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제네릭 의약품 신뢰도 한순간에 무너져…국제적 망신
'특별법' 논의돼도 할 말 없어…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 '끔찍'

이미지출처: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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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바이넥스가 저지른 일탈에 제약업계가 사실상 '카오스(chaos)' 상태다.

정부의 정확한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이지만 이미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만으로도 업계 신뢰도에 치명적인 상처와 씻기 힘든 오점을 남겼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심지어 바이넥스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전문 기업인만큼 더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정부와 국회의 칼날이 여느 때보다 날카로울 것이란 추측도 있다.
 

바이넥스 관련 품목, 무더기 잠정 제조·판매중지 및 회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8일 허가 사항과 다르게 의약품이 제조된 바이넥스의 6품목을 잠정 제조·판매중지 및 회수조치 했다.

의약품의 허가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주성분 용량 등을 임의로 변경한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조사에 착수한 6품목은 바이넥스 부산공장에서 제조하는 제품들로 △아모린정(성분명 글리메피리드) △셀렉틴캡슐(플루옥세틴염산염) △닥스펜정(덱시부프로펜) △로프신정 250mg(시프로플록사신염산염수화물) △셀렉틴캡슐 10mg(플루옥세틴염산염) △카딜정 1mg(독사조신메실산염)이 해당한다.

바이넥스 홈페이지
바이넥스 홈페이지

이날 식약처는 의·약사 등 전문가에게 해당 제품을 다른 대체 의약품으로 전환하고, 제품 회수가 적절히 수행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는 안전성 속보를 즉시 배포했다.

이 같은 긴급 조치 다음날인 9일, 식약처는 바이넥스 부산제조소가 수탁 제조하고 있는 24개사 32품목에 대해서도 잠정 제조·판매중지 및 회수조치를 내린다고 밝혔다.

현장 조사 진행 중에 6품목과 동일한 방법으로 제조하는 다른 업체의 32품목이 확인됐다는 이유에서다.

24개 업체에는 경보제약, 일동제약, JW신약, 동국제약, 조아제약, 하나제약, 유니메드제약, 미래제약, 알보젠, 영풍제약 등이 포함됐다.
 

6품목 원외 처방액 규모 약 33억원
당뇨병·우울증·관절염 치료제 등 다양

식약처로부터 처분을 받은 품목은 각각 당뇨병(아모린), 우울증·강박반응성질환(셀렉틴), 류마티스관절염(닥스펜), 고혈압·양성전립선비대에 의한 배뇨장애(카딜) 치료 등에 쓰인다.

이들의 2020년 원외 처방액 규모는 유비스트 기준 33억원가량으로, 6품목을 합산해도 4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셀렉틴이 11억 6100만원으로 가장 많이 처방됐고 그 뒤를 카딜 6억 2100만원, 닥스펜 5억 9000만원, 아모린 5억 5900만원, 로프신 3억 9100만원이 잇고 있다.

바이넥스 사태와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잠정 제조·판매중지 및 회수조치를 내린 주요 의약품들. 유비스트 처방액 규모 기준이며 단위는 백만원이다.
바이넥스 사태와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잠정 제조·판매중지 및 회수조치를 내린 주요 의약품들. 유비스트 처방액 규모 기준이며 단위는 백만원이다.

6품목과 같은 방법에 의해 제조됐다는 이유로 함께 처분 받은 다른 제약사 제품의 처방액은 이보다 더 소규모다.

유니메드제약의 유니작, 우리들제약의 웰피트, 하나제약 씨프론, 일동제약의 디캐롤 등이 그나마 3억원 이상 처방됐고 나머지 품목은 1억원을 넘기도 힘들었다. 

즉 제조와 판매가 중지되고 회수 조치돼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의 처방 규모는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것.

식약처 관계자도 "이번 조치 대상 품목들은 생산실적 비중이 높지 않아 국내 수급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병·의원 등에서 해당 제품이 처방되지 않도록 협조를 요청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처방 규모를 떠나 해당 품목들이 당뇨병, 고혈압, 우울증, 관절염 치료 등에 쓰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약업계 A 관계자는 "당뇨병과 고혈압 약은 평생 복용해야 하는데 그동안 환자들은 효과가 없는 약을 처방 받아왔던 것과 마찬가지"라며 "생산량, 매출액, 처방액 등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네릭 인식 개선 그간의 노력 물거품 우려 
제약사와 의·약사 및 국민 간 신뢰 ‘와르르’

이번 사태로 생긴 업계의 두려움은 그동안 국산 제네릭 의약품의 인식 개선과 품질 제고,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노력한 일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기인한다.

더욱이 정부와 관련 협회 등이 적극 나서 철저한 품질 관리를 기반으로 국산 제네릭의 글로벌 진출 확대를 도모하는 ‘K-제네릭 띄우기’를 위한 법규 개정과 교육 등을 추진하던 상황에서 이번 바이넥스 사태는 악재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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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B 관계자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조금씩 올라가던 국산 제네릭에 대한 신뢰도 계단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제약사 한두 곳이 처벌을 받고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있는 사례가 아니다”라고 탄식했다.

이어 “말도 안 되는 부끄러운 일이 발생해 제네릭 관련 정책을 펼치던 정부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라며 “업계 전반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큰 사건이 터졌고 국민, 의사, 약사들의 국산 제네릭에 대한 신뢰 근간이 흔들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대한약사회는 9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바이넥스뿐만 아니라 의약품 제조를 위탁하고 있는 다수의 제약사를 동시에 비판했다.

약사회는 “의약품 수탁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CMO 기업에서 제조공정 및 품질 관리는 경영의 핵심이자 의약품 생산 기업이 가져야할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라며 “의약품 제조를 위탁하는 제약사 다수가 전혀 몰랐다고 하는데 이는 결코 바이넥스 한 회사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선 제약사들도 업계 전반으로 불길이 번질 수 있는 분위기를 가장 경계하는 눈치다.

국내제약사 C 관계자는 “인보사와 메디톡스 때보다 더욱 충격적이고 강력한 위기가 온 것 같다”며 “식약처 조사 후 바이넥스의 불법 제조가 명확히 확인되면 불법이 시작된 시점, 의도, 방법 등이 낱낱이 공개 될 텐데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애당초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식약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또 다른 제약사 D 관계자는 “식약처의 관리 시스템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꼴이지만 바이넥스가 자진 신고한 품목에서 그치지 않고 조사가 확대된다면, 식약처의 칼날은 제약사에게만 집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넥스 특별법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듯
코로나19 백신 생산 관련 국제 신뢰도 하락

결국, 진짜 후폭풍은 바이넥스를 대상으로 한 식약처의 조사가 일단락 된 후부터라는 게 중론이다.

그때는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B 관계자는 "소위 '바이넥스 특별법'이 발의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같은 업계지만 할 말이 없다"며 "재발을 막기 위한 각종 규제의 타당성 검토와 더불어 환자들의 소송까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예상했다.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의약품 공급체계 불안이 심화된 가운데 K-방역을 넘어 K-제네릭으로 점차 넘어오던 국제적 관심에 찬물을 끼얹은 일이 됐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바이넥스는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컨소시엄에 참여 중이었는데 글로벌 신뢰도에 심각한 흠집이 생겼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업계 A 관계자는 "사실상 CMO로 먹고 사는 바이넥스에게 이번 사태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타격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허가되지 않은 의약품 제조방법이 별도로 있었던 것인데 회계학적으로 보면 이중장부를 의미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코로나19의 백신을 위탁생산하기로 한 국내 업체가 불법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면 국제 신뢰도의 하락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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