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분만기관의 출생 통보 의무화한 출생통보제 추진
의료계 “정치권, 충분한 대화도 없이 갑자기 추진해” 반발
법안 추진 시 의료진 법적 면책권·인센티브 고려돼야

사진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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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박서영 기자] 부모의 역할이었던 아동 출생 신고가 의료기관의 몫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아 아이가 미등록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에 국민적 찬성 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의료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국가가 아동 보호 역할을 민간에 떠넘기려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13일 정부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제17회 아동정책조정위원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의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는 출생통보제가 담겼다.

출생통보제 도입은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기한 이후 꾸준히 논의돼온 사안이다. 의료기관이 아동 출생 정보를 시·읍·면장에게 통보하는 것이 주요 골자로, 지난해 법무부는 이 같은 내용의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아동학대 데이터는 법안 찬성 측의 근거를 뒷받침한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출산 미등록 아동학대는 2018년 95건, 2019년 89건, 2020년 74건, 2021년 74건에 달한다. 미등록 아동들은 유령처럼 있다가 학대를 당하고 나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셈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17일 성명을 통해 “아동 보호를 정부 기관이 아닌 민간의료기관에 떠넘기는 행태가 기가 막히고 국가의 능력이 의심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역시 지난 2일 제49차 춘계학술대회에서 “병·의원은 행정기관이 아니다”라며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분만 기록 심평원으로 넘어가는데…출생 통보 ‘굳이?’
의사회, 수 년 간 출생통보제 반대했지만…복지부 ‘묵묵부답’

의료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출생통보제가 아동 학대 사각지대의 유일한 대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유 회장은 “병·의원에서 분만을 하게 되면 아기의 몸무게나 성별 등을 기입하는데, 이 자료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넘어간다”며 “심평원에 보고된 산모가 일정 기간 내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각 지자체에서 신고 의무자에게 출생신고를 하도록 계도가 가능한데, 이 역할을 민간기관에 떠넘기는 건 위헌 요소”라고 지적했다.

또 의료기관이 출생통보를 의무로 지게 될 경우, 의료기관에서 이를 위한 인력 보충과 행정적 부담을 지는 것은 물론, 신고 과정에서 실수로 오류가 발생할 시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에 위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반대 이유 중 하나다. 출산을 숨기고 싶어하는 산모들이 병원에서의 분만을 기피하게 될 수도 있는데, 산모 및 신생아 건강에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더 큰 문제는 출생통보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이 의사회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국회 복지위에서 법안 검토 직전 급하게 연락이 왔을 뿐, 그 이전에는 대화 요청조차 없었다”며 “몇 년 전 출생통보제가 처음 거론될 때부터 법무부와 복지부에 꾸준히 반대 공문을 보내왔는데 그건 읽어보지도 않고 이제 와 갑자기 연락을 하는 게 황당하다”고 말했다.

현장 개원의들도 출생통보제에 부정적인 상황이라 전했다. 출생정보 기입은 행정기관도 실수할 가능성이 농후한데 하물며 개인 민간병원은 어떻겠느냐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개원의 반대율이 사실상 100%에 가깝다고 본다. 행정 인센티브나 법적 면책 등이 마련돼있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국민 87.4% “아동 출생등록 권리 보장해야” 법안 지지
정부 “의료계 우려 보완해 정책 추진할 것” 약속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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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료계가 넘어야 할 벽은 정치권만이 아니다. 압도적인 국민적 찬성 여론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월 27일부터 3월 13일까지 출생통보제 도입과 관련해 국민 4184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한 결과, 응답자의 87.4%인 3626명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이유로는 △아동의 출생등록권리 보장(42.6%) △보건·의료·교육 등 아동 권리 보호(34.5%) △아동학대 예방(22.5%) 등이었다.

반면 △낙태 우려(32.5%) △비인가시설 출산 증가(30%) △민간의료기관 신고의무 부과 부당(29%) 등의 반대 의견도 있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는 “유엔국제아동권리협약 제7조에도 아동은 태어난 즉시 국적과 이름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돼있다”며 “출생통보제는 출생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법안을 지지했다.

다만 산부인과 의사들의 반대가 심한만큼 일정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의 장려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재유 회장 역시 “출생통보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시 의료기관에게 법적 면책 권리를 부여하고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러한 문제점만 보완되면 법 시행을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의료계에서 우려하는 내용을 보완해 현재 국회 계류 중인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 추진에 속도를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지난 3월에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심평원에 위탁해 정보를 송부하는 방법으로 갈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보충한 출생통보제 법안(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출생 통보를 의무화한다는 큰 틀은 같아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는 평가다.

법무부가 지난해 제출한 개정안은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상정 시 김 의원의 개정안과 함께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의료계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될지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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