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관련 사진·영상 간접 노출로 전국민 트라우마 경험할 수 있어
美 연구 결과, TV+소셜미디어 노출 늘수록 PTSD 유병률 증가
국내 전문가 "사진·영상 반복 시청 자제…타인에게 공유하면 안 돼"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로 전국민 트라우마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언론보도와 유튜브,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참사 현장이 여과 없이 전파되면서, 유가족, 부상자, 목격자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사고를 접한 일반 시민들도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영상·뉴스 반복 노출로 '대리외상증후군' 우려

전문가들은 영상이나 뉴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트라우마가 생기는 '대리외상증후군(Vicarious Trauma)'를 우려한다.

대리외상증후군이란 일반인들이 사고를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언론보도 등 간접적 경험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보훈부는 외상사건(traumatic events) 관련 뉴스 시청과 스트레스 증상 사이에 연관성이 있으며, 스트레스에 더 심각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사건 관련 TV 보도 시청이 많다고 보고 있다. 

대규모 외상사건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관련 미디어에 많이 노출될수록 PTSD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다수 발표됐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TV를 시청하는 시간이 4시간 이하면 PTSD 유병률은 0.8%였지만 12시간 이상이면 10.1%로 크게 높아졌다(JAMA 2002;288(5):581~588).

2017년 태풍 하토가 중국, 마카오에 큰 피해를 입혔던 당시 소셜미디어로 태풍 관련 소식을 접하거나 직접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감정에 간접적으로 노출된 경우 PTSD 발생 가능성이 유의하게 증가했다(Eur J Psychotraumatol 2019;10(1):1558709).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재난정신의학위원회 위원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이번 참사는 이전에 겪었던 사건보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온 글이 많았다. 사건 첫날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사진·영상이 유포돼 가족, 지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며 "대리외상증후군 등 2차, 3차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하주원 홍보이사(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는 "과거와 달리 보도하면 안 될 사진·영상 등이 여과 없이 소셜미디어로 무분별하기 전파되면서 이를 보고 불안함을 느끼는 환자들이 내원하는 사례가 있다"며 "본인이 직접 겪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PTSD가 유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외상사건 노출 늘면 PTSD 유병률 증가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소셜미디어 이용이 보편화되는 가운데 TV 등 전통적 매체 시청에 더해 소셜미디어 노출로 인해 PTSD 유병률이 더 높아진다고 분석된다.

미국 보스턴대학 Salma M. Abdalla 교수 연구팀은 TV, 소셜미디어 등으로 대규모 외상사건에 노출됐을 때 PTSD 유병률을 분석하고자 가상실험인 인실리코(In-silico) 연구를 진행했다(Front Psychiatry 2021;12:674263). 

연구팀은 2018년 미국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총기난사사건을 경험한 미국 플로리다주 코랄 스프링스 인구와 인구통계학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11만 8000명에 대해 마이크로시뮬레이션(microsimulation)을 진행했다.

마이크로시뮬레이션은 경제·사회현상을 분석·예측하는 기술로, 반복적 무작위 실험을 기반으로 결과를 산출한다. 

분석 결과, 총기난사사건에 대한 TV 보도에 따른 지역사회 PTSD 유병률은 3.1%로 조사됐다. TV 시청 시간에 따라 분류했을 때 PTSD 유병률은 △4시간 미만 0.3% △4시간 미만 또는 4~7시간(인구 하위 절반) 1.3% △8~11시간 또는 12시간 이상(인구 상위 절반) 3.5% 등으로, TV 시청 시간이 늘수록 유병률이 증가세를 보였다. 

TV에 더해 소셜미디어에 노출됐을 때 PTSD 유병률은 3.4%로 분석됐다.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총기난사사건과 연관된 영상을 시청한 경우 유병률은 5.3%로 증가했다.

연구팀은 "이번 시뮬레이션에서 TV 노출을 줄이면 일반 인구의 PTSD 유병률이 최대 90% 감소했다. 반면 TV 노출이 늘면 유병률이 중등도 수준인 15% 증가했다"며 "이는 대규모 외상사건 관련 TV 노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국민의 정신건강을 잠재적으로 개선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4시간 동안 이뤄지는 TV 뉴스 보도와 소셜미디어의 보편화에 따라 대규모 외상사건에 대한 노출이 늘면서 지역사회 PTSD 부담이 커질 수 있음을 이번 연구에서 확인했다"면서 "향후 대규모 외상사건 관련 PTSD 유병률을 구체화할 때 소셜미디어나 다른 매체의 역할을 정량화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또 대규모 외상사건 이후 정신건강 측면에서 미디어 역할을 완화할 수 있는 중재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신건강 문제 겪는다면 의료기관 적극 찾아야

이에 참사 사진·영상이나 언론보도를 과도하게 반복해서 보는 행동을 자제하고, 타인에게 관련 사진·영상을 공유하면 안 된다는 데 전문가들의 중지가 모인다. 

백 위원장은 "재난을 이겨내려면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므로 언론보도를 피할 수는 없다. 이에 온종일 참사 관련 내용을 확인하기보단 정해놓은 시간에만 보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또 관련 사진·영상을 전달받으면 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유가족뿐 아니라 많은 국민에게 심리적 고통과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영상 공유도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누군가는 이번 참사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호기심을 이유로 사진·영상을 유포하거나 본다는 것은 사회적 신뢰를 깨뜨리는 행동"이라며 "이번 참사를 해결하기 위한 물적·경제적·인적 자원도 필요하지만 신뢰자본, 즉 사회적 연대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하 홍보이사는 "본인이 불안을 느껴 원인과 예방할 방법을 찾고자 뉴스나 현장 영상을 찾아보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에게 도움 되지 않는다"며 "뉴스나 현장 영상을 반복해서 보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또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고 영상과 사진을 공유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로 인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다면 의료기관을 적극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다.

백 위원장은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우울, 분노 등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고 장기간 지속된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며 "정신건강상담전화(1577-0199)에 연락해 정신건강 전문요원에게 진료 또는 치료가 필요한지 먼저 문의하고, 치료를 권한다면 상담기관이나 의료기관에 방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고 전했다. 

하 홍보이사는 "이번 참사로 불안이나 불면 등이 나타날 정도로 신체 증상이 있다면 의료기관에서 치료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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