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위 대조군 이중맹검 연구 설계 어려워…공신력 얻으려면 인허가 받아야

▲이미지출처: 포토파크닷컴.

최근 의료계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변화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건강관리, 질병 진단, 치료 등을 제공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의 한 분야인  '디지털치료제'는 의료계가 주목하는 이슈 중 하나다. 소프트웨어 또는 디지털기기를 활용해 질환을 관리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가 모이면서 디지털치료제가 또 하나의 치료옵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알약이나 캡슐 등 저분자 화합물인 1세대 치료제, 항체 또는 단백질 등 생물학적 제제인 2세대 치료제에 이어 3세대 치료제인 디지털치료제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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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치료제에 대한 의료계와 산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진료 현장에 도입되려면 여러 개의 허들을 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약물처럼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하는데 설계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만만치 않다.

또 유효성과 안전성을 근거로 의사 처방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규제기관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며, 이후 보험 적용 문제도 하나씩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무작위 대조군 이중맹검 연구 설계 어려워

먼저 디지털치료제 임상시험은 편향되지 않는 무작위 대조군 연구를 진행하기 어렵다. 예로 디지털치료제를 이용하고자 임상에 참여한 환자가 대조군에 배정된다면 연구 기간에 환자의 순응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이는 연구의 비뚤림(bias)으로 작용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치료제 사용군으로 배정된 환자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순응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중맹검이 가능한지도 이슈다. 전통적인 약물은 치료 효과가 있다는 인과관계를 확인하고자 무작위 대조군 이중맹검 연구를 진행한다. 이때 대조군에 배정된 환자에게 치료제와 같은 모습의 가짜약을 준다. 

하지만 디지털치료제의 소프트웨어 플라세보(placebo)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페어 테라퓨틱스는 솜리스트의 플라세보로 수면이나 정신건강과 관련 없는 일반적인 건강 앱과 불면증에 대한 교육자료를 사용했고, 아킬리 인터렉티브는 단어 교육게임을 직접 개발해 ADHD 치료제의 플라세보로 활용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플라세보는 디지털치료제와 외관상 구별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성모병원 김헌성 교수(내분비내과, 빅데이터 임상활용연구회 회장)는 "디지털치료제는 무작위 대조군 이중맹검 연구로 치료 효과를 입증하고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며 "이중맹검이 가능하다 해도 한 그룹은 소프트웨어 플라세보를 사용해야 하는데, 플라세보를 어떻게 개발하고 환자들에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또 임상시험 대상군 설정 시 특정 연령대 또는 특정 인종만 포함하면 디지털치료제를 많은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울러 디지털치료제의 최적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용량-반응 관계를 평가하는 임상시험 설계가 어렵다는 점도 향후 풀어야 할 숙제다.

공신력 얻으려면 인허가 받아야 하는데…

디지털치료제가 임상시험으로 치료 효과에 대한 근거를 확보했다면,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규제기관의 엄격한 절차를 거쳐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치료제가 실제 치료 효과가 있다는 공신력을 얻을 수 있다. 

규제기관의 인허가는 반드시 받아야 하는 필수 조건은 아니다. 건강관리 목적이라면 인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임상시험으로 치료 효과에 대한 근거를 확보했다면 질병 개선 효과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와 환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인허가 과정을 거쳐야 유리하다. 이를 통해 치료 효과와 사용 목적, 안전성 등을 주장하면서 의사 처방을 유도할 수 있으며 환자의 순응도도 높일 수 있다. 

김 교수는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규제기관의 인허가는 선택"이라면서도 "하지만 의사의 처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하기에 인허가를 받아야 유리하다"고 밝혔다. 

게다가 인허가를 받은 디지털치료제는 향후 보험이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국내에서는 디지털치료제의 보험 적용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단계로 산업계에서 여러 정책을 제안하는 모습이다.

송승재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회장(라이프시맨틱스 대표이사)는 "보험 적용에 대해서는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상황으로 지금 정부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디지털치료제를 비급여로 해야 할지 혹은 급여코드를 신설해 선별급여를 적용해 할지 여러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美, 인허가 간소화…제품보다 개발사 규제에 초점

최근 외국에서는 디지털치료제가 시장에 빠르게 도입될 수 있도록 인허가 절차를 완화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FDA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다. FDA는 '디지털헬스 소프트웨어 사전인증(Digital Health Software Pre-Cert) 프로그램'을 통해 제품이 아닌,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개발사에 인허가를 준다. 

개발사가 SaMD를 제조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 평가해 사전인증을 진행하고, 그 개발사의 SaMD는 간소화된 허가 과정만 거쳐 시장에 출시하도록 해준다. 제품이 아닌 개발사를 규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전통적인 약물 또는 의료기기의 임상 도입이 굉장히 어렵다는 점에서 FDA와 같이 디지털치료제 등 SaMD의 규제를 완화하는 움직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김 교수는 "디지털치료제가 개발됐고 치료 효과가 있으니 우선 시장에 도입한 후에 문제가 있으면 조금씩 수정해보자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곤란할 것 같다"며 "SaMD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이 경우 다시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실제 진료현장에서 사용하면 부딪힐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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