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업계에도 불기 시작한 ESG경영 바람
소중해진 RA…규제 기관과 소통 위해 중요성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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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이 장기화 되는 것과 별개로 국내 제약업계는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증명한 것은 업계의 대비 유무와 무관하게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위기와 기회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제약사의 연구개발(R&D) 능력을 차치하더라도 선진국형 경영 문화, 인재 확보, 건실한 투자 환경 조성 등이 기업의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고 급변하는 환경에 친밀한 기업만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코로나19로 대두된 비대면 마케팅 및 영업활동이 팬데믹 장기화로 또 다른 진화를 겪고 있다. 단순 비대면 또는 대면을 넘어 온·오프라인을 병합해 최고의 시너지를 내기 위한 방법을 계속 찾고 있는 것이다. 메디칼업저버 창간 20주년을 맞아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제약·바이오기업의 신문화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① 제약사, 새로운 문화 속 지속가능한 미래찾기 
② 코로나 1년 6개월... 진화 거듭하는 영업·마케팅

제약·바이오업계에도 불기 시작한 ESG경영 바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제약·바이오업계의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ESG 경영이란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사회적공헌활동이라 불리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이다.

ESG는 개별 기업을 넘어 자본시장과 한 국가의 성패를 가르는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지만,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라는 점에서 그동안 업계의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기업의 ESG 성과를 활용한 투자 방식이 투자자들의 장기적인 수익을 추구하고, 기업의 재무적 요소만큼 가치를 반영한다는 전 세계적인 흐름 앞에 국내 제약기업도 ESG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1월 금융위원회가 오는 2025년부터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화를 도입하고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한다고 발표하자 ESG가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국내 제약사들의 ESG 경영은 시작 단계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당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재무적 요소와는 거리가 먼 ESG 경영이 눈에 보이는 특별한 이점을 회사에 안겨주지 못하는데다가 내부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에 업체마다 온도차이가 있는 것. 

이는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발표한 기업별 ESG 평가 등급을 살펴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계열사별 별도 등급 평가 결과 국내 제약사가 받은 가장 높은 평가등급은 A등급이었다. 대부분의 제약사는 B등급과 C등급 수준에 머물렀다.

KCGS의 ESG평가등급은 D, C, B, B+, A, A+, S까지 총 7개 등급으로 나뉘는데 지난해 평가 대상 전체 산업 963개 기업 중 A+등급 이상을 받은 16곳 가운데 제약기업은 없었다.

그나마 한미약품과 일동제약이 A등급을 받았을 뿐이다. 

즉, 제약업계에는 ESG 경영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고 봐야하며 늦기 전에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도입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게다가 제약기업의 경우 산업 특성상 에너지 효율화, 폐기물 관리, 오염물질, 화학물질, 산업 안전, 의약품 안전, 부패 행위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ESG 경영이 뛰어난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의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미, 일동, 보령, 부광 등 ESG 정착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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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분위기에 따라 이미 ESG 경영에 발을 디딘 제약사는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완을, 이제 막 ESG 경영을 도입하기 시작한 제약사들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우선, 한미약품은 지난 2019년 환경안전보건 경영을 위한  'hEHS위원회'를 신설했다.

환경오염물질을 감축하기 위해 재활용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확대해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 에너지 절감을 추구하는 동시에 화학물질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하도급 거래 내부 심의위원회를 두고 불공정 거래 방지에 애쓰고 있으며, 매년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국제 지침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스탠다드를 기반으로 한  'CSR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일동제약은 지난 5월 'GRP(Guidelines for Reducing Plastic Waste & Sustainable Ocean and Climate Action Acceleration)'에서 AA+ 등급을 획득한 바 있다.

GRP는 플라스틱 폐기물 저감 및 지속가능한 해양 환경 조성을 위한 글로벌 기후 대응 가이드라인으로, 국제연합(UN)이 선정하는 국제 친환경 인증제도다.                 

보령제약은 ESG 경영에 대한 임직원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자체적인 교육 콘텐츠를 개발, 온라인 교육을 시행해 주목받고 있다.

현재 업계 전반에 ESG 교육 콘텐츠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직접 강좌 개발에 나선 점이 특징인데, 일반인도 수강할 수 있도록 제작 중이며 국내 온라인 교육 위탁기관 12곳을 통해 보급할 예정이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이번 콘텐츠 개발 및 보급 이외에 ESG 전담 파트를 신설하는 등 ESG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사내 구성원 모두의 인식 제고 없이는 ESG 경영의 근본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ESG 경영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던 중소형 제약사에도 바람이 옮겨붙고 있다.

부광약품은 지난 6월 법무법인 세종과 자문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ESG 경영 도입의 첫 발걸음을 뗐다.

아직 시작 단계에 있지만 빠른 ESG 경영 도입을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부광약품 관계자는 "인간의 생명을 지킨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고객, 주주, 국민 등 사회 모든 구성원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충실이 이행해 경영 투명성을 높이겠다"라고 말했다. 

휴온스는 최근 한국실명예방재단 및 한림화상재단 등과 의료지원 사업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ESG 경영 강화를 위한 다양한 연계 활동을 강화한 바 있다.

이 외에도 GC녹십자, 유한양행, 종근당, JW중외제약, 동아에스티 등 대부분의 대형 제약사들이 ESG 경영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다. 

한편, 국내 제약사의 경우 ESG에서 친환경(E)과 사회적 책임 경영(S)을 관철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지배구조(G)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업계 A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는 특성상 2세 경영, 3세 경영이 많다"며 "ESG 주요 평가 지표에서 지배구조 부분이 타 지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로 인해 제약 기업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가 높아져 ESG 경영이 더욱 중요해진 만큼 제약사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라며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인센티브제도 등을 도입하는 것도 원활한 정착을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규제·허가 기관과의 원활한 협상 위해 RA 중요성 커져

제약사 입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약품이다.

이에 의약품의 연구, 개발, 사용, 사후관리까지 허가·심사 과정 전주기에 관여하는 전문 인재의 영입은 제약사의 핵심 무기 중 하나다.

이를 통상적으로 'RA(Regulatory Affairs)'라고 칭하는데, 이들은 국가별로 정해진 규정 및 제도를 분석·취합해 제품의 허가 변경을 이끌어내는 기술문서 작성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아울러 현행 법령에 의해 필수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데이터를 토대로 허가당국과 논의하는 역할을 직접 맡기도 한다.

제약사 B 관계자는 "RA는 제약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그 필요성이 함께 높아진 귀중한 인재"라며 "과거 제네릭에만 집중하던 시기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신약 개발이 곧 경쟁력이 되는 현시대에서 RA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제약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규제과학을 전문으로 하는 RA의 채용 및 운용이 회사의 경쟁력이 됐다는 의미다.

문제는 RA를 규제 및 허가 관련 서류만 정리하는 단순한 일을 하는 직책으로 인식해 전담 인력을 두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RA 전문인력 공급 자체가 수월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RA 전문가 구하기가 어려운 것은 요구되는 업무 역량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란 의견도 있다.

정부기관의 공무원, 협회 등 동종업계의 전문가, 의약계 전문가 등과 같이 다양한 식견의 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협상 및 대화를 통해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지속적인 능력 함양을 요구한다. 

또 약사법 등 관련 법률, 잦은 고시 개정사항을 매번 이해하고 적용하는 분석력과 정부 측 인허가 담당자와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조절하는 대화술 역량까지 필요하다.

업계 C 관계자는 "그동안 제네릭은 정형화된 패턴이 있고 허가부터 도입, 사용, 사후관리 등 특별히 어려운 것 없이 규정만 잘 파악해도 무리가 없었다"라며 "하지만 산업 생태계가 다변화되고 신약 개발 등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RA의 전문성이 절실해졌다"라고 전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RA에게 요구되는 높은 역량 탓에 중소형 제약사일수록 전문가 채용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다고 회사 내 다른 직무를 하는 인력이 RA 업무를 모두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정부도 RA 등 규제과학 인력의 시급한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인재양성 사업 운영지침을 마련, 주관 연구 기관과 대학(원) 공모를 끝마쳤다는 부분이다.

식약처는 오는 2025년까지 의약품 유효성 평가, 안전성 평가 등의 분야에서 총 600여명의 전문가를 배출할 계획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산·학·연·관의 협력을 통해 의약품 규제과학 분야 신산업을 견인할 핵심 인재를 육성하고 인재양성사업의 총괄 기획·운영 등 체계적인 기반을 구축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이 같은 정부의 인력 양성 의지와 별개로 제약사 차원에서 RA 인력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제약사 D 관계자는 "제약사가 주기적으로 RA 인력을 채용하려고 하지만 RA 인력을 교육하고 활용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진 곳은 생각보다 적다"라며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RA가 해당 회사만의 무기로 성장할 때까지 시간을 갖고 투자하는 혜안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국내 제약산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제약사는 관련 경험이 풍부한 RA 인력의 소중함을 인지해야 하고, 정부는 올바른 전문가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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