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기존 약 대신 처방할 가능성 낮아…환자의 사용성 문제도 제기

아킬리 인터렉티브가 개발한 ADHD 환아를 위한 컴퓨터 게임 디지털치료제. 아킬리 인터렉티브는 ADHD 디지털치료제 개발을 위한 'Project EVO'를 진행했고 '엔데버Rx(EndeavorRx)'라는 이름으로 지난 6월 FDA 승인을 받았다.
▲아킬리 인터렉티브가 개발한 ADHD 환아를 위한 컴퓨터 게임 디지털치료제. 아킬리 인터렉티브는 ADHD 디지털치료제 개발을 위한 'Project EVO'를 진행했고 '엔데버Rx(EndeavorRx)'라는 이름으로 지난 6월 FDA 승인을 받았다.

최근 의료계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변화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건강관리, 질병 진단, 치료 등을 제공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의 한 분야인  '디지털치료제'는 의료계가 주목하는 이슈 중 하나다. 소프트웨어 또는 디지털기기를 활용해 질환을 관리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가 모이면서 디지털치료제가 또 하나의 치료옵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알약이나 캡슐 등 저분자 화합물인 1세대 치료제, 항체 또는 단백질 등 생물학적 제제인 2세대 치료제에 이어 3세대 치료제인 디지털치료제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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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치료제가 인허가를 받아 진료 현장에 도입되면 다음으로 의사의 처방이 이뤄지고 환자가 이를 사용해야 비로소 질환의 치료옵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도 디지털치료제는 쉽지 않다. 현재로서 의사가 기존 약 대신 디지털치료제를 처방할 가능성이 낮고 환자도 처방받은 디지털치료제를 활용할지 불분명하다. 

"의사는 디지털치료제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보수적인 의료계가 디지털치료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의료계는 환자 안전을 위해 신기술인 디지털치료제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치료 효과보다는 치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다. 

서울성모병원 김헌성 교수(내분비내과, 빅데이터 임상활용연구회 회장)는 "의사는 특정 질환의 환자에게 약을 처방할 때 치료 효과보다 이 약을 투약하면 안 되는 상황을 먼저 생각한다"며 "굉장히 보수적으로 치료에 접근하다 보니 디지털치료제를 처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약은 장기간 임상시험과 시판후조사(PMS) 등을 거치기 때문에 처방할 때 약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고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법도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디지털치료제는 아직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여의도성모병원 나해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개발사는 디지털치료제가 가장 최첨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한다"며 "하지만 의료진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치료를 생각했을 때 치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밝혔다. 

환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지도 미지수

의사가 디지털치료제를 처방하면 환자가 이를 받아들일지도 문제다. 약이 아닌 앱 또는 게임을 처방할 경우 환자가 이를 이해하고 병원 밖에서도 활용할지 확실하지 않다.

환자 입장에서는 약물이나 주사제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같은 약보다는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클 수도 있다. 

비만한 환자가 내원한 경우를 가정해보면, 이들은 식이조절, 운동 등 생활습관 교정에도 불구하고 체중감량에 실패한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약 또는 수술이 아닌 식이/운동 조절을 돕는 디지털치료제를 처방한다면 환자들이 만족할지 의문이다. 

즉, 디지털치료제가 임상시험으로 치료 효과를 입증했을지라도 이후 의사 처방과 환자 사용은 다른 범주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김 교수는 "질환에 따라, 치료할 수 있는 수준에 따라 디지털치료제가 분명 도움을 줄 수 있다. 약물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환자에게 디지털치료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의사가 처방을 결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환자의 거부감이 아닌 건강상태다. 궁극적으로 약물 처방 시기가 늦어지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디지털치료제를 처방받은 환자가 꾸준히 활용할지에 대한 순응도 문제도 있다. 이 때문에 디지털치료제가 전통적인 약물을 대체하기보다는 기존 치료제와 병행하면서 치료 효과를 향상시키는 보완제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인다. 

부작용 없을까?…의료계 vs 산업계 이견

그렇다면 환자가 디지털치료제를 사용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없을까? 산업계에서는 전통적인 약물과 달리 디지털치료제의 부작용이 크지 않다고 분석한다.

송승재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회장(라이프시맨틱스 대표이사)은 "디지털치료제의 부작용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며 "실제 개발단계에서 확인되지 않은 문제가 시장에 도입됐을 때 의도치 않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치료제는 이러한 문제가 생기면 즉시 개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디지털치료제의 개발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부작용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전통적인 약물보다 디지털치료제의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디지털치료제의 부작용이 적을 수 있겠지만, 이는 디지털치료제를 자주 사용하는 게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현재는 디지털치료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만 연구하기도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치료 효과뿐 아니라 한계점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다른 문제 '의료윤리'

이와 함께 의료계에서는 디지털치료제가 임상에 보편적으로 사용될 경우 발생하게 될 의료윤리 문제에 대한 고민도 크다.

예로 ADHD 환아가 치료 효과를 입증한 게임 기반의 디지털치료제를 사용한다면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과연 의료계가 지향하는 치료 방향인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나 교수는 "요양원에서 치매 환자들을 모아 두고 인지기능 개선 효과를 입증한 디지털치료제를 사용하도록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디지털치료제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면 인간의 존엄성 자체가 훼손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지금부터 디지털치료제를 어떻게 활용해야 최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게 나 교수의 전언이다.

나 교수는 "디지털치료제의 장점만 생각하고 의료윤리 부분을 간과하면 어느 순간 이를 통제하기 어려워진다"며 "한번 비인간적인 패러다임이 생기면 당연하게 느껴지면 이를 깨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어떻게 활용할 때 최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찬반 가리기보다 장단점 이해하는 자세 필요"

이처럼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조만간 의료분야에서 디지털치료제가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디지털치료제가 질환 관리 및 치료에 유용하다는 과학적 근거를 확보한다면 미충족 의료분야를 개선하는 데 사용 가능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이유다. 이러한 흐름에서 의료계와 산업계는 디지털치료제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함께 논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교수는 "디지털치료제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며 이 시류를 막을 수 없다. 이러한 흐름에서 의료진은 디지털치료제를 무조건 찬성 또는 반대하기보다는 장단점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며 "의학적 가치를 기반으로 디지털치료제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적합한지 생각해야 디지털치료제에 의한 의료행위가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되고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나 교수는 "디지털치료제가 전체적인 치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디지털치료제는 하나의 치료옵션이 돼야 한다. 향후 디지털치료제 활용 방향에 대해 의료진뿐 아니라 디지털치료제 개발자들이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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