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처방 참여 의료인들, 편의성·안전성에 공감…지속 가능성은 서로 다른 의견
政, 원격의료라는 표현 전면에 사용하지 않으나 비대면 진료 지속 필요성 역설
의료계, 시류 변화에 촉각…의협, '정부와 논의 가능성 열어두자' 움직임 감지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포토파크닷컴 이미지 합성)

[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코로나19(COVID-19)가 전 세계를 뒤흔들면서 정상적인 사회·경제 시스템이 마비된 가운데 '한시적', '불가피'라는 명목 하에 시도되고 있는 비대면 서비스.

초창기 시행착오는 있었으나 의료, 교육·수업, 근무, 배달·유통, 거래, 회의 등 다양한 방면에서 비대면이 이뤄지고 있는 현 상황이다.

우스갯소리로 '코로나19 덕에 정부가 그동안 반대 의견에 밀려 시도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얼떨결에 시험해 보고 있다', '코로나19의 역설이다'라는 등의 말이 들릴 정도다.

비대면은 의료계에도 그대로 적용됐는데,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서 국민과 의료기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전화상담·처방을 허용하면서 부터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전화상담·처방 청구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24일부터 4월 12일까지 총 3072곳의 의료기관이 전화상담·처방에 참여, 진료금액은 12억 8812만원 규모로 집계됐다.

참여기관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의원이 2231개 기관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한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이 잇고 있다.

의료기관 한 곳당 평균 전화상담·처방 건수는 상급종합병원 204건, 종합병원 188건, 병원 51건, 의원 27건 순이다.
 

의료계, '고도화된 원격의료로 확산될라' 노심초사
정부,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만 시행한다' 선 긋기

이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이긴 하나 의료계는 전화상담·처방을 허용했고 실제로 많은 의료기관이 참여해 청구까지 이르렀다.

정부가 전화상담·처방을 통해 원격의료의 본격 도입 및 확대 카드를 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원격의료·진료 등의 추가 도입이 없는 한시적인 허용이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전화상담·처방이다"라며 "비상시국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정부의 도움 요청에 함께 하는 것일 뿐 추가적인 확대는 없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이런 의료계의 우려와 달리 정부는 아직 표면적으로 '원격의료' 도입을 대놓고 언급하길 꺼리는 분위기다.

특히, 의료법 체계 내에서 허용된 원격의료의 범위가 반복적인 재진환자의 전화적인 처방전 같은 부분이나 건강 상담 정도여서 현재 코로나19에 의한 비대면 진료가 '원격의료'를 자체를 특정해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손영래 전략기획반장은 "현재는 코로나19 감염 확산과 만성질환자 관리를 위해 전화를 통한 비대면으로 처방전을 재발행하는 수준"이라며 "그 외에 제도를 벗어나 법령 개정이 필요한 부분들까지 고려할 여력은 없다"라고 못 박았다.

사진출처: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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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본 윤태호 총괄방역반장도 "중대본 차원에서 원격의료 도입에 대한 정부 입장이 어떠한가를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다만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비대면 진료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즉, 코로나19 때문에 한시적으로 시행 중인 전화상담·처방 등의 비대면 진료를 현행 의료법 테두리를 넘어서까지 원격의료로 확장할 계획도, 고려할 여력도 현재로서는 없다는 뜻인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최근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비대면 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보건의료혁신 태스크포스(TF)'가 설치됨에 따라 원격의료 확대가 논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중대본 김강립 1총괄조정관(복지부 차관)은 "TF에서 비대면 의료가 일부 거론될 수 있겠지만 이 부분이 현재 논의되거나 논의 내용에 포함돼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김 1총괄조정관은 "한시적으로 허용한 전화상담·처방이 만성질환자와 고령자를 중심으로 잘 활용됐다"며 "코로나19로 촉발된 여러 가지 화두를 정책체계 내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행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는 '원격의료'라는 표현을 전면에 나서서 사용하고 있지 않으나 코로나19가 화두로 던진 비대면 서비스의 필요성과 효과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으로 정리된다.

서울의 한 개원의는 "정부가 한시적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대통령의 의지와 발언 등으로 인해 원격의료에 대한 기류가 변하고 있다"며 "어떤 식으로 보든 원격의료의 시발점이 된 것을 부인하기 어렵고 큰 물살을 막아내던 둑에 드디어 구멍이 생겼다"라고 표현했다.
 

직접 시행한 의사들, 긍정적 반응 속 우려도 커
편의성·안전성 높으나 지속가능성에는 '갸우뚱'

이번 한시적 전화상담·처방을 직접 시행하고 경험해본 의사들은 편의성과 안전성, 환자의 만족도 면에서 공통적으로 높은 평가를 내렸다.

반면, 비대면 진료를 지속해서 확대·시행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엇갈렸다.

이는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의원 등 의료기관 종별에 따라서 특별히 의견이 갈린다고 할 수 없는 특징을 보여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비대면 진료에 대한 생각이 구분되는 듯했다. 

전화상담·처방을 실시한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내과 교수는 "시범적으로 운영해 본 비대면 진료라 증상이 심한 환자들은 이전처럼 대면 진료를 했고 주로 가벼운 증상의 환자들과 통화했다"며 "환자를 보호하고 병원을 확산 위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에서 성공적이었다"라고 평했다.

그는 이어 "전화상담·처방을 받은 환자들이 덕분에 가장 불안한 시기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굉장히 고마워했다"며 "초기에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과정에 시간이 다소 필요했지만 지금은 전자처방전까지 발행할 수 있고 재차 시행하면 훨씬 수월해질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한시적 전화상담·처방 운영에 있어서 초창기부터 참여한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진료과별로 의료진의 입장이 서로 극명하게 달라 모든 진료과에 적용할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려면 대면 진료는 당연하다고 생각해 비대면 진료 자체를 거부하는 의사가 있는 반면에 이를 적극 시도해보고 원격의료 확산에도 긍정적인 의견을 가진 의사도 있다는 것.

코로나19 초창기 확진자가 다수 발생해 많은 의료인이 집결한 지역 중 하나인 대구에서 전화상담·처방을 2달간 실시한 한 내과 개원의는 스스로 병·의원에 방문하지 못하는 환자나 확진자, 감염확산 방지 차원에서 비대면 의료는 확실한 장점을 지녔다고 진단했다.

단지, 전화상담·처방이 한시적이라는 조건이 있었고 처방 수가를 대면 진료와 동일하게 매겼기에 큰 저항이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다시 말해, '위기 시에만 작동하는 기전'이라는 명백한 인식이 있었고 이번 한시적 전화상담·진료가 원격의료의 본격 확산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믿음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는 것.

이 내과 개원의는 "의료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편의성과 거리두기 말고는 모든 면에서 한계가 많다고 생각한다"며 "수가가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원래대로 대면 진료를 보길 원하는 의사들도 다수였던 것은 다 이유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번 비대면 진료 시도까지는 불가피했으나, 앞으로 필수가 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내놨다.

그는 "만약에 원격의료의 시발점이 된다면 조금이라도 도입 시기를 늦추면서 더욱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환자의 편의성을 높이고 의사를 보호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진료금액이 12억 수준이라고 해도 전국적으로 보면 아직 많은 사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2달 간 전화상담·처방에 별다른 부작용이 없었다고 해서 물밀 듯이 추가적인 원격의료를 진행시키는 계기로 삼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흥미로운 점은 전화상담·처방이어서 환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상황을 두고 의사들의 추가적인 조언이 상반됐다는 점이다.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아쉬운 부분은 전화로는 환자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세세한 진료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인데, 비록 화상이지만 얼굴만 봐도 환자의 상태를 읽을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라며 "화상이 가능하면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사용해 청진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대구지역 개원의는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환자의 말로만 처방을 내리는 것은 아무리 만성질환자에 국한한다고 해도 부작용과 위험이 없을 수 없다"며 "걸음걸이, 말투, 안색, 감정상태, 시선 등으로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의사의 기본적인 진찰법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전과 같은 결사반대 분위기는 아닌 '의협'…시류 변화 감지?

이처럼 전화상담·처방을 직접 경험해본 의료인들조차 비대면 진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소 엇갈리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는 수년간 줄곧 반대 입장을 피력해 왔다.

코로나19로 촉발된 국가적 재난상황에 한시적으로 도입하자고 정부가 제안한 전화상담·처방도 당초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뒤늦게 '현장 판단에 맡긴다'며 급격히 태도를 바꿨다. 

전화상담·처방이 두 달간 진행된 후의 현재 의협 입장은 어떨까.

아직 공식적인 언급은 없고 기존에 고수한 원격의료 반대 노선에도 변함없으나, 코로나19가 급격히 바꿔 놓은 시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원격의료에 대한 논의 가능성을 열어둬 정부가 의협을 가장 중요한 카운터 파트너로 삼도록 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 같은 변화된 움직임에는 지난 15일 끝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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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의협 회원은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면서 정부가 의료계와 조금 더 전방위적으로 긍정적 소통을 강화해 좋든 싫든 대화 파트너로서 진정성을 가졌으면 한다"며 "여당의 승리로 대통령이 레임덕 없는 안정적인 정책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아, 국민들 보기에도 정부와 보건의료계가 척을 지고 논쟁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코로나19로 인한 한시적인 비대면 진료였으나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면 의료계와 전향적으로 논의를 통해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의협 관계자는 "시도의사회 회장단, 운영위원회, 대의원회 등 의협 내부에서 의견을 모아 정부와 논의를 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며 "정부도 원격의료를 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것을 대폭 확대·시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단, 비대면 진료 의료분쟁 및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인을 보호하는 안전장치와 적정 수가가 반드시 선결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는 "혹시 모를 사고 등에서 의료인을 보호하는 장치와 적정 수가가 해결되면 비대면 의료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정간 계속해 소통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의견 취합, 의료법 개정 통과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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