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시간은 무임금 노동시간, 임산부도 연속 36시간 근무 당직 예외없어
정작 필요한 수련 못 받고 경증환자 진료만, 위법 들켜도 과태료가 끝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사직 전공의들이 직접 겪은 열악한 수련환경을 토로하며 근로기준법에 기반한 근로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와 국회 입법조사처·보건복지위원회는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지난해 의료 사태로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들이 참석해 병원에서 겪었던 열악한 수련환경 실태를 공개했다.
김은식 전 세브란스병원 전공의협의회장은 "2015년 전공의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야간당직을 포함한 36시간 연속근무 등 열악한 수련환경은 바뀌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이같은 가혹한 근무는 임신한 전공의에게도 적용됐다.
김 전 회장은 "세브란스병원 근무 당시 임신 전공의에게 임신 초기부터 출산 직전까지 야간 당직을 포함해 36시간 연속 근무가 강제됐다"며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산부는 본인이 명시적으로 청구하지 않는 한 야간 근로 및 시간 외 근로가 금지돼 있지만, 병원은 해당 전공의에게 지금까지 임신을 이유로 전공의가 당직에서 빠진 적이 없다며 압박했다"고 전했다.
이어 "다른 전공의도 임신 초기부터 당직 근무를 했고 어느 날 퇴근 후 자택에서 복통을 느껴 응급실을 경유해 응급 제왕절개수술을 받았다"면서 "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응급실에서 심정지 환아를 1시간 동안 심폐소생술을 한 후 자신의 태아에게 미안해서 몇시간을 울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주 80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다는 조항도 지켜지지 않았다. 김준영 전 순천향대학교병원 전공의협의회장은 전공의 당시 자신의 근무표를 공개했다.
김 전 회장은 "근무기록표에 기록된 것은 주 100시간, 근로기준법에 있는 휴게 시간을 고려하면 주 88시간이지만 실제로 휴게시간은 없었다"며 "실질적으로 주 120시간을 근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되레 80시간 이하 근무한 주가 전체 수련 기간의 반의 반도 안된다"고 토로했다.
전문의 취득 후에도 추가 근무와 대학원 등록 강요, 담배와 음식 배달 심부름, 365일 내내 당직을 강요받는 등의 부조리도 횡횡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신부 당직근무 강요와, 주 80시간 이상 근무는 전공의 특볍법에 위배된다. 하지만 적발되더라도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 외엔 별다른 조치가 없어 악습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 같은 수련환경의 또 다른 문제는 정작 수련 자체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대전협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예를 들어 외과 전공의의 경우 수술을 수련받아야 하지만, 정작 수술방은 교수와 오래 손발을 맞춰온 PA 간호사가 들어가고 전공의들은 입원실의 경증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입퇴원 절차를 밟는데 매달려 있다"며 "결국 실제 수련 교과 과정의 절반도 익히지 못한 채 전문의를 따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외과 수련의의 수술 참여 시간은 전체 수련 시간의 7%에 불과했다"며 "지도교수제가 있으나 대부분 전공의들이 자신의 지도교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공의 급여도 노동에 비해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공의 평균 월급은 398만원으로, 야간근로와 휴일근로를 빼고 계산하면 시급 1만 1400원 수준이다.
전공의들의 근로환경과 급여가 열악한 이유는 정부의 무관심도 한 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박 위원장은 "미국은 전공의 1인당 연간 약 2억원, 영국은 전공의 수련 예산으로 연간 9조원을 지원하지만 한국은 10년 동안 예산 지원이 거의 없었다"며 "최근 전공의 집단행동 후 국고 보조금으로 415억원이 배정됐으며, 8개 과목에만 겨우 100만원씩 수련수당을 주겠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의 독립성과 구성도 문제로 지적됐다. 수평위는 보건복지부 산하이지만 대한병원협회에 위탁돼 운영되고 있다. 위원 구성도 대부분 병원측 관계자로 전공의들의 목소리가 묻힐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수평위를 병협에서 떼어내 독자적으로 운영하게 하고, 전공의 대표들을 과반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전공의 수련 시간을 주당 80시간에서 64시간으로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근로기준법에 맞춰 52시간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며 "특히 환자 안전을 위해서라도 연속 근무 시간을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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