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편입 대비 업계 위한 적절한 정책도 필요
형태 아닌 방법의 문제…합법적인 운동장 있어야

[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들의 매출 가운데 20%가량이 영업대행조직(Contract Sales Organization, CSO)을 통해 생겨난다. 약 25조원으로 추산되는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5조원이 넘는 금액이 CSO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것.

문제는 판매 수수료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결국 이는 CSO가 리베이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을 만드는 이유가 됐다. 정부는 CSO가 현행법상 의약품 공급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방치됐다며 규제 카드를 만지고 있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무난히 통과돼 이제는 CSO의 제도권 편입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분위기다. 관건은 CSO의 순기능을 강조하면서 제도권으로 올바르게 흡수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현재 CSO의 제도권 편입이 기정사실화 된 시점에서 선제돼야 할 사항과 정부와 업계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① CSO 제도권 흡수 준비됐나?
② CSO 양성화, 피할 수 없으면 제대로 판 짜라

이미지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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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O 스스로 자연스럽게 재편될 수밖에 없어

업계는 CSO의 제도권 흡수가 시대의 흐름이라는 사실에 동의하는 모양새다.

CSO는 향후 제약 산업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국내 CSO 대부분은 정통 CSO 업체로 볼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즉, 외형적으로 대형화되고 대규모의 MR을 거느리면서 완제품 제네릭뿐만 아니라 개발 중인 제품까지 마케팅·영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CSO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의미다.

의약품 관련 학술정보를 전달하고 의료계와 소통하며 제품의 시장 진입과 정착 과정에서 각종 판매 촉진을 도맡아 할 수 있어야 정통 CSO로 불린다. 

업계 E관계자는 "정통 CSO란 제약사가 신약 개발과 품질 연구 등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영업과 마케팅을 전담할 정도의 규모로 조직과 능력 등을 갖춘 곳을 말한다"며 "하지만 지금은 수수료 형태로만 많이 운영되다보니 제약사 영업사원과 경쟁하는 구도까지 생겼다"라고 지적했다. 

이 말은 리베이트와 감성 영업에 의존하는 1인 CSO가 아닌 체계화된 교육 훈련 시스템 아래 전문성을 지닌 조직을 여럿 갖춘 법인 CSO로 구조조정이 돼야 진정한 제도권 편입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게다가 정부가 고령화 사회 속 보험재정을 안정화하기 위해 제네릭 비중을 높이면서 약가를 계속 인하할 것이고, 이 경우 원가 구조상 경쟁력이 떨어지는 제품을 갖고 있는 업체는 서서히 도태되는 흐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CSO에도 해당하는 얘기로, 정통 CSO로 가는 과도기적인 위치에 현재 놓여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CSO 업체 C관계자는 "제도권에서 수용할 수 있는 범위로 간다는 것은 정통 CSO의 길을 걸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이 과정을 거치면 리베이트의 온상이라는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물론 현재 CSO가 제도권에 없다고 해서 우회적 리베이트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며 "적절한 규제가 오히려 CSO 양성화와 건전한 제약업계 환경 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CSO 양성화에 MR 인증제 도움 될까

일각에서는 CSO 제도권 편입 시 MR 인증제도가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MR 인증제는 영업사원의 전문성과 윤리교육을 강화해 그 자격을 공인하는 제도다.

가장 활성화된 곳으로 일본을 꼽을 수 있는데 다수의 대형병원과 대학병원은 MR 인정증서가 없는 CSO 영업사원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만약 MR 인정증서가 없으면 소형 의료기관에서만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경력 이직 등을 위해선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자격이다.

발급 과정도 까다롭다.

MR 인증 시험 합격 외에 일정 시간의 실무 교육 및 경험을 쌓아야 하고 수험 과목도 의약품 정보, 질병과 치료, 의약개요 등 다양하다. 

심지어 유효기간 5년마다 갱신해야 하며 힘들게 통과해도 의사, 약사, 간호사 등과 같은 국가 자격증도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MR 인정시험 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만큼 MR에게 요구하는 능력과 윤리성 수준이 높기 때문이며, MR 인증의 벽을 높여야 리베이트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국내에도 MR 인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중심으로 2002년부터 MR 인증교육과정이 실시되고 있지만 일본처럼 유의미한 위치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에 제약바이오협회 원희목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CSO 양성화 도모 계획의 일환으로 MR 인증제도의 국가공인자격증 추진 의지를 밝힌 바 있다. 

CSO 관리 강화에 MR 인증제의 정착이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반면, 인증제가 리베이트 척결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제약업계 E관계자는 "의사나 약사 자격증처럼 취득 후에 특별한 이득이 없으면 유명무실할 것"이라며 "오히려 자격증 교육 업체의 배만 불려주거나 취득 후 정부가 MR을 옭아매는 또 다른 구속이 될 수 있다"라고 역설했다.

이어 "CSO 양성화와 리베이트 방지를 위한 정부의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때이지, 지출보고서나 MR인증제처럼 단편적인 방식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형태가 아닌 방법의 문제…합법적인 운동장 만들어야

혹자는 시장 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제약업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제재만 가하는 정책은 또 다른 불법적인 일을 만드는 꼴이 된다고 비판한다. 

제약사 영업이든, CSO 영업이든, 형태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 방법의 문제라는 것인데, 이 방법을 정부가 제시하지 못하다보니 제약업계에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제약사 영업사원이 CSO를 통해 추가 영업을 하는 투잡 등은 이미 업계 종사자라면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제약사 A관계자는 "제약사 입장에서도 이를 제재할 이유가 없고 정부도 이런 기형적인 형태를 모를 리가 없다"며  "오히려 CSO가 국내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수박 겉핥기처럼  '안 되면 말고'식으로 정책을 만든 것을 반성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이는 CSO 지출보고서 작성 및 공개 의무화, MR 인증제도 등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이미지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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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일각에서는 의약분업 이후 없어진 약가할증마진에서 원인을 찾는다.

당시에 관행처럼 이뤄졌는데도 불구하고 의약분업 이후 의사들과 제약사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됐을 뿐 이를 대체할 만한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는 것이다.

업계 F관계자는 "의약분업 이전의 약가할증마진이 무조건 옳은 행태였다는 게 아니다"라며 "왜 의사들이 여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일본의 제약영업 환경과 국내 상황을 직접 비교하긴 어렵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그는 "일본은 매년 의료계 수가를 적정 비율로 올려주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저수가 정책이 몸에 뱄다"라며 "줄건 주면서 하지 말라고 해야 납득이 될 텐데 당근이 거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CSO 제도권 편입과 동시에 구축해야 할 시스템은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정부가 합법적인 틀 안에서 제약영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운동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그래야만 지금보다 강력한 처벌법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CSO 업체 D관계자는 "제약 영업 시 허용되는 수수료와 지불 범위를 명확히 정하고 그 안에서 경쟁하게 한다면 만약 기준을 벗어난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른 경우 보다 강력한 처벌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게 바로 합리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규제이고 진정한 제도권 흡수라고 생각한다"며 "좁은 방안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고 무조건 지키라고만 한다면 불법을 조장하는 일밖에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업계 F관계자도 "일본이 의료계의 불법적인 행위와 관련해 의사, 제약사, 영업사원 등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적절한 규칙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보험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면서 정부가 진정으로 바라는 제네릭 관리와 약가 인하 정책을 추진하려면 단편적인 정책이 아닌 제대로 된 방법부터 만들어 업계에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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