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부정맥학회 16일 기자간담회 개최
원격 모니터링≠원격진료…의료법과 관계부처 유권해석으로 국내 활용 어려워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으로 많은 환자 살릴 수 있어…환자 위해 규제 풀어야"

▲대한부정맥학회는 16일 서울역 소재 만복림에서 '인공지능 시대 부정맥 환자 관리 발전방향'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좌부터) 대한부정맥학회 박상원 정책이사, 이명용 회장, 노태호 전 부정맥연구회 회장.
▲대한부정맥학회는 16일 서울역 소재 만복림에서 '인공지능 시대 부정맥 환자 관리 발전방향'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좌부터) 대한부정맥학회 박상원 정책이사, 이명용 회장, 노태호 전 부정맥연구회 회장.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심장내 삽입장치(CIED)를 통한 원격 모니터링(이하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의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은 해외에서 이미 표준진료로 자리 잡았고 국내에서 활용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지만 규제가 막고 있어 현실에서는 활용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대한부정맥학회는 16일 서울역 소재 만복림에서 '인공지능 시대 부정맥 환자 관리 발전방향'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며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부정맥·기기 관련 정보 조기 발견 유용…환자 안전망으로 작용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이란, 부정맥 감시와 치료를 위해 환자 심장에 이식한 인공 심박동기나 이식형 심율동 전환 제세동기 등 의료용 기기가 보내는 정보와 신호를 담당 의료인이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기존 방식으로는 환자의 정기적 내원을 통해서만 CIED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을 도입하면 내원 일정과 무관하게 환자와 떨어진 곳에서 중요한 정보를 전문의가 얻고 조기에 필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대한부정맥학회 박상원 정책이사는 심장내 삽입장치(CIED)를 이식한 부정맥 환자 대상의 원격 모니터링 의미와 가치를 설명했다.
▲대한부정맥학회 박상원 정책이사는 심장내 삽입장치(CIED)를 이식한 부정맥 환자 대상의 원격 모니터링 의미와 가치를 설명했다.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은 임상적으로 중요한 부정맥 및 기기 관련 정보를 조기 발견하는 데 유용하다고 보고된다. 연구에 의하면, 조기 발견을 통한 임상적으로 유용한 조치를 취하는 시간은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 시행 전 평균 22일이었다면 이후에는 4.6일로 크게 줄었다. 

이와 함께 CIED를 이식한 환자의 약 43%는 심방세동을 동반하는 등 뇌졸중 위험요인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뇌졸중 예방을 위해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분석된다.

비용 절감 및 편이성 측면에서도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의 장점이 명확하다. 환자는 CIED 점검을 위한 병원 방문이 줄어 교통문제, 보호자 동반 등 내원을 위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환자의 삶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원격 모니터링의 안전성, 유용성, 임상적 혜택 등은 10건 이상의 무작위 대조 임상연구에서 입증됐다. 연구에 따르면,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은 심각한 부정맥 발생을 일찍 발견하고 부적절한 심장충격을 줄였다. 또 심부전, 부정맥, 삽입형 제세동기(ICD) 등 관련 사건으로 인한 병원 방문을 21% 줄이고 1년 및 5년 생존율도 개선시켰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심장부정맥학회(HRS)는 2015년부터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에 대한 필수 사용 권고의견을 발표했다. 서구를 포함해 일본, 홍콩,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을 표준진료로 권고하고 있다.

▲노태호 전 부정맥연구회 회장.
▲노태호 전 부정맥연구회 회장.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은 환자 안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병원을 방문해야 가능한 환자 몸속의 의료기기 상태 및 부정맥 발생에 대한 감시를 원외에서 언제나 할 수 있어, 갑작스러운 심장박동 변화나 기기 작동 이상이 치명적일 수 있는 부정맥 환자에게 안전망으로 작용할 수 있다. 

노태호 전 부정맥연구회 회장(노태호바오로내과 원장, 가톨릭의대 명예교수)은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이 충분히 가능한 기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1년에 4번 정도 병원에 방문해 건강과 기계 상태를 확인하는 실정"이라며 "이를 통한 기록은 후향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술이 부족한 게 아니며 충분히 먼 곳에서도 환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서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 일찍 조치를 취함으로써 환자의 생과 사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회와 복지부가 생각하는 '원격 모니터링'이란?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내 진료 현장에 도입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진료를 금하는 의료법과 관계부처의 유권해석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을 '환자가 내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가 건강상태 데이터를 확인하고 의료적 상담을 제공'하는 행위이며, 의료법이 정하는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진료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원격 모니터링은 원격진료와 결을 달리한다는 게 학회 주장이다. 원격의료는 영상이나 전화, 이메일 등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원격진료(tele-medicine)'와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한 자료를 받아보는 '원격 모니터링(tele-mornitoring)'으로 구분할 수 있다. 

모니터링이란 이식된 의료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확인하는 진료 과정 중 하나일 뿐이며, 진료행위는 모두 원내에서 이뤄진다는 게 학회 설명이다. 이미 의료현장에서 환자 감시장치 등을 활용한 모니터링이 다수 시행되고 있다는 것. 

학회 이명용 회장(단국대병원장, 심장혈관내과 교수)은 "심장 안에 이식하는 CIED를 통한 원격 모니터링으로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게 외국에서 확인됐다"면서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원격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가 확인된 환자에게 병원에 내원하라고 하면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 보단 '원격'이란 단어에 정치적 논리가 반영돼 우려가 있는 것 같다"면서 "원격 모니터링은 원격진료와 다르며,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원격 모니터링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진료 현장 도입 준비 마쳤지만 규제가 막고 있어

학회는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을 진료 현장에 도입하기 위한 준비를 했지만 현실적으로 활용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복지부는 의료기기를 통한 심장건강 관리 서비스에 대한 유권해석을 통해 시장 진입의 길을 열어줬다. ICT 규제 샌드박스 1호 실증특례로 선정된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또 정부는 산업계와 함께 '강원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의 '건강관리 생체신호 모니터링' 실증사업을 통해 원격 모니터링의 기술적 가능성과 안전성을 검증했다. 이같이 원격 모니터링 활용을 위한 준비를 마쳤지만 규제가 진료 현장 도입을 막고 있다는 게 학회 지적이다. 

▲대한부정맥학회 박상원 정책이사.
▲대한부정맥학회 박상원 정책이사.

현재 활용 가능한 기술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면서 '심장질환자 재택의료 시범사업'에서는 환자를 교육하고 증상을 모니터링하도록 권고하지만, 불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학회 박상원 정책이사(부천세종병원 부장)는 "현재 재택의료 시범사업에서 시행하는 모니터링은 가용한 기술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숨은 잘 쉬는지 약은 잘 복용하는지만 모니터링하는 수준"이라며 "모니터링하고 있는 불필요한 항목을 점검하고, 빠른 조치가 가능한 효과적인 항목을 모니터링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이를 위한 장비 사용이 원격진료에 해당해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에 대한 긍정적 검토와 적극적 해석이 이뤄져야 한다"며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이 빠르고 성공적으로 국내에 정착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수가 논의는 '시기상조'…도입된다면 적절한 수가 필요

학회는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에 대한 수가 논의는 시기상조라면서도, 국내 도입된다면 적절한 수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회 김성환 보험이사(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의료진이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 데이터를 받고 분석해 환자가 내원하도록 권하기에 당연히 이에 대한 수가는 있어야 한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수가가 책정돼야 한다"면서 "환자가 병원에 방문하기 위한 비용보다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에 수가를 책정하는 것이 더 저렴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정책이사는 "환자 데이터가 며칠 동안 전송되지 않을 경우 네트워크 문제, 기계 오작동 등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 데이터를 해석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적절한 수가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 도입 시 수가는 어떻게 책정할지에 대해서는 향후 계산해봐야 할 문제"라며 "미국과 프랑스의 경우 1년 단위로 관리비 수준을 청구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는 부정맥 원격 모니터링이 허용되지 않았기에 수가에 대해 논의하기 이전에 도입을 위한 규제를 푸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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