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관리 체계 손 볼 곳 많다?…국내 백신 가이드라인 살펴보니

이미지출처: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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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정윤식 기자] 2020년을 코로나19(COVID-19)와 함께 했다면 2021년에는 코로나19와 작별을 고할 수 있을지가 만인의 관심사다. 결국 진정한 종식을 위해서는 백신이 절대적이고 필수적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지난해 12월부터 백신 접종이 이뤄지기 시작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첫 접종이 언제 실시될지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계획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안정적이고 신속한 백신 공급을 위해 대비해야 할 백신관리 체계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上) 코로나19 백신 맞이할 준비 됐나?
(下) 코로나19 백신 맞이하기 전에 준비할 것은? 

정부, 백신 4400만명분 확보…'2~3월 도입'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서양 국가들이 지난해부터 화이자(백신명 BNT162b2)와 모더나(mRNA-1273)의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에 정부도 코로나19 백신 4400만명분을 확보해 빠르면 올해 1분기인 2~3월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할 것을 공식 발표한 바 있다(2020년 12월 8일 발표기준).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코로나19 해외 개발 백신 확보계획에 대해 심의·의결하고 접종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발표에 따르면 백신 공동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서 약 1000만명분, 글로벌 백신 기업 개별 협상에서 약 3400만명분의 해외개발 백신을 선구매했다.

가장 먼저 선구매한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의 'AZD1222'로, 나머지 백신도 계약절차에 따라 필요한 물량을 적극적으로 확보할 방침이다. 

해외에 비해 백신 확보 물량이 적고,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당시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직접 '충분한 준비를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박 장관은 "백신개발이 아직 완료 전 단계이고 백신 접종과정에서 부작용 등 불확실성이 여전히 있는 만큼 국민건강과 안심을 위해 당초 발표한 3000만명분 보다 더 많은 백신을 선구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전 국민이 백신을 접종하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는데, 그는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이 완료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국민들은 생활 속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외출 자제 등의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해달라"고 덧붙였다.
 

백신 관리 체계…"손 볼 곳 한두 군데 아냐"

미국과 영국 등이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국내에서도 하루라도 빨리 백신을 접종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세다. 

이는 정부가 확보한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까지 이어졌는데, 일각에서는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국내에 본격적인 백신 물량이 풀리기 전에 백신의 보관 및 유통 등 새로운 지침부터 제작·확보해야 한다는 것.

코로나19 백신 도입이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어져 확보된 시간만큼 백신 관리 체계 전반을 철저하게 손보자는 것이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시즌을 전후로 촉발된 전주기 백신 관리에 대한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확인되면서, 코로나19 백신은 독감 백신과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

실제로 지난해 9월 국가예방접종용 독감 백신 납품을 맡은 신성약품이 유통과정 중 백신을 상온에 노출한 정황이 포착돼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사업을 중단하고 합동조사에 돌입했다.

정부 조사 결과, 백신의 효력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상온 노출 독감 백신 약 587만 도즈 중 48만 도즈가량을 폐기했다. 게다가 10월에는 경상북도 영덕군 보건소에서 한국백신의 제품 안에서 백색 입자가 발견됐다는 제보가 들어와 품질 이상 백신 약 61만개를 업체 측에서 자체 회수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통과정 중 냉매와 백신이 직접 접촉해 온도가 너무 낮아져 백신 내부에 결정화된 물질이 발결된 일이 한국백신 사례 이전에 있었는데, 정부가 이를 외부로 공표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일었다.

식약처는 문제가 된 백신을 수거해 분석·평가한 결과, 안전성과 유효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으나 이 시기는 독감 백신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던 때였다.

코로나19 백신이 아닌 독감 백신이었지만 사실상 백신의 유통, 보관, 접종 등 전주기에 걸쳐 여러 문제점이 여실히 확인된 셈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독감 백신 관련 상온노출 및 백색입자 파동을 겪으면서 시스템적인 면에서 문제점이 드러난 저온유통체계(콜드체인, cold chain)의 중요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 백신이 사용되기 전에 수입과정, 유통절차, 보관방법, 접종에 이르기까지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백신 유통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라며 "차라리 콜드체인 등 백신 관리 체계를 다듬을 시간이 확보됐다고 생각하고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백신 가이드라인 살펴보니…

독감 백신 이슈가 부각됐지만 국내의 백신 보관 및 수송 관리 가이드라인이 터무니없이 미흡한 것은 아니다.

식약처와 질병청은 지난해 7월 일선 유통업체와 의료기관에 '제조·수입·도매·의료기관용 백신 보관 및 수송 관리 가이드라인' 개정판을 배포한 바 있다. 이 안내서는 백신 보관 및 수송 관리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거나 정부의 입장을 기술한 것으로, 7월 당시의 과학적·기술적 사실 및 유효한 법규를 토대로 작성됐다.

백신을 취급하는 제조·수입업체, 도매상, 의료기관(보건소 포함)에서 백신 보관·수송 및 취급 시 고려해야 할 사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선, 제조·수입업체 및 도매상 백신 보관관리(△보관업무 일반 △시설 △환경관리 △입고관리 △보관관리 △출고관리)와 수송관리(△용기 △장비 △수송업무)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기술됐다.

아울러 의료기관 백신 보관관리에 대한 설명이 총 13장으로 구성됐는데 △접종 준비사항 △관리 담당자 지정 △재고 관리 △취급 계획 △보관 장비(냉장고/냉동고) △온도 기록 △백신 배치 및 표시 △유지 관리 △폐기 △응급상황 시 조치 등을 담고 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백신을 생산·수입하는 제조·수입업체와 유통하는 도매상 및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의료기관을 총망라해 백신 보관, 수송, 입고, 사용 전 보관까지의 취급관리 중요성과 올바른 백신 보관·수송 관리에 대한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적절한 백신의 보관·수송 및 취급절차를 포함한 올바른 백신 관리는 예방접종 사업의 토대로, 부적절한 보관·수송으로 인해 역가가 떨어진 백신을 접종한 환자는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질환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부적절하게 보관·수송된 백신 폐기 관련 비용은 예산 낭비라며, 제조·수입업체, 도매상, 의료기관에서의 백신 보관·수송 관리는 안전한 예방접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적정 온도유지 등 철저한 관리를 주문하고 있다. 
 

매년 백신 폐기율 증가…정부 모니터링 허술

결국, 충분한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독감 백신 사태와 같은 일이 발생한 이유는 정부가 업체와 의료기관 등에서의 관리 소홀을 모니터링하는 체계가 미흡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국가예방접종지원사업 백신 폐기 현황에 따르면 보건소가 최근 3년간 구입한 백신 4만 5295도즈가 유효기간 경과, 냉장고 고장 등의 사유로 폐기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7년에는 260만 9155도즈를 구매해 8766도즈를 폐기해 전체 백신 구매 물량 중 0.34%를 폐기했고, 2018년에는 146만 8224도즈에서 1만 5957도즈를 폐기했으며(1.09%), 2019년에는 185만 3996도즈를 구매해 1.11%인 2만 572도즈를 폐기했다.

해마다 폐기율이 0.34%→1.09%→1.11%로 높아지는 특징을 보였는데, 사유별로는 유효기관 경과(52.9%), 냉장고 고장(25.6%), 정전(7.2%), 냉장고 주변장치 오작동, 운송과정 온도 이상, 개봉 전 오염 등이 있었다.

신 의원은 "독감 백신 유통 과정의 문제로 인해 국민적 우려가 큰 상황에서 백신 관리 실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며 "구입한 백신에 대한 관리체계 개선을 통해 폐기량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그동안 대부분 자율점검으로 맡겨져 있던 백신 관리에 대한 세부적인 지침 마련과 함께 현장에서 안전한 백신 관리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이 안전하게 백신을 접종받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국내 생백신의 콜드체인 유지관리 현황분석 및 개선방안 정책연구용업사업 결과보고서(2019, 오명돈)'에서도 백신 관리 부실이 일부 드러났다. 해당 연구는 2개 지역의 38개 보건소와 전국의 2200개 민간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백신 보관 냉장고 현황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속 온도 모니터링 기기를 이용해 냉장고 온도를 2주 동안 점검하고 백신 보관 냉장고에 보관했던 수두 백신(생백신)의 바이러스 함량을 'plaque assay(플라크 분석)' 방법으로 측정했다.

백신 보관 냉장고의 종류는 보건소의 경우 의료용 냉장고가 84.2%, 가정용 냉장고가 13.2%였고, 민간 의료기관의 경우 의료용 냉장고가 25.4%, 가정용 냉장고가 40.6%를 차지했다.

백신 냉장고의 온도 모니터링 결과 2주 동안 적정온도(2~8℃)가 유지된 냉장고는 보건소 백신 냉장고 39개 중 15개(38.5%), 민간 의료기관 백신 냉장고 47개 중 11개(24.3%)에 불과했다. 또한 보건소에서 1개월 이상 보관 중인 수두 백신을 수거해 바이러스의 역가를 측정한 결과, 1200pfu/0.5mL에서 9750pfu/0.5mL로 다양한 수치를 보였다.

이론적으로 같은 제조 번호의 백신은 바이러스 역가가 같아야 하나, 보관했던 보건소마다 역가가 크게 차이 났던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수두 백신의 평균 역가가 1200~9750pfu/0.5mL로 큰 차이가 나는 이유로 △공장 생산·출하 과정 △공장 출하·보건소 도착까지 운송 과정 △보건소 냉장고 보관 과정에서의 콜드체인 문제점 등을 꼽았다.

일부 백신의 바이러스 역가는 4000pfu/0.5mL 미만이었으며, 실험 측정 방법의 내재적인 오차와 예방접종 과정(백신 용해 및 상온/빛 노출)에서 역가가 더 감소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4000pfu/0.5mL 미만인 백신은 함량이 낮아서 수두를 예방하지 못하거나 예방 기간이 짧아질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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