비급여 항목의 수가 한정된 만큼 의사의 진료활동에 큰 부담을 주지 않아 과잉금지원칙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근거를 덧붙였다.

이에 의료계는 깊은 유감을 드러냈다. 비급여 영역을 사실상 국가의 감시와 통제 하에 둬 의료수준이 저하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사회는 “비급여 공개제도는 저수가를 비급여로 겨우 보완하는 필수의료 분야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라며 “향후 국민건강보험 강제 지정제에 대한 위헌소송의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것”라고 전했다.

 

복지부, 비급여 항목·기준·금액·진료내역 등 제출 요구
의료계, 즉각 반발…시민단체는 환영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의료법 제45조의2는 지난 2020년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라 개정된 것으로, 모든 의료기관이 비급여 항목과 기준, 금액, 진료내역 등을 의무적으로 보건복지부에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회, 대한치과의사회 등 범의료계 4개 단체는 2021년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비급여 진료비용 신고 의무화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비급여 보고 제도로 인해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으며, 의료기관의 행정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2022년에는 서울시의사회와 서울시한의사회, 서울시치과의사회가 헌재에 공동위헌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해당 조항은 양질의 진료보다 가격 우선의 진료를 중시해 의료인들을 내몰고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결국 국민에 대한 의료혜택의 질을 낮추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초 2021년 7월 시행 예정이던 법안이 의료계의 강한 반발로 인해 1년 6개월간 도입이 지체되자 시민단체에서는 즉각 이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1월 “비급여는 가격과 횟수의 통제가 없는 진료로, 환자는 의료인의 지시나 권유로 비급여 진료를 받게 되지만 근거를 알 수 없는 비용을 선택의 여지도 없이 지불하게 된다”라며 해당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모든 비급여 항목 보고 △의료기관이 1년 전체 자료를 제출하도록 대상 기간 확대 △의원과 병원 구분 없이 연 2회 자료 제출 △자료 미보고 의료기관 명단 공개 의무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전했다.

 

의협 “경제 활력 위해 적절한 자율성 중요…

비급여 영역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 바뀌어야”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보고 및 공개에 관한 기준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예고안에 따르면 2023년부터 전 의료기관이 611개 비급여 항목과 61개 신의료기술 등 총 672개 비급여 항목을 보건복지부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2024년에는 보고 항목이 1212개로 확대되는데, 이는 전체 비급여 규모의 약 90%로 추정된다.

해당 내용은 헌재에서 합헌 판결을 받은만큼 신속히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의협 김이연 홍보이사는 “저가의 서비스를 실시하는 ‘덤핑’ 현상을 부추길 수 있어서 매우 우려스럽게 보고 있다”며 “이미 치과계에서는 덤핑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고 말했다.

의협은 향후 복지부와의 협의에서 의무 보고 대상 범위에 대해 강력하게 주장할 예정이다.

다만 이미 헌재에서 합헌 판결을 내린데다 의협과 복지부 간의 입장 차이가 커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 홍보이사는 “사실상 비급여 영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라며 “(의료 산업계) 경제 활력을 위해서는 적절한 자율성을 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 부분을 (복지부에서) 간과하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라고 말했다.

한편 경실련은 이번 헌재 판결에 환영한다면서, 비급여 관리로 국민의 알 권리와 의료 선택권 보장을 기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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