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레스토, 박출률 정상보다 낮은 만성 심부전 치료제로 적응증 확대
자디앙, 박출률 관계없이 만성 심부전 환자 투약 가능
국내 전문가 "환자 상태 따라 치료 결정해야…계열 달라 경쟁구도 아냐"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치료옵션이 없는 대표적 심혈관질환이었던 박출률 보존 심부전(HFpEF)에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들이 등장하면서 어떤 약을 먼저 선택해야 할지에 관심이 모인다.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HFpEF 치료제로 허가받았으며 국내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두 주인공은 노바티스의 엔트레스토(성분명 사쿠비트릴/발사르탄)와 베링거인겔하임·일라이릴리의 자디앙(엠파글리플로진)이다.
엔트레스토는 안지오텐신 수용체 네프릴리신 억제제(ARNI), 자디앙은 SGLT-2 억제제로 두 치료제의 작용 기전은 다르다.
국내에서는 두 치료제의 허가사항에 차이가 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박출률 감소 심부전(HFrEF)에 이어 HFpEF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받았다.
식약처는 지난 2월 엔트레스토의 적응증을 박출률이 정상보다 낮은 약 60%까지인 만성 심부전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로 확대했다.
자디앙은 엔트레스토 적응증에서 더 나아가 박출률과 무관하게 만성 심부전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로 지난 5월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엔트레스토 vs 자디앙, 임상3상 비교해보니
HFpEF 치료제로 가능성을 평가한 랜드마크 임상연구는 엔트레스토의 PARAGON-HF, 자디앙의 EMPEROR-Preserved가 있다.
두 연구는 뉴욕심장학회(NYHA) 기능 등급 II~IV인 심부전 환자를 모집했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PARAGON-HF에는 박출률 45% 이상 심부전, EMPEROR-Preserved에는 40% 이상 심부전 환자를 등록기준으로 정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들 환자군은 올해 4월 발표된 미국심장학회·심장협회·심부전학회(ACC·AHA·HFSA) 심부전 가이드라인 기준으로 박출률이 약간 감소한 심부전(HFmrEF)과 HFpEF로 정의된다. ACC·AHA·HFSA는 박출률 40% 이하를 HFrEF, 41~49%를 HFmrEF, 50% 이상을 HFpEF로 정의했다.
즉 두 임상3상에는 HFpEF뿐 아니라 HFmrEF 환자도 일부 포함됐다. 이는 임상에서 박출률 50% 이상인 환자만 모집하는 연구 진행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종 임상3상 결과를 비교하면, 자디앙 투약 시 얻을 수 있는 임상적 혜택은 엔트레스토보다 큰 것으로 분석된다.
서로 다른 연구이기 때문에 치료제 간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자디앙은 전체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 또는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 등 1차 목표점 발생 위험을 위약 대비 21% 유의하게 낮췄다.
이와 달리 엔트레스토는 대조약인 발사르탄과 비교해 1차 목표점인 전체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 또는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 위험을 13% 낮추는 경향만 나타났고 통계적 유의성 입증엔 실패했다. 단, 박출률 45~57%이거나 여성 환자는 엔트레스토 투약 시 1차 목표점 위험이 의미 있게 줄었다.
두 치료제는 1차 목표점에서 서로 다른 결과가 확인됐지만,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 위험을 유의하게 낮추지 못해 HFpEF 환자의 증상 호전을 확인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혈압 높다면 '엔트레스토'·체액용적과부하 있다면 '자디앙'
임상에서는 미충족 수요로 남아있던 HFpEF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들이 등장한 것을 고무적으로 평가한다. 이에 따라 어떤 치료제를 환자에게 우선 투약해야 할지에도 관심이 높다.
결론부터 말하면, HFpEF 치료순서는 정해지지 않았다. HFpEF의 대표적 증상은 호흡곤란, 다리부종, 피로 등이 있으나 한 가지가 아닌 여러 원인에 의해 HFpEF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의료진은 환자 상태에 따라 적합할 것으로 판단되는 치료제를 선택하는, 개별화된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
예로 높은 혈압으로 HFpEF가 발생한 환자는 혈압을 낮추기 위해 혈압 강하 효과가 있는 엔트레스토를 먼저 투약할 수 있다. 체액용적과부하 증상이 있는 HFpEF 환자라면 용적 과부하를 줄이는 자디앙을 우선 선택하는 것이 도움 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최진오 교수(순환기내과)는 "HFpEF 환자에게 어떤 치료제를 먼저 투약해야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며 "HFpEF는 발생 원인이 다양하고 환자 상태도 달라 일괄적으로 치료순서를 정할 수 없다. 의료진은 환자 특성을 확인해 어떤 치료제가 도움이 될지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대한심부전학회가 이달 말 발표할 '2022년 심부전 진료지침 개정판'에서는 HFpEF 치료순서 보단 사용할 수 있는 약제와 권고등급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ACC·AHA·HFSA 심부전 가이드라인 역시 HFpEF 치료순서를 제시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와 권고등급만 담았다. 가이드라인에서는 HFpEF 환자에게 SGLT-2 억제제, MRA, ARNI 치료를 주문하는 새로운 권고안을 마련했다.
엔트레스토·자디앙, 경쟁 아닌 '협력' 관계?
아울러 엔트레스토와 자디앙은 작용 기전이 다르다는 점에서 경쟁구도가 아닌 협력관계를 구축할 것으로 전망된다.
HFrEF 치료제로 권고되는 SGLT-2 억제제, 베타차단제, MRA, ARNI 등 네 가지 계열 약제는 가능한 한 빨리 4제요법을 시작해야 HFrEF 환자 예후가 개선된다고 보고된다.
4제요법 시 HFrEF 환자의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은 2년 동안 73%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고(JAMA Cardiol 2020;5(8):948~951), 임상적 혜택은 치료 시작 후 수일에서 수주 이내에 나타났다(JAMA Cardiol 2021;6(7):743~744).
이를 비춰보면 HFpEF 치료도 SGLT-2 억제제와 ARNI를 함께 사용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대 구로병원 나진오 교수(순환기내과)는 "엔트레스토와 자디앙은 다른 계열의 치료제라는 점에서 경쟁구도가 형성된다고 하기 어렵다"며 "미국에서는 HFrEF 1차 치료제로 SGLT-2 억제제와 ARNI를 포함한 네 가지 계열 약제를 함께 사용하도록 권고한다. 자디앙과 엔트레스토는 함께 써야 하는 약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엔트레스토에 이어 자디앙이 심부전 환자를 위한 치료옵션으로 기대를 모으는 가운데 학계에서는 앞으로 심부전 치료제로서 SGLT-2 억제제 처방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최 교수는 "SGLT-2 억제제는 하루 한 번 복용하므로 HFpEF뿐 아니라 심부전 환자에게 쉽게 투약할 수 있는 치료제로 자리 잡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치료 경험이 많지 않아 그 시점이 언제 올지는 예견할 수 없다"며 "SGLT-2 억제제는 심부전에 앞서 당뇨병 치료제로 전 세계적으로 처방됐기 때문에 외국도 우리나라만큼 심부전 치료제로 사용한 경험이 많지 않을 것이다. 향후 경험이 쌓인다면 심부전 치료제로서 SGLT-2 억제제에 대한 컨센서스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